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2000년 러시아 핵잠 쿠르스크호 침몰

딸기21 2009. 8. 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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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12일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노르웨이 북부 바렌츠해에서 갑작스런 폭발음을 남기고 침몰했다. 해저 108m로 가라앉은 잠수함에는 승무원 118명이 타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끌던 당시 러시아 정부와 군은 사고가 나자 쉬쉬하기 바빴다. 핵잠 침몰 사실은 러시아 정부나 언론이 아닌 서방 소식통들을 통해 먼저 세계에 알려졌다. 러시아 정부는 사건이 보도되고 이틀이 지나서야 침몰 사실을 인정했다. 

더 참혹한 일은, 사고 당시 핵잠 안에 118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었으며 침몰 뒤에도 상당한 시간 동안 승무원들이 살아있었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군사기밀에 관련돼 있다는 이유로 서방의 구조작업 지원 제안을 거절했고 승무원 구출작업에도 늑장을 부렸다. 

결국 가라앉은 핵잠에 먼저 접근, 승무원들이 모두 질식해 숨졌음을 확인한 것은 노르웨이 구조대였다. 대통령 취임 100일 전야에 대형 악재를 만난 푸틴은 자국 군인들의 생명보다 위신을 챙기려다 최악 참사를 자초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사고 직후 미국과 유럽 언론들은 신무기 실험 과정에서 실수로 폭발이 일어난 것 같다고 보도했고, 러시아 정부는 사고해역에서 정찰활동을 하던 미국 등 서방 잠수함과 충돌했다고 주장했다. 한달여가 지나서야 러시아 측은 “주변을 지나던 핵순양함 페테르대제 호에서 잘못 발사된 어뢰를 맞아 침몰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쿠르스크호는 배수량 1만3900톤에 길이 154m, 최대 24기의 핵탄두 미사일을 탑재하고 수십 500m까지 내려갈 수 있는 최신형 잠수함이었다. 건조비가 23억달러나 들었던 이 핵잠은 옛소련이 남긴 마지막 찬란한 유산이었던 셈이다. 쿠르스크호와 함께 러시아의 자존심도 침몰했다. 거덜난 살림을 물려받은 러시아는 이후 지금까지 쿠르스크호에 필적할 핵잠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옛소련 시절부터 잠수함 강국이었지만 그만큼 잠수함 사고를 많이 겪기도 했다. 1960년대부터 20여척의 잠수함이 바다에 가라앉았고, 그 중 4척은 지금까지도 건져올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한반도 북부 블라디보스토크 부근에서 러시아 태평양 함대 소속 핵잠 K152 네르파 호에서 불이나 20명 이상이 숨졌다. 러시아 해군은 “방사능 누출은 없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위치와 사고가 난 핵잠의 이름·규모 등을 공개하지 않아 의문을 증폭시켰다. 2006년에는 바렌츠해 비댜예프에서 핵잠 화재로 2명이 숨졌고, 이듬해에도 노르웨이에 가까운 세베로드빈스크 항에서 잠수함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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