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사르코지 리더십

딸기21 2008. 10. 2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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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각국 정상들은 위기 대처법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 백악관에서 회동을 갖는 등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유럽에서도 유럽연합(EU) 정상들이 프랑스 파리에 모여 긴급회동을 갖고 구제금융 계획들을 잇달아 발표했지요.
각국 정상들의 바쁜 움직임 속에 단연 눈길을 끌었던 것은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었습니다. 레임덕에 시달리는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근황조차 알수 없을 정도로 묻혀있는 사이, 사르코지가 위기시대의 지도자로 부상한 겁니다.

 

사르코지는 주요8개국(G8)·EU 정상회담 등에서 신 브레튼우즈 체제를 공식 제창, 논의를 주도했습니다. 24~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담(ASEM) 회의에서도 새로운 글로벌 금융규제시스템 논의를 이끌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르코지는 43개국이 참가하는 이번 회의에 앞서 “세계 금융시스템을 재구축할 필요성을 중국,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AFP통신은 사르코지가 유럽과 미국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제는 아시아를 설득하는 역할까지 떠맡았다고 보도했습니다.

곳곳에서 사르코지 칭찬이 쏟아지고 있네요. 지난 18일 사르코지의 백악관 방문에 동행했던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 의장은 “엄청난 에너지와 놀라운 리더십의 소유자”라 극찬했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9·11 테러를 잘 수습해 영웅 대접을 받았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모습을 연상케 된다”면서 ‘사르코지 리더십’을 분석했습니다. 한때 32%로까지 떨어졌던 사르코지의 프랑스 내 업무지지도는 최근 49%로 훌쩍 올라갔습니다.

사르코지 리더십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 것은 ‘실천력’입니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사르코지를 가리켜 “행동하는 사람(Man in Action)”이라 표현했습니다. 사르코지 주변 인물들은 “위기 한가운데로 들어가 행동을 취하는 사람”, “해결책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실천하는 사람”이라고들 높이 평가한다고 합니다. 

이번 금융위기의 해결책으로 사르코지가 내세운 것은 ‘규제 강화’였습니다.

사르코지는 앞서 21일 유럽의회에서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기반을 파괴하는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자본주의의 대수술을 주창했습니다. 시장지상주의, 고삐풀린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를 직시한 것입니다.
그동안 사르코지는 보수우파-중도우파 사이를 오갔습니다. 하지만 위기 대처에서는 좌·우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실용주의’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박빙 승리로 집권한 그는 소모적인 색깔 논쟁을 벌이는 대신 내각에 좌파 사회당 각료들을 전격 기용했지요. “좌파 각료들을 거느린 우파 대통령”이 된 겁니다.
사회당 대선후보 경선에까지 나왔던 골수 사회주의자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로 밀어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르코지가 운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EU 순회의장직을 맡은 시기에 그루지야 사태, 금융위기 같은 사건이 터져 리더십을 과시할 기회가 생겼다는 건데요.
지난해 EU 의장이었던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측근들은 “우리가 만든 터전 위에서 사르코지는 과실만 따먹고 있다”며 볼멘 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독일 외교전문가 헤닝 리케는 “결국 행동을 한 것은 사르코지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영국 언론들은 고든 브라운 영국총리가 금융기관 부분국유화라는 아이디어를 내놨다며 “진짜 해결사는 브라운”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언론의 표현을 빌면 브라운은 “조용한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를 벗어나지 못했지요.

CSM은 또 사르코지가 위기 시에 의외로 냉정해지는 승부사 기질을 갖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1993년 파리 근교 뇌이 시의 시장을 하던 시절 관내 학교에서 인질극이 발생하자, 사르코지는 곧바로 학교에 들어가 인질범과 대면 협상을 하고 아이들을 구해내왔습니다. 사르코지에게 정치적 명성을 안겨준 출발점이었습니다.
EU 회의에서 사르코지를 지켜본 덴마크, 룩셈부르크 등의 관리들은 사르코지가 대단한 집중력과 집요함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루지야 사태 때 크렘린을 방문, 중재할 때에도 그런 집요함으로 러시아의 양보를 이끌어냈다는 것입니다.

사르코지는 친미파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겁내지 않습니다. 취임하자마자 스크린쿼터를 유지하겠다고 한 것이나, 자국 기업·자국민 보호를 최우선시하는 것이 그런 예입니다.
21일에는 “유럽 기업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비유럽권 기업들로부터의 적대적 인수를 막기 위한 조치를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그를 칭찬했던 우파 언론들은 비난으로 돌아섰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비즈니스위크 등은 “사르코지는 통제경제를 시도한다”고 맹비난했습니다.
반면 가디언, 리베라시옹 등 유럽의 진보적인 언론들이 오히려 친 사르코지 논조로 돌아섰습니다. (한국에서 사르코지를 그렇게 칭찬해왔던 C일보, J일보가 왜 요즘에는 사르코지 칭찬을 안 하는 건지도 궁금하네요 ㅎㅎ)

아직 사르코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사치스런 취향에 말 많은 사생활, ‘부자 친구들’과의 관계, 감정적이고 과격한 처신 등은 계속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CSM은 “그가 진정한 유럽의 지도자로 대접받으려면 리스본조약(유럽미니헌법)을 살려 명실상부한 통합을 이끌어내는 등 넘어야할 산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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