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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에 돈 대주는 이란

딸기21 2010. 10. 2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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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문에 걱정이 끊일 날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지 못할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한 인과응보이겠죠. 아프간과 이란의 관계가 갈수록 가까워지자 미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BBC방송, 알자지라방송 등이 25일 보도했습니다.


발단은 뉴욕타임스의 보도입니다.
뉴욕타임스는 24일 이란 측이 현금으로 가득한 가방을 아프간의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 측근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올 초 카르자이는 미국의 앙숙인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카불로 초청했습니다. 초대받은 손님 아마디네자드는 카불의 대통령궁에 와서 반미 연설을 했고요. 그 때 아마디네자드가 현금이 들어있는 돈상자 2개를 가져와서, 한 개는 카르자이의 측근인 우마르 다우드자이 대통령 실장에게 ‘개인적으로’ 주었고, 또 다른 한 개는 대통령궁에 전달했다는 겁니다.




President Hamid Karzai of Afghanistan, center, speaking with his chief of staff, Umar Daudzai. /로이터



뉴욕타임스 보도에 대해 카불 주재 이란 대사관은 “말도 안 되는 모욕”이라면서 극구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이튿날인 25일 카르자이는 이 보도가 사실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카르자이는 다우드자이 대통령실장이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란 정부는 해마다 한두차례 50만~60만 유로(약 7억8000만~9억4000만원) 씩을 우리에게 공식 원조해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카르자이는 이란의 돈을 받았을 뿐 “잘못된 일은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란 돈이 아프간 내에서 반미 행위에 이용되거나 탈레반 등 극단주의자들에게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은 없다며 선을 긋고 나선 것이죠. 카르자이는 “현금은 투명한 과정을 거쳐 대통령실 집무에 쓰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이란이 아프간 정부에게 돈을 줬다는 사실에 늘 그렇듯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빌 버튼 백악관 대변인은 카르자이의 기자회견 뒤 몇 시간 만에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란이 좀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또 미국인들과 국제 사회는 이란이 아프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걱정할 “모든 이유가 있다”(즉 이유가 산더미처럼 많다)고 말했다고 BBC는 전했습니다.

“다른 모든 주변국들이 (아프간) 정부 수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이란도) 그런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아프간이 테러범들의 안식처가 되거나 그 영토 안에서 공격계획들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버튼의 말입니다. 그는 또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의 자금 제공에 대한 보고서를 검토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자금 흐름 등 보고서 내용에 대해서는 더이상 설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이란도 아프간을 돕고 싶다면 도울 권리가 있다”면서 “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테헤란 측의 의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란 현금유입설에 대해,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반응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앞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장교는 이 돈상자들이 이란에서 온 것임을 확인해주지는 않았지만 “이란 정부가 아프간 내에서 미국과 나토의 임무를 방해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공격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니다.
근래 이란이 아프간에 적극적으로 손을 뻗치고 있고, 이 사실을 나토나 미군도 알고 있다는 얘기가 되겠죠.

카르자이는 이란 돈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미국 조지 W 부시 전대통령과도 논의를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것은 숨겨진 일도 아니고, 우리는 이란의 도움에 감사하고 있다. 미국도 같은 일(아프간에 대한 원조)을 한다. 미국도 우리 정부 측에 현금을 제공하고 있다.”

아프간에 주재했던 유럽연합(EU)의 전직 외교관 프란체스크 벤드렐은 BBC방송 인터뷰에서 “아프간 정부가 (외국으로부터) 현금 기부를 받는 것은 전혀 이레적인 일이 아니다”라면서 “여러 나라 정부들은 앞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아프간 대통령궁에 돈을 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것은 (전쟁) 초기부터 이뤄져있던 일이고, 미국이 그 선두에 서 있다. 이란이 그런 일을 한다 해서 놀랄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아프간의 자원, 지정학적 위치 등을 고려해 영향력 싸움에 뛰어들어 현금을 퍼붓고 있는데 이란이라고 못할 까닭은 없다는 거죠.
벤드렐은 아프간 대통령궁에 현금이 몰리고 있는 현상에 대해 “서구가 아프간에 적절한 정부를 세우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말했습니다. 카르자이 정부의 부패상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게다가 미국은 짐스러운 카르자이를 계속 밀어줄지를 놓고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해 대선에서 카르자이가 엄청난 부정선거를 저질렀을 때부터 “미국이 카르자이를 버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그놈의 대안부재론 때문에 다시 카르자이를 승인해주기는 했지만, 이 문제로 유엔까지 흔들거렸습니다(반기문 사무총장이 반 카르자이 입장에 섰던 아프간 담당 고위 외교관을 잘라내면서 말이 많았었죠).






어쨌든 이란과 아프간이 가까워질 경우, 미국의 골칫거리가 될 것은 확실합니다.

이란은 아프간과 붙어 있습니다. 아프간 서부 헤라트 일대는 이란계 부족들이 살고 있고, 이란과 경제적으로 밀접히 연결돼 있습니다. 
사실은 아프간 전체가 다 ‘역사적’으로 보면 범 이란(페르시아)권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죠. 둘 사이의 관계가 악화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1979년 이란에서는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고, 아프간은 소련군의 침공으로 점령당했습니다.

이란은 소련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사회주의에 반대했기 때문에 당연히 점령시절 아프간과의 관계도 악화됐고요. 이란은 소련군 주둔 뒤 아프간 헤라트와 마샤드에 있는 자국 영사관을 폐쇄했습니다. 그리고 소련군이 주기적으로 국경을 침범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했습니다. 1985년에는 이란 측이 아프간 내 시아파 무슬림 저항세력을 지원해 소련의 조종을 받는 카불의 괴뢰정권에 맞선 투쟁을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소련 점령 시절 아프간인들 상당수가 국경 너머 이란으로 피신하기도 했습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금도 아프간 난민 300만명 이상이 이란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난민들은 소련 점령 시절 넘어간 사람들, 탈레반과 북부동맹 등 아프간 내 군벌들 간 내전에 밀려 피란을 간 사람들, 미국의 침공 뒤 탈출한 사람들 등등 다양하다고 합니다.




이란은 탈레반과는 상극이었습니다. 이란은 수니파 극단주의 조직인 탈레반에 맞섰던 아프간 내 군벌동맹체 북부동맹을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프간 전역을 장악한 탈레반은 1998년 북부동맹의 근거지였던 북부 중심도시 마자리샤리프마저 장악하고 그 곳에 있던 이란 외교관들을 처형했습니다. 당연히 이후 이란과 아프간 탈레반 정권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됐습니다.

2001년 미국의 침공으로 탈레반이 쫓겨나고 카르자이 정권이 들어선 뒤 이란은 이렇다할 행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라크와 아프간 사이에 끼어 있는 이란의 입장에서 더 시급한 것은, 동쪽의 아프간이 아닌 서쪽의 이라크였을 테니까요. 
게다가 수니파가 다수인 아프간과 달리 이라크는 시아파가 다수인 나라로 이란의 영향력이 바로 먹혀들기 쉬운 조건입니다. 그래서 이란은 1980년대 8년 전쟁 이후 손 끊었던 이라크와의 관계를 복구하는 데에 더 신경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이란이 아프간 쪽으로도 부쩍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란은 두 나라 사이의 국경검문소를 정비하고, 전력선과 도로를 까는 등 인프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란은 테헤란에서부터 아프간 마샤드와 헤라트로 가는 철로를 복구하고, 궁극적으로는 테헤란에서 카불까지 이어지는 철도를 개설할 계획입니다.

이란과 아프간 사이의 경제교류도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해 아프간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나라가 이란입니다. 인프라, 에너지, 농업, 보건까지 모두 이란의 자금이 들어갔다 합니다. 
아프간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08년 이란의 대 아프간 수출은 8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이란은 주로 청과류, 건조과일, 광물, 향신료 등 400만 달러 어치를 수입했습니다. 8억 달러 중 400만 달러랍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이란이 아프간에 수출한 겁니다. 석유, 시멘트, 건설자재, 카펫, 생활용품 등등이 모두 이란에서 아프간으로 간다는 겁니다. 

이란이 아프간과 가까워지면(더불어 이라크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미국은 떨떠름한 입장이 되겠지요. 중동-아시아에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두 차례 전쟁까지 치렀는데 숙적이 떡을 가로채가는 꼴일 테니까요.

그래서 더욱 더 이란을 옥죄려고 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고달픈건 이란, 아프간, 이라크의 ‘보통 사람들’ 뿐이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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