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바빌론, 사마라, 페트라

딸기21 2009. 12. 31.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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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를 하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참 막막하다. 낯선 세계, 때로는 낯선 나와의 만남을 누군가에게 생생하게 풀어놓기란 힘든 법이다. 거대한 유적들과 만났던 순간들을 생생히 떠올려 말이나 글로 옮기는 것도 쉽지는 않다. 수천 년 역사의 무게가 던져준 압도감. 그런 감정을 되새겨볼 때 내 머리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바그다드, 그리고 바빌론이다.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7년 전 나는 이라크에 갔었다. 그곳에서 만난 것은 사막, 고상한 이라크 사람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그리고 언제 다시 볼지 모를 바빌론이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 싹텄던 그곳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편이 낫겠다.
외국인들은 흔히 바빌론이라 부르고 이라크인들끼리는 바벨(바벨탑의 그 바벨이다)이라 부르는 사막의 쇠락한 유적. 전쟁 전까지 한국산 전자제품 상점들이 몰려 있던 바그다드 중심의 카라데 거리를 지나면 허름한 주택가가 나온다. 외곽으로 빠져나가면 주변은 온통 대추야자다. 바그다드가 있는 바그다드주(州) 바로 남쪽에 바빌론이 있는 바벨주가 있다. 길은 탄탄대로였다.

이 곳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태어났는데, 사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인간의 거주 흔적은 12만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흔적이 석유밭으로 유명한 북부 키르쿠크의 바르다-발카에 남아있다고 하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본격적인 ‘문명’은 기원전 3000년 무렵에 나타난다. 

문자로 남아 있는 최초의 왕국은 수메르다. 노아 크레이머의 <문명의 요람>에서 인용하자면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도시에 살면서 별을 공부하고, 아치와 바퀴달린 탈 것을 만들고, 서사시를 쓰고, 법령을 만들고, 리넨과 돛단배를 생산하고, 점성술의 기초를 세우고, 과학과 수학과 의학 문학 철학 종교의 기본 틀을 만들었던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바빌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슈타르의 문(사진 1)이다. 파랗게 칠한 벽돌에 사자를 돋을새김한 이 문은 레플리카(모조품), 즉 ‘가짜’다. 진본은 독일 페르가몬 박물관에 있다. 그렇지만 여기는 바빌론이 아닌가. 고대 수메르의 수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네부차드네사르의 공중정원이 있는 곳. 대추야자 나무가 있는 정원을 지나 흙벽돌로 지어진 성곽으로 올라갔다. 사담 후세인이 옛날의 공중정원을 80년대에 복원해놓았다(사진 2).


복원된 유적 밑에서는 아직 발굴되지 못한 수천 년 전의 벽돌들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벽돌은 진흙으로 만들었는데 굽지 않고 그냥 햇볕에 말린 것 같았다. 이 곳은 과거에 얼마나 영화로웠던 곳이었기에 그 옛날에 저런 큰 성을 만들었을까.
바빌론의 가짜 성곽 아래에는 수천년의 세월 동안 이리저리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묻힌 유적의 층들이 쌓여 있었다. 그 위에 사담은 네부차드네사르가 아닌 자신의 성곽을 세웠다. 군데군데 벽돌의 돋을새김에는 사담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했다. 성곽 바깥 부분에도 모래층 사이로 유적의 흔적이 보이는데, 함무라비와 관련된 유적이 있을까 싶어 주변을 돌아다녀봤지만 허사였다. 함무라비 법전이 만들어진 곳은 여기이지만 법령이 쓰인 돌판이 발견된 것은 오늘날의 이란 땅에서였다. 페르시아 제국이 이 지역을 제패했던 시절에 가져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지금 그 돌판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로제타석과 마찬가지로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지닌 돌이다.


사마라에 갔던 날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사마라는 바그다드 북쪽 120km,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다. 사마라에는 유명한 미나레트(사진 3)가 있다. 원래 미나레트는 모스크 옆에 있는 망루인데, 예전에는 여기에 사람이 올라가 큰 소리로 기도시간을 알렸다. 850여개의 사암 조각들로 만들어진 사마라의 미나레트는 나선형 구조로 유명하다. 여느 모스크의 첨탑과는 생긴 것이 완전히 다르다. 현지 사람들은 미나레트라는 말 대신 <말위야(Malwiya)>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사마라는 9세기에 한때 압바스 왕조의 수도였던 곳이다. 당시 칼리프(왕)였던 알 무르타심(알 무타와킬이라는 설도 있다)은 무능한데다 운명론자였다. 왕조 초기의 진취성은 사라졌고, 국력은 쇠퇴했다. 이 무능한 왕이 택한 것은 바그다드를 떠나 수도를 옮기는 것이었다. 칼리프는 사마라에 새 도시를 만들었는데, 사마라는 <보는 사람이 즐겁다>는 뜻이라 한다. 그때 모스크와 탑을 만들었다. 사마라의 미나레트는 높이가 52m다. 숫자로 하면 감(感)이 잘 오지 않지만, 평지에 홀로 우뚝 서있는 탑은 아주 거대하다. 높으면서도 위압적이지 않고, 뭔가 아슬아슬하고 신비한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준다.
군데군데 패인 돌계단을 올랐다. 난간도 없는 계단을 한참 뱅글뱅글 돌아 꼭대기에 이르렀더니 티그리스강과 사마라 시가지, 탑 밑에 있는 알리 하지 모스크의 금빛 지붕이 보였다. 먼지바람 사이로 갈대숲을 끼고 티그리스 강이 굽이굽이 흘렀고 물새가 날았다. 사마라의 탑은 나중에 미군과 저항세력의 교전 과정에서 수니파 저항세력의 박격포 공격으로 윗부분이 무너졌다. 미군이 탑을 정찰기지로 쓴 것이 발단이었다. 얼마 안 가 시아-수니파 간 충돌이 일어나 알리 하지 모스크의 금빛 지붕도 박살이 났다.

무언가를 앞에 놓고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어떤 조각상, 건축물, 유적을 보면서 머리 속에 천둥번개가 지나가는 것 같고 가슴은 묵지근해지고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어지는 기분. 이런 압도적인 감정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뭐니뭐니 해도 유적의 크기일 것이다. 하지만 63빌딩이나 강남의 주상복합 아파트 앞에서 그런 압도되는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그 감정의 또 다른 축은 거기 쌓아올려진 시간의 무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역사다. 너무나 크고 너무나 오래된, 그 경이로움. “이것은 기원전 2000년의 유적”이라는 말은, 책에서 볼 때와 실물로 눈앞에 두고 있을 때에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이라크에서 무엇보다 나를 압도한 것은 아가르구프의 지구라트(사진 4)였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막 한 가운데의 기묘한 건축물. 누가 무엇에 쓰기 위해 이 돌더미를 쌓아올렸는지는 학자들도 정확히 모르지만 그 돌 사이에 잠시 몸을 기대고 앉아 있으면 이 세상을 초월한 듯한 느낌이 든다. 기원전 1500년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누가, 왜 이 돌더미를 세웠는지는 학자들도 의견이 엇갈린다. 고대 유적도시 우르에 가면 더 큰 지구라트가 있다는데 그것은 보지 못했다.

요르단의 페트라는 인디애나 존스 영화를 찍은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몇 해 전 '세계의 새로운 7대 불가사의'에 뽑히기도 했는데, 이제는 한국인들에게도 제법 알려진 관광지다. 아름답고 정교하기로 따지면 페트라는 세상 어느 유적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앞으로 어디를 가든 평생 잊지 못할 곳.
높이 솟은 협곡을 사이사이 누비고 지나가면 바위틈 사이로 눈앞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암벽사원이 턱 허니 나타난다(사진 5). 붉은 바위를 파들어 간 석실이 있고, 윗부분은 앞면(facade)만 있는데 그 등장하는 방식이 가히 충격적이다. 협곡과 사막과 바위산이 섞여 있는 페트라는 너무나 대단하고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하루 종일 모래바람 마시며 입을 벌리고 다녔다.


페트라에 간 날, 하루 동안 14km 정도를 걸었다. 1시간 동안 바위산을 올라 기어이 나바테온 신전(사진 6)을 보고 왔다. 영화 <트랜스포머-패자의 역습>에도 나왔던 곳이다. 영화에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룩소르의 신전, 요르단의 페트라가 모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로 나오는데 사실과 다르다. 역사유적을 마구 부수는 로봇영화에 혀를 찰 수도 있지만 어쩐지 그 어마어마한 로케이션의 컨셉트들에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라미드도, 룩소르와 카르나크의 거대한 기둥들도, 페트라의 나바테온 신전도 모두 “외계인이 만들었을지도 몰라”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곳이니 말이다.
나바테온의 신전 앞에서 나는 인간의 위대함과 오만함 모두를 생각했다. 인간은 얼마나 위대하기에, 혹은 얼마나 오만하기에 2000년 전에 벌써 바위산 꼭대기에 저 높은 신전을 지었을까. 페트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국립공원이지만 해가 지고나면 베두인 세상이 되어 위험천지로 변한다.


여행. 언제나 나의 꿈속에 들어있지만 정작 발걸음을 옮기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면 또다시 그것이 꿈이었던가 싶은. 여행의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 7년 전 어느 여행길에 적어두었던 노트를 오랜만에 펼쳐들었다.
“사막의 해는, 뉘엿뉘엿 지는 것이 아니었다. 저녁 6시가 되자 해는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버렸다. 그리고는, 밤이었다. 불빛이라고는 띄엄띄엄 보이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외에는 없었고 창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흙 같은 어둠이었다. 나는 <완전한 어둠>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날 나는 갈망했던 대로 바그다드에 와 있었다. 나를 이곳에 옮겨놓은 힘은 바로 나 자신의 갈망이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보았던 사막, 지평선, 모래바람, 갑자기 사방을 에워싸던 어둠과 역사의 무게감이 되살아난다.

[사진 출처]

1. 미군 병사 데니스 존슨이 2004년 촬영한 바빌론의 이슈타르의 문(레플리카)
2. 사담 후세인이 복원한 바빌론 공중정원 성곽. www.travel.webshots.com
3. 사마라의 대(大) 미나레트 plaidnet.greenwichacademy.org
4. 아가르구프의 지구라트 Associated Media Group
5. 요르단의 페트라. 협곡을 지나가면 눈 앞에 장엄한 신전이 나타난다 to-see-before-you-die.com
6. 페트라의 산 정상에 있는 나바테온 신전 to-see-before-you-die.com


[KT&G 상상마당 컬쳐매거진 BRUT-in] 2009년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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