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이 나라들이 왜 이러나...

딸기21 2009. 9. 1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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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쪽 끝에 아체 Aceh 라는 자치지역이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 인도네시아 정부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분리운동을 벌여 유혈사태가 많이 났었던 곳이지요. 지금은 특별자치주가 만들어져 자치가 실시되고 있는데요.
이 곳의 자치의회가 간통범에게 돌을 던져 처형하는 등의 극단적인 조항들을 담은 샤리아(이슬람 성법)를 채택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법이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세속법’이고, 꾸란에 바탕을 두고 이슬람 원리대로 만든 법이 샤리아입니다. 

자카르타포스트 등 인도네시아 언론들은 아체 특별자치주 의회가 간통범과 동성애자 등에 대한 초강경 처벌규정을 담은 샤리아 법안을 채택했다고 15일 보도했습니다. 이 법의 대표적인 조항들을 볼까요.

◇ 간통을 저지른 자가 미혼일 경우 태형 100대, 기혼일 경우 투석 처형
◇ 동성애자는 태형 100대 혹은 100달 징역형
◇ 아동 성범죄자는 태형 200대와 금 2000그램의 벌금, 혹은 최장 200달의 징역형
◇ 성폭행범은 최소 100대에서 최대 300대의 태형, 혹은 100~200달의 징역형
◇ 도박범은 최고 태형 60대

아랍권과 아시아 일부 지역에 태형 제도가 남아 있긴 하지만 아체의 새 법안은 이례적으로 처벌이 강하고, 동성애까지도 성폭행이나 아동 성범죄 같은 중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아체 자치의회 선거에서는 강경파들이 대거 탈락하고 개혁적인 자유아체운동(GAM) 멤버들이 많이 당선됐습니다. 물러날 처지가 된 이슬람 보수파 현역의원들은 임기 만료를 일주일 앞둔 14일 초강경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켰습니다. 떠나갈 사람들이 일종의 ‘입법 쿠데타’를 저지른 셈이지요.



▲ 샤리아에 따른 형벌을 받는 아체 여성 / 사진 THE DIPLOMAT


인도네시아 국가인권위원회의 이프달 카심 위원장은 “이슬람이 아닌 세속법을 근간으로 한 인도네시아 헌법에 위배되는 법안으로 인권 침해 소지가 매우 많다”고 비판했고, 인권단체들도 줄줄이 비판성명을 냈습니다. 아체 내에서도 반대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 단체인 울라마(이슬람공동체)협의회의 마루프 아민 의장은 “아체 뿐 아니라 전국으로 샤리아가 확대돼야 한다”며 환영했습니다. 저런 무시무시한 법 -_-을 원하는 이들이 분명 없지는 않다는 거죠.
(이건 순전히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아동성폭행범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들도 좀더 처벌을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_-)

이웃한 말레이시아에서는 법원이 술을 마신 무슬림들을 연달아 처벌,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이슬람 세력이 강한 말레이시아 파항 주(州)의 최고종교법원은 15일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온 무슬림 노동자 나자루딘 카마루딘에게 태형 6대와 징역 1년을 선고했다고 뉴스트레이트타임스가 보도했습니다. 
나자루딘은 지난달 27일 레스토랑에서 술을 마시다가 급습한 종교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슬람 연방공화국인 말레이시아에서는 13개 주 가운데 파항을 포함한 3개 주가 무슬림의 음주를 금하고 있습니다. 나자루딘은 징역을 살면서 6차례에 걸쳐 등나무로 태형을 받아야 한다는군요. 
앞서 파항 주 종교법원은 지난 7월 두 아이를 둔 카르티카 슈카르노라는 주부에게 역시 음주혐의로 태형을 선고,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습니다.

소말리아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알샤바브가 모가디슈에 샤리아를 선포했으며 지난 9일 절도범 2명의 손목을 절단하고 성폭행범에게 태형 100대를 집행했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얼마전 ‘토착 탈레반’ 세력의 폭동이 일어난데 이어 일부 무슬림 거주지역에서 샤리아 도입 요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수단에서는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옥에 갇혔던 여성이 며칠 전 석방됐습니다. 이 나라에선 지난해 곰 인형에 학생이 ‘무하마드’라는 이름을 붙이게 놓아두었다는 이유로 영국인 여교사가 체포돼 외교 갈등이 일기도 했답니다. 



▲ 언론인 출신으로 유엔 직원이던 루브나 후세인은 수단 수도 하르툼의 식당에서 바지를 입고 
식사를 했다는 이유로 다른 여성 16명과 함께 붙잡혔습니다. 당국은 태형을 선고했다가 
국제적인 비난이 일자 벌금 200달러형으로 감형했습니다. 후세인은 말도 안 되는 판결에 항거, 
벌금을 내지 않겠다며 그냥 감옥에 들어갔는데 이를 이슈화시키고 싶지 않았던 정부가 압력을 넣었는지... 
수단 언론인협회가 후세인 몰래 벌금을 내어 다음날로 풀려났답니다.


심지어 관광대국인 이집트와 터키에서조차 세속주의에 반대하고 이슬람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이집트는 관광산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인데, 초특급 호텔에서 술을 파느냐 마느냐를 놓고 지난해에 논란이 벌어졌지요.

이슬람의 현대화·합리화를 거부하고 봉건사회나 전근대적 유목사회의 율법을 문자 그대로 해석, 형벌을 강화한 이런 조치들은 세계에 충격을 안기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최근 이슬람주의를 강조하고 나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1990년대까지도 이슬람화 움직임이 거의 없던 지역들입니다.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인구의 대부분이긴 합니다만, 1948년 건국 이래로 세속주의를 내세워왔고 헌법으로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즉, 무슬림이 많은 나라라는 면에서 이슬람 국가인 것이지 국가가 헌법상 ‘이슬람 국가’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란이슬람공화국’처럼 헌법에서 이슬람을 국교로 명시한 나라들과는 다르지요.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수단 역시 샤리아와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과거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나라들에서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옵니다. 먼저 서방을 등에 업은 독재정권들에 대한 반감,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으로 촉발된 반미감정의 왜곡된 표현이라는 분석입니다. 한쪽을 싫어하다 보니 다른 쪽 극단으로 가게 된다고 할까요.



▲ 여자들이 나서서 샤리아를 옹호하기도 합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샤리아 지지 시위를 하는 여대생들이랍니다. /사진 http://www.3quarksdaily.com



이런 대중적인 감정을 악용하는 정치세력들이 늘어나면서 샤리아 도입이 늘고 있습니다. AFP통신은 “아체의 개혁파 정치인들은 이슬람화에 반대하고 있지만 보수파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다물고 있다”면서 “심지어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조차도 이슬람 세력의 비위를 거스르는 말은 피하려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얼마전 재선에 성공한 유도요노는 실제 이번 아체 법안에 대한 논평을 요구받고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유도요노의 정치 파트너이자 라이벌인 유수프 칼라 전 부통령은 샤리아 도입을 드러내놓고 옹호하는 이슬람주의자입니다. 이 칼라라는 인물은, 아랍 관광객들의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고급 ‘과부촌’ -_-;; 을 만들자는 주장을 하는 등 입만 열면 설화(舌禍)를 빚는 자랍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세속주의를 굳게 지킨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총리의 장기집권이 끝난 뒤 이슬람세력이 급부상했습니다. 결코 훌륭한 지도자가 아니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독재 성향이 강했던 마하티르, 그의 정적이지만 도덕성 논란이 많았던 안와르 이브라힘 전부총리... 이들 기존 정치세력에게 신물 난 무슬림 유권자들은 각 지역의 이슬람 정당들에게 눈을 돌렸다는 겁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돈 많은 이슬람 강경파들이 인도네시아, 수단, 나이지리아 등의 이슬람 세력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우디 부자들이 돈 대주면서 이집트 방송, 영화사에 “야한 프로그램 만들지 마라, 여자들은 헤자브 씌워 내보내라” 이렇게 압력을 가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나요.

이슬람 전문가 사다난드 둠은 15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모로코에서 민다나오(필리핀)까지 청교도적인 이슬람주의가 퍼지고 있다”“세속국가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에서도 샤리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무슬림 사회 전반에 극단주의화가 그만큼 많이 진행됐다는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에겐 발리(인도네시아), 코타키나발루(말레이시아) 등의 관광지들만 눈에 들어오기 쉽지요. 그런데 그 이면에서는 이렇게 복잡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답니다.

*

쉬어갈 겸...

이란 여성 사진작가 샤디 가디리안의 작품입니다. 작품명 [Like Every Day]
샤리아에 묶여 있는 이란 여성들의 일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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