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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가족들

딸기21 2008. 11. 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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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케냐인 유학생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미국-인도네시아 혼혈 여동생을 두고 있다. 케냐에도 이복 형제자매와 친척들이 살고 있다. 오바마의 부인으로 선거전에서 최고의 참모 역할을 했던 미셸 오바마의 행보와 함께,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오바마의 ‘코스모폴리탄 가족’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오바마의 가족 중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인물은 뭐니뭐니해도 ‘첫 흑인 퍼스트레이디’가 될 부인 미셸이다. 올해 44세인 미셸은 콜로라도주에서 남편을 대신해 유세를 하면서 선거전 마지막 캠페인을 했다. 처음 공개석상에 나왔을 때에는 매섭고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오해를 사기도 했다. 보수 언론인·잡지들이 ‘불만 가득한 여인’이라 비아냥거리기도 했으나, 캠페인으로 단련되면서 ‘부드러운 퍼스트레이디’ 모습으로 변했다고 로이터통신은 3일 보도했다.


미셸은 오바마와의 사이에 말리아(10), 사샤(7) 두 딸을 두고 있다. 사샤는 백악관 사상 최연소 입주민이 된다. 미셸 스스로는 “엄마로서의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변호사로서 쌓아온 경험과 능력을 백악관에서도 보여줄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내다봤다. 평소 미셸은 일과 가정 사이에서 분투하는 여성들을 위해 애쓰고 싶다고 말해왔다.


이색적인 출신과 성장 배경을 가진 남편과 달리 미셸은 시카고 교외 노동자 주거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전형적인 미국 도시 흑인이다. 미셸은 시카고시 수도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공립학교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해 종종 언급하면서, ‘보통 흑인’들이 오바마에게 느끼는 거리감을 상쇄해주는 역할을 했다. 특히 선거 후반으로 갈수록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따뜻한 사랑과 가족의 가치를 강조했다. 프린스턴,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한 뒤 시카고의 로펌에서 오바마를 만나 결혼하게 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생각은 이름이 참 재밌다는 것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미셸이 선거 전 가장 최근에 했던 일은 시카고대학병원 홍보담당 부원장이었다. 얼마전 오바마는 “미셸이 남편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하지만 요즘은 2권의 베스트셀러(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과 <담대한 희망>)를 낸 내 인세수입이 더 많다”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미셸은 지난 2월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바람몰이를 하자 “처음으로 미국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해 이른바 ‘애국심 논란’ 불러일으켰다. 6월 오바마가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에는 보수우익잡지들의 ‘미셸 마녀사냥’이 잇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미셸은 이 경험을 거울 삼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전 전사자·부상자 가족들을 만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애국심 논란을 불식시켰다. 8월말 전당대회에서는 뛰어난 화술과 세련된 매너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오바마의 가족 중 미셸 외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하와이에 살고 있는 여동생 마야 소에토로 응(38)이다. 오바마를 키워준 외할머니 매들린 던햄 여사가 3일 타계했을 때 곁을 지킨 것도 마야였다. 


마야는 잘 알려진대로, 오바마의 어머니 앤 던햄이 인도네시아인 롤로 소에토로와 재혼해 낳은 딸이다. 어머니가 롤로와 이혼하고 인도네시아 여성과 재혼한 뒤 자카르타를 떠나 하와이로 옮겨왔으며, 지금도 하와이에서 살고 있다. 오바마의 회고록에는 “뉴욕에서 혼자 지내는 내가 걱정돼 어머니와 마야가 찾아왔다”며 마야가 누나처럼 오빠가 잘 지내는지 둘러보던 모습을 기억한 내용이 적혀 있다. 


마야가 오바마와 함께 지냈던 시기는 인생에서 몇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하나뿐인 피붙이인 오빠를 잘 따랐다고 한다. 마야는 “오빠는 책이든 음반이든 꼼꼼히 추천해주면서 감상법까지 권해주곤 했다”면서 “아버지가 안 계시기 때문에 내 아버지 몫까지 대신 해주려고 애썼다”고 전했다.


오바마의 또다른 가족은 케냐에 있다. 하와이와 하버드대학에서 유학했던 케냐인 아버지 버락 오바마 시니어는 고향으로 돌아가 관료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알콜에 빠져 말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82년 교통사고로 숨지기까지 그는 여러 아내와 여러 자식을 두었다. 오바마는 이들과 전혀 교류를 하지 않다가 20대 후반에 처음으로 뿌리를 찾고자 케냐를 방문해 ‘반쪽 가족들’을 만났다. 케냐 쪽 식구들 중 오바마가 가장 친근감을 많이 느끼고 자서전에서도 여러장을 할애한 인물은 누나 아우마(48)다. 독일 하르델베르크 대학을 졸업한 아우마는 영국인과 결혼해 영국에서 살다가 케냐로 돌아와 현재 구호개발기구에서 일하고 있다. 오바마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뿌리를 찾는 과정을 도와준 인물이다.


오바마의 이복 형제자매 중 맏이인 형 말리크(50)는 현재 케냐에 살고 있는데, 나이로비대학을 졸업하고 80년대 오바마를 만나러 뉴욕에 찾아오기도 했다. 막내 이복동생 조지 후세인 온양고 오바마는 올해 26세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살고 있다. 또다른 이복동생 마크 온데산조는 중국 여성과 결혼해 중국 선전에 살면서 월드넥서스라는 인터넷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친척 중에는 2차 대전 참전군인인 오바마 어머니 앤의 삼촌 찰스 페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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