딸기가 보는 세상/잠보! 아프리카

남아공 대통령 축출

딸기21 2008. 9. 21.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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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집권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타보 음베키 현대통령을 자리에서 밀어내기로 결정했다. 에이즈·경제난·치안문제 등 난제가 산적한 가운데 흑인정권 안에서 내분이 일어나 정국이 격랑에 휩쓸리고 있다.


ANC는 20일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전국집행위원회 회의를 열고 음베키를 대통령직에서 축출하기로 결정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음베키가 ANC 현 총재인 제이콥 주마를 핍박하기 위해 사법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주마 지지파들은 주마가 수뢰 혐의로 기소된 것이 음베키의 음모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법원은 최근 주마가 낸 기소중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대통령의 압력’이 실제로 있었음을 시인했다. 아직 임기가 반년 넘게 남아있는 음베키는 당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다며 즉시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현지 신문인 메일&가디언이 보도했다.

아직 음베키의 거취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이른 시일 내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조기총선을 하더라도 ANC의 다수당 지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음베키로서는 사퇴 외에는 길이 없는 처지다. 차기 대통령으로는 ANC 당권을 쥔 주마가 확실시되고 있다.

주마는 음베키 밑에서 부통령을 지내다가 2005년 수뢰 혐의로 기소돼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노동조합총연맹(COSATU)의 지지를 받아온 주마는 지난해 12월 북동부 폴로콰네에서 열린 ANC 총재경선에서 대의원 60% 이상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당권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주마는 ‘폴로콰네의 이변’이라 불린 이 승리로 차기 대통령직을 사실상 예약해놓은 뒤 음베키에게 공공연히 도전해왔다.

남아공은 의회 내 선거로 5년 임기의 대통령을 뽑는다. 초반 백인정권이 물러나고 1994년 만델라의 흑인 정권이 탄생할 당시 흑-백 양측은 정정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회 간접선거를 제도화했다. 그러나 이후 10여년이 지나면서 이 제도는 ‘ANC 1당 지배’로 굳어졌다. 정치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이 제도로 인해, ANC의 혼란이 곧 남아공 정치 전체의 불안으로 이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된 것. 현재 ANC는 의회 400석 중 3분의2가 넘는 279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ANC의 결정에 따라 대통령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음베키의 오른팔이었던 품질레 음람보-누카 부통령 등은 음베키 축출과 주마의 부상에 강하게 반발했다. 한때 남아공 최초의 여성 대통령 감으로 거론됐던 음람보-누카는 공교롭게도 주마 수뢰의혹을 수사했던 전 검찰총장의 부인이다. 음람보-누카는 앙숙지간인 주마 세력이 음베키를 몰아내기로 결정하자 항의 표시로 사퇴서를 제출했다. 조기총선이 끝나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정국 불안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대 야당인 잉카타자유당의 원로정치인 망고수투 부텔레지는 현 정국을 “흑백분리가 끝난 이래 가장 큰 정치적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음베키는 만델라의 동지였던 흑인투사 고반 음베키의 아들이며 그 자신 백인정권에 맞선 투사였다. 만델라의 후계자라는 후광 속에 재선에 성공했지만, 남아공의 최대 사회·경제적 현안인 에이즈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회피만 하려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 문제로 만델라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10년 월드컵 유치라는 공을 세웠으나, 갈수록 치안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공적에도 빛이 바랬다.

빈부격차는 점점 심해져 경제 중심도시인 요하네스버그 외곽에 초대형 슬럼들이 들어찼다. 슬럼가 청년들의 소요에 진압병력이 발포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지난 7, 8월에는 불만 가득한 흑인 빈민들이 주변국에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을 공격, 유혈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또 ‘블랙이코노미(흑인중심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 아래 흑인 기득권층만 키워, 광범위한 유권자들의 반발을 샀다. COSATU와 공산당 등은 이 때문에 음베키에게 등을 돌리며 퇴진을 요구해왔다.

무능한 정부에 대한 반발여론을 부추겨 현직 대통령 축출에 성공한 주마는 백인정권 시절 ANC 무장분과를 이끌며 투쟁한 역전의 용사로, 로벤섬 감옥에서 10년 넘게 복역했다. 음베키가 ‘셰익스피어를 읽는 지식인’인 것과 달리, 주마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주마는 2006년 성폭행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는데, 재판정에서 "성관계 뒤 샤워를 하면 에이즈에 안 걸린다고 생각했다"며 무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일각에선 그의 경제노선이 ‘좌파 포퓰리즘’에 가까운데다 부패·성폭행 시비 등이 끊이지 않는 점을 비판한다.

하지만 주마는 흑인 기득권층을 싫어하는 ANC 평당원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ANC는 그동안 만델라와 음베키가 속해 있는 코사족이 주도해왔다. 반면 주마는 남아공 최대부족으로서 코사족보다 과격하다는 평을 듣는 줄루족 출신이다. 주마는 20일 “집권해도 경제정책에선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외국자본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또 치안불안과 에이즈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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