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라크의 민주주의 실험- 총선은 일단 '합격점'

딸기21 2010. 3. 8. 18:48
728x90
미군 철수가 시작된 이래 처음 실시된 7일 이라크 총선은 유혈사태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되게 치러졌다. 왕정과 민족주의 정권, 쿠데타와 군부독재, 사담 후세인의 철권통치 등 얼룩진 현대사를 가진 이라크는 ‘민주주의 국가’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이번 선거에 미국 등 서방은 “이라크가 ‘중동 민주화’의 모델이 될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독재국가나 전제 왕정이 지배적인 중동에서 이라크의 민주주의 실험이 성공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mployees of the Independent High Electoral Commission (IHEC) tally
votes at a counting station in Baghdad March 7, 2010. /REUTERS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7일 투표소를 노린 무장세력들의 공격 속에서도 이라크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한 것을 치하하며 “폭력에 굴하지 않고 참정권을 행사한 이라크 국민들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는 성명을 냈다. 백악관은 “이번 총선은 이라크 역사의 중대한 이정표”라면서 내년 말까지로 예정된 미군 철수계획을 재확인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미군 철수 일정에 차질을 빚을지 모른다는 언론들의 지적을 의식한 듯,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라크 총선 폭력사태는 미미한 수준”이라면서 남부 9개 주 가운데 8개 주에서 선거 당일 어떤 폭력사태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밀리반드 영국 외무장관은 “선거일의 유혈사태는 이라크가 맞닥뜨린 도전을 보여주지만, 이번 총선은 이라크 국민들의 국가 재건 열망도 아울러 보여줬다”고 말했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교장관은 “이라크인들이 미래 세대를 위해 투표소로 나간 것은 시련을 극복하고 테러를 거부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라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라크의 높은 투표율과 선거 열기를 전했고, 영국 텔레그라프지는 “민주주의가 중동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고 썼다.

앞서 미국 조지 W 부시 전대통령은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몰아낸 뒤 ‘레짐 체인지(체제 교체)’ 전략을 옹호하면서 ‘중동 민주화 구상’을 내놓았다. 하지만 중동·이슬람권의 맹주이자 친미 국가인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의 독재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못해 냉소를 받았다. 외부의 힘으로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이식, 뿌리내리게 할 수 있을지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 대해서는 “일단은 합격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유혈사태가 없지 않았지만 오랜 독재국가였던 이라크에서 강압이나 선거부정이 거의 없이 민주적으로 투표가 이뤄진 것 자체가 ‘기념비적인 변화’라는 것이다. 전후 첫 총선이던 지난 2005년 12월 선거와 비교해도 폭력사태는 크게 줄었다.
아랍권 대표 언론인 알자지라방송도 이라크의 ‘민주주의 연습’이 역내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부시 행정부 관료 출신인 리처드 그레널은 알자지라 웹사이트 기고에서 “부시 전대통령이 2007년 ‘서지’ 작전으로 대규모 미군을 투입, 이라크 전황을 역전시켰을 때 일부 반론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 이라크는 민주주의로 향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A Kurdish resident kisses a picture of Iraq‘s President Jalal Talabani
as he celebrates with others after parliamentary voting in Kirkuk, March 7, 2010. /REUTERS

(이 사진을 보니, 2002년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는 '100% 투표 99.9% 찬성률'의
말 안되는 국민투표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바그다드 거리에는
후세인을 연호하는 축제 인파가 꼭 저런 모습이었는데. )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중동의 중심부에 위치해있고 시아파-수니파가 공존하는 나라인 이라크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를 거부하고 세속주의로 나아가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는 86개 정당, 12개 정당·정파연합이 경합을 했지만 주요 정당이나 정치조직은 대부분 종교 율법과 근본주의가 아닌 세속주의·입헌민주주의 원칙을 내세운 정당들이었다. 시아파 정당 ‘이라키야’를 이끄는 이야드 알라위 총리와 수니파 유력 정치인 아드난 파차치 전 외무장관은 알자지라방송 대담에 나와 “이번 총선에서 보이듯 이라크는 극단주의 대신 세속주의 쪽으로 부쩍 한 걸음 다가갔다”고 평가했다.

아직은 시작일 뿐이라는 지적도 많다. CNN방송은 “유권자들은 인프라 재건과 경제개발, 유전 이권의 공평한 배분 등 구체적인 요구사항들을 갖고 투표소로 나온 것”이라면서 재건이 늦어지고 정치적 갈등이 계속될 경우 언제라도 혼란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선거로 이라크의 폭력사태가 종식될까”를 묻는 알자지라 여론조사에는 응답자 1만2000여명 중 89.5%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