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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7) 민주화로의 갈림길

딸기21 2010. 5. 1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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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부분 국가들은 1960년대 건국 이후 군부 쿠데타와 군사독재를 경험했다. 가장 최근인 1980년 독립한 짐바브웨는 30년간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독재에 시달리고 있다. 기니와 모리타니에서는 군사쿠데타가 이어지고 있다. 이디 아민의 폭정을 끝낸 우간다의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몇해 전부터 ‘종신집권 개헌’을 하며 시대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 토고에서는 40년 철권통치를 했던 에야데마 냐싱베의 아들 포레 냐싱베가 세습 집권했다.
아프리카의 민주주의 성적표는 경제만큼이나 형편없어 보인다. 그러나 뉴스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독재체제를 끝내고 민주화로 나아가는 나라들이 더 많다. 문제는 이런 나라에서도 지역 갈등과 종족 갈등, 종교간 충돌, 부패와 경제 퇴행 등 심각한 민주화의 진통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강압적 통치체제가 사라진 뒤 모든 갈등이 표면으로 치솟아 민주주의를 좀먹고 있는 나이지리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서방을 위한 선거, 서방을 위한 개혁

인구 1억5000만명(세계 8위)의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신흥경제국인 동시에 민주화의 실험장이다. 1999년 사니 아바차 장군의 군부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군정에서 민정으로 ‘평화적 이양’에 성공했을 때 세계는 이 나라에 박수를 보냈다. 나이지리아가 내전 없이 민주화 과정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적이었다. 군 장성 출신이지만 군복을 벗고 ‘민선 연방대통령’으로 99년과 2003년 연달아 집권한 올루세군 오바산조 전 대통령은 아프리카 민주화의 모범으로 외부에서 추앙받았다. 두 차례 대선과 사이사이 치러진 총선, 지방선거(주의회·주지사 선거) 등은 국제 감시단으로부터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인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지난달 라고스 대학 정치학과 카요데 소레메쿤 교수를 만나 ‘상대적으로 공정하고 깨끗했던’ 지난 선거들에 대해 물었다. 그는 “공정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나이지리아의 민주화 과정은 첫째 취약하고, 둘째 비용이 많이 든다. 이 나라 사법제도와 반부패 기구들은 아직도 약하다. 제도적 뒷받침이 약한 민주주의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소레메쿤 교수는 “기나긴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사회가 고도로 군사화됐다”고 지적한다. 군 출신 인사들이 여전히 연방정부와 36개 주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했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부근에 도열한 군인들. 2002년 정부군-반군 간 내전이 벌어진 뒤 유엔평화유지군 관리감독 하에
휴전조치가 실시되고 있으나 아직 안정은 요원하다. 아비장 | 구정은 기자



코트디부아르 내륙도시 부아케 부근 도로에서 검문을 하는 반군 병사들. 휴전협상으로 무장해제를 약속했지만
반군은 여전히 국토의 절반을 사실상 통치하고 있다. 부아케/구정은 기자


가난한 이 나라에서 행정비용은 터무니없이 많이 들어간다. 민간정권이 되면서 선심정책과 층층이 쌓인 부패 때문에 정부 운영비용이 엄청나게 늘었다. 행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관료기구는 비대해졌다. 독재가 무너진 후 1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혜택’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부패와 정실주의 때문에 민주화의 혜택이 전 국민들에게 고르게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북부 무슬림 하우사족과 기독교 종족들 간에는 유혈충돌이 수시로 반복된다. 겉보기엔 종족·종교 갈등이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정치투쟁’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가난에 있다. 가난한 주민들은 얼마 되지 않는 생존 자원(토지와 물)을 차지하기 위해 종족·종교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집단을 형성,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인다. 정치지도자들은 사실상 이를 조장·방조하며 자기 세력을 불리고, 연방정부에 압력을 넣어 이득을 얻어낸다. 억압적인 군부정권이 무너진 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다고 느끼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부작용 때문에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목소리다.






개발과 민주주의, 르완다의 실험

90년대 끔찍한 제노사이드(인종말살)와 내전을 거친 르완다. 2000년대 들어 르완다는 아프리카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정치적 안정을 구가하고 있다. 내전 이후 처음 치러진 2003년 대선에서는 폴 카가메 현 대통령이 95%를 득표해 당선됐다. 르완다애국전선(RPF)을 이끌고 내전을 종식시킨 카가메는 국민들에게 ‘국부(國父)’로 추앙는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투자환경이 좋은 나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치안 유지와 경제 재건에 힘을 쏟은 것도 카가메의 업적이다.
2003년 제정된 새 헌법은 어느 나라 헌법보다도 민주적이라는 평이다. 인종, 민족, 종교에 따른 차별이나 정치활동은 원천적으로 금지됐다. 의원의 30%를 여성 몫으로 할당했다. 2008년 총선에서는 전체 의석의 56%를 여성이 차지했다. 르완다국립대학 정치학과의 니코데메 부과바리 교수는 “르완다에서는 이웃 부룬디나 콩고민주공화국과는 달리 밤에 여성이 혼자 돌아다녀도 위험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인종말살 내전 때 집단 강간과 여성 살해가 전국을 휩쓸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르완다 수도 키갈리 도심의 대형 상점인 나쿠마트 내부에 폴 카가메 대통령의 사진이 붙어 있다. 키갈리 | 이청솔 기자


오는 8월 대선에서도 카가메의 재선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카가메가 현재의 인기를 바탕으로 독재의 길을 걸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우간다의 무세베니는 1986년 역시 내전을 끝내고 집권한 뒤 민족주의와 개발을 앞세워 민심을 얻었다. 그러나 집권 뒤 개헌을 통해 정당 설립을 금지하고 대통령 3선 제한 조항을 삭제, 사실상 독재체제를 부활시켰다. 르완다에서도 카가메의 권력 독점을 읽을 수 있는 징후가 여러 군데서 포착된다. 키갈리 교민 이충성씨는 “카가메가 빅브라더처럼 모두를 감시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선을 6개월 앞둔 지난 2월 키갈리에서 수류탄 폭발사건이 일어나 2명이 숨졌다.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전 육군참모총장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망명했다. 르완다 정부는 군 인사들과 ‘잠재적 대선주자’들을 우르르 잡아들여, “폭발 사고를 기회로 정적들을 제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카가메 정부의 언론탄압에 대해서는 ‘국경없는 기자회’와 미국 등이 이미 여러차례 경고했다. 카가메가 장기집권을 위해 개헌을 시도한다면 르완다는 다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지 모른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속설처럼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고개를 들 수도 있다. 연방법원에서 일하고 있는 한 시민은 “이미 집권당인 RPF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 모든 부를 독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트디부아르에서는 건국 영웅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대통령이 33년간 집권하고 93년 사망했다. 여러 정치세력의 각축전이 벌어지더니 2000년 급기야 쿠데타가 일어났다. 2년 뒤에는 북부의 반군이 정부에 맞서 내전을 일으켰다. 사망자 수는 많지 않았지만 남북으로 나라가 갈라졌다. 국토의 절반, 인구의 3분의1을 차지하는 북부 지방은 여전히 조세·치안 등을 반군이 담당하고 있다. 내륙의 수도 야마수크로에는 거대한 정부청사와 대통령궁이 위엄을 자랑한다. 하지만 북부로 조금만 올라가니, 총 든 반군들이 시외버스와 트럭들을 세우고 통행세를 걷고 있었다.
케냐에서도 24년간 집권한 다니엘 아랍 모이가 2002년 물러난 뒤 혼란이 벌어졌다. 콩고민주공화국(DRC·민주콩고)은 내전과 쿠데타와 대통령 암살을 겪은 뒤 국제사회의 감시 속에 선거가 실시됐고, 암살당한 전대통령 아들인 조셉 카빌라가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돈으로 키워진 이 나라의 새로운 군대는 요즘 동부 앙골라 접경지대에서 반군과 싸운다는 핑계로 주민들을 살해·착취하고 있다. 라이베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내전’으로 온 나라가 초토화된 뒤 민주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국가원수인 엘렌 존슨-설리프 대통령이 2006년 취임했으나 예산도 재정도 행정력도 없어 재건작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그래도 희망은 민주주의 뿐

군사독재정권이 끝나고 민주주의의 길로 나가기 시작한 나라들이 혼란에 휩싸여 오히려 사회·경제적으로 후퇴한 사례는 많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자유선거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런 나라들을 지켜본 외국 전문가들 사이에는 ‘아프로 페시미즘(Afro-pessimis·아프리카 비관주의)’이 널리 퍼져 있다. 외부에서 아무리 원조를 해줘도 부패 때문에 제대로 투자가 되지 않고, 힘겹게 민주주의를 이뤄도 오히려 부작용만 기승을 부린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에도 ‘아프리카적 특수성’이란 것이 있다면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는 주장한다. 주로 아프리카 내부에 그런 시각이 많다. 일종의 개발독재 옹호론으로도 비친다.

르완다국립대학 정치학과의 니코데메 부과바리 교수는 “르완다는 이제 막 첫발을 뗀 나라”라며 “서구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인도 출신의 미국 저널리스트 파리드 자카리야는 <자유의 미래>에서 “표를 통해 정권을 잡는 선거제도만으로는 민주주의를 결코 강제할 수 없다”면서 “서방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교육수준이 낮은 제3세계 유권자들에게 선거를 ‘선물’해주고 자화자찬해왔다”고 폄하했다. 반면 유엔과 서방국들은 “보편적 인권·민주주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어디에서나 중요하며 아프리카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맞선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민주주의인가’ 하는 것이다. 개발경제학자 폴 콜리어와 앙케 회플러는 민주주의를 ‘선거경쟁(자유선거)’과 ‘견제와 균형’이라는 두 측면으로 나눠 아프리카 국가들을 분석했다. 남아프리카의 보츠와나는 1966년 독립 뒤 세렛세 카마를 비롯해 3명의 대통령이 재선, 삼선으로 집권했고 2008년 카마의 아들인 전직 장성 이안 카마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 나라는 ‘선거경쟁’ 측면은 약하다고 볼 수 있지만 똑똑한 지도자, 잘 기능하는 관료제도를 갖췄다. 정치권 내에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는 까닭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국가개발에 배분했고, 아프리카에선 드물게 저소득 국가에서 중소득 국가로 이행하고 있다. 분쟁은 한번도 없었다.

반면 나이지리아에서는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으면 공직을 자기 집안, 자기 부족 출신들로 채우는 전형적인 정실주의 국가다. 권력층은 자원 이익을 빼돌려 유권자들의 표를 사고, 집권하면 다시 이득을 챙긴다.
라고스 대학 정치학자 카요데 소레메쿤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민주주의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대부분의 군부독재가 아시아에서처럼 ‘피플파워’가 아닌, 독재자의 죽음이나 내전 등으로 인해 종식됐다”고 지적했다. “우린 우리 손으로 나쁜 지도자를 몰아내고 좋은 지도자를 선택한 경험이 별로 없다. 그래서 시민사회가 탄탄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나라의 미래를 “신중한 낙관주의(cautious optimism)”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언론의 비판기능이 살아 있고 사법제도가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국민의 정치적 선택을 통해 정치적 리더십을 바꾸는 것만이 방법”이라며 이를 위한 끝없는 교육, 대중들의 각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라고스·키갈리/구정은·이청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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