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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픽 샤미의 '파리 젖짜는 사람'- 울며 웃으며 읽은 시리아 이야기

딸기21 2011. 2. 1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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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인 누흐와 그의 민족에게

쿠데타란 우리 학생들 사이에서는 3일에서 5일간의 휴교를 의미한다. 다마스쿠스에서는 쿠데타가 자주 일어나고 또 빨리 진행된다. 그리고 대부분 새벽녘에 발생한다. 구시가지에 사는 우리는 우선 라디오를 통해 쿠데타 소식을 접한다. 갑자기 고요해지고, 다음에는 행진곡이 뒤따른다. 그러면 우리는 쿠데타가 성공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공한 쿠데타의 경우는 총소리 같은 것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쿠데타가 실패해서 전투가 격렬해지고 길어지면, 따따따따하는 기관단총 소리와 귀를 멍하게 만드는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 후에는 한동안 음악이 연주되고, 모든 것은 구정권의 잘못이라는 새 정부의 공식 발표가 뒤따르는데, 서로 베껴 쓰기라도 한 듯 쿠데타를 일으키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랬다. 그들이 하는 말은 원칙적으로 동일했다. 부패와 족벌주의 그리고 특히 팔레스타인을 아직 해방시키지 못한 것은 구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정부는 부패를 뿌리째 뽑고, 정의를 구현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약속했다. 살림 아저씨는 15 년 전, 첫 번째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는 환호를 지르며 다음날 아침까지 축배를 들었다고 했다. 두 번째 쿠데타 때는 그냥 박수만 쳤고, 세 번째부터는 웃기만 했다고 했다.
“새로운 권력자들은 부패의 뿌리를 찾다가 무지무지한 덩굴식물의 덤불에 빠져들어 그 달콤한 맛에 중독 돼버리지. 그들은 금방 시들어버리고, 그러면 잔뜩 굶주린 채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교체되고 마는 거야.”
며칠 전 새 정부가 구정부를 과격하게 몰아냈을 때 아버지가 말했다.
“자네, 그 말 한 번 잘했네...... 그래, 그 달콤한 독이 그 사람들을 빨리 시들게 만들지...... 말 한 번 잘했어.”
차를 마시면서 살림 아저씨가 아버지를 칭찬했다. 웬만해서는 다른 어른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살림 아저씨의 성격을 잘 아는 터라, 나는 그 말을 한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그럼 팔레스타인은 언제 해방되죠?”
내가 물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되겠지.”
살림 아저씨는 라디오에서 말한 것을 그대로 반복하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계속해서,
“미국은 눈 두 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우고, 러시아는 세 번 만에.”
라고 말하고는 또 웃었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우리의 친구잖아요. 라디오에서 항상 그러던데요.”
내가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 자주 눈을 껌뻑거리는 통치자는 친구가 필요 없는 법이다. 단 세 달만 지나면 또 다른 정부가 들어서서 이렇게 말하겠지. 만약 구정부가 한 손으로 우리의 목을 움켜쥔 채 다른 손으로는 스위스로 돈을 빼돌리지만 않았어도,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킬 수 있었을 거라고 말이야.”
 
우리 역사 선생님이 감옥에 갇혔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호감 가는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유머 있고, 책에 적힌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면서도 시험에서는 요구하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은 선생님이었다. 나는 새로운 정부가 팔레스타인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방시킬 것이라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 내 목을 쥐고 있는 그들의 무자비한 손길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새로 온 선생님은 겁이 많은 타입이었다. 하지만 그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 대부분이 겁쟁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베리아에 있는 학교로 보내어질까봐 무서워했다. 우리에게 시베리아는 이스라엘 근경을 말한다. 자원해서 그곳으로 가려고 하는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다마스쿠스의 제일 나쁜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이 시베리아의 제일 좋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더 나았다. 물론 이것은 우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오히려 겁이 많은 선생님을 불쌍히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새로 온 선생님은 참기 힘들었다. 첫 수업 이후 나는 우리가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연도를 좋아했고, 수업은 회를 거듭할수록 지겨워졌다.
우리가 막 661년부터 750년까지 이어졌던 우마야드 왕조를 배우고 난 뒤였다. 선생님은 우마야드의 업적에 관해 열광적으로 설명했다. 지리적인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에게 세계는, 아랍과 아랍인의 은혜를 입고 사는 몇 개의 보잘것없는 나라들로 뭉뚱그려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랍인이 많은 나라를 개방시켰다고 강조했다. 특히 ‘개방’이라는 단어를 유독 크게 소리 내어 말했는데, 점령에 대한 자신의 자부심을 우리에게 확실히 드러내고 싶은 것 같았다.
“왜 정령이 아니고 개방이죠? 그럼 그 나라들이 닫혀 있기라도 했던 건가요?”
쿠르드 소년인 누흐가 물었다. 몸은 약했지만 아주 용감한 아이였다.
“개방시킨 게 확실하지, 이 멍청한 녀석아. 그 나라들은 아라비아 문명에 의해 문호가 개방됐고, 그래서 야만에서 벗어난 거야.”
“그럼 오스만은 400년 동안, 그리고 프랑스는 25년 동안 우리를 개방시킨 게 되겠네요.”
누흐가 다시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건 식민정책이야. 그건 다른 거라고.”
선생님이 흥분하자 우리는 웃었다. 뒷줄에서 이스마일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저는요, 있잖아요, 저는 아무에게도 개방당하고 싶지 않은데요.”
화가 날 대로 난 선생님은 자를 들고 교탁을 두드렸다.
“이런 돼먹지 못한 녀석들에게 영광스러운 아랍의 역사를 가르치다니, 정말 한심한 노릇이로군.”
그는 몸을 돌려 누흐를 노려보았다.
“거기 너, 일어나!”
누흐는 일어나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 애는 결코 고개를 숙인 적이 없다. 교장선생님이 말을 할지라도 말이다.
“너는 네가 아랍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지도 않으냐?”
“아니요.”
누흐가 분명하게 말했다.
“뭐? 뭐라고?”
선생님은 불같이 화를 내며 눈초리를 치켜세우고서 그를 째려보았다.
“그 애는 쿠르드인인데요.”
몇 명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예! 저는 쿠르드인입니다.”
누흐는 확인도장이라도 찍듯이 말했다.
“뭐라고? 쿠르드인이라고? 이럴 수가! 앉아!”
선생님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우리가 알기로 30만이 넘는 쿠르드인들이 시리아에 살고 있었다. 우리는 누흐를 비롯해 그의 쿠르드인 친구 몇몇과 자주 놀았다. 그 애들이 우리에게 빨치산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기 때문에, 우리는 모로코보다 쿠르디스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아는 것은 오로지 우마야드, 세계를 놀라게 한 자신의 우마야드 왕조뿐이었고, 우마야드 왕조를 다 배우고 나자, 그 이후 정권을 이어받은 종족에 대해서는 있는 대로 화를 냈다. 우리가 십자군 전쟁을 배우는 한 달 내내 누흐는 이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단어를 선택하는 데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이슬람교도로서 그리스도교에 큰 경의를 표하는 바이지만, 유럽에서 쳐들어온 무리는 이웃 사랑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진짜 불한당들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라비아의 그리스도교인들이 그에 대항해 최전선에서 싸웠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살라딘을 유럽인에 맞서 대항한 가장 위대한 아라비아 장군으로 찬양할 때였다. 갑자기 누흐가 독거미에 쏘인 듯이 펄쩍 뛰었다.
“하지만 살라딘은 쿠르드족이었어요.”
누흐는 흥분하여 소리쳤고,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그건 우리가 몰랐던 사실이었다. 살라딘의 무덤이 다마스쿠스에 있긴 했지만, 그가 쿠르드족이었다는 말은 그 어느 책에도, 단 한 글자도 없었다. 어쨌든 유럽인들이 살라딘에게 호되게 당한 것은 정말 틀림없는 사실이었던지, 살라딘이 죽은 지 700년이 지난 뒤 다마스쿠스를 점령한 프랑스군의 총사령관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살라딘의 무덤을 찾아가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단다.
“우리가 다시 왔다.”
노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이 이야기를 했다.
“살라딘은 용감무쌍한 이슬람 교도였어. 그가 아랍인들을 지켜주었지. 그랬기 때문에 심정적으로는 아랍인이었던 거라고.”
그러나 이 말은 설득력이 없었다.
이스마일이 외쳤다.
“그럼 저는 말론 브란도겠네요.”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스마일이 말론 브란도의 열렬한 숭배자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말론 브란도가 나온 영화는 빠짐없이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진 역시 전부 사 모았다.
누흐는 5월에 가장 나쁜 점수를 받았다. 그 이후 그는 수업 시간에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6월 초에 그는 2주 동안이나 결석을 했다.
“우리의 자칭 쿠르드인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지?”
역사 선생님이 음흉스럽게 물으며 학생들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는 누흐가 심하게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후에 한두 시간 정도 제과점에서 아버지를 도와주면서 몰래 빼돌린 빵을 가지고, 나는 서둘러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도시의 동쪽 끝에 있는 빈민가는 우리가 살던 지역보다 더 가난했다. 그 곳에는 굶주림 때문에 고향을 떠나온 영락한 농부들이 살고 있었다. 모두들 일자리를 찾아 다마스쿠스로 온 것이었다. 그들은 점토와 골함석, 나무를 가지고 살 곳을 마련했으며, 정부는 이것을 눈감아주었다. 바뀌는 정부마다 모두 그들이 불법 거주자라고 공포했지만, 그곳 주민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그곳 주민들을 위해 좀 더 인간적인 주택을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말은 이미 이전 권력자도 했던 것이었다.
대부분이 나지막한, 1층짜리 움막들 사이로 구불구불 골목길이 이어졌다. 거리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 있었고, 아이들은 우리 동네보다 훨씬 더 시끄럽게 떠들며 돌아다녔다. 맨발로 돌아다니는 한 아이에게 누흐가 사는 곳을 묻자, 아이는 까르르거리며 앞장서 뛰어갔다. 
이 지역의 많은 집들이 그렇듯이 누흐네 집 문도 짐짝 박스에서 떼어낸 낡은 합판으로 지어져 있었다. 노크를 하자 아주 예쁜 소녀가 문을 열어주었다.
“누흐 오빠의 친구가 왔어요.”
그 애는 아랍어로 집 안을 향해 소리치고는, 열린 문틈으로 나를 보며 어색한 듯 미소를 지었다.
“들어오너라, 얘야.”
키가 큰 남자가 문을 활짝 열며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그는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얼굴이 빨개진 소녀를 쿠르드말로 뭐라고 나무랐다. 문 뒤쪽의 크고 어두운 공간이 그 집의 유일한 방이었다. 방 한쪽 구석에 천장까지 매트리스가 쌓여 있었다. 누흐의 엄마가 웃으며 인사를 했다. 누흐의 외삼촌이라는 키가 큰 그 남자가 누흐 엄마의 인사말을 통역해주었다.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누흐의 엄마에게 가지고 온 것을 건네주고 누흐가 있는 곳을 살펴보았다. 누흐는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었는데, 옆에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누흐의 할아버지였다.
“너 어떻게 된 거야?”
나는 고열로 뜨끈뜨끈한 누흐의 손을 꼭 쥐었다. 그가 힘없이 미소 지었다.
“힘든데 뭐 하러 왔어?”
“그런 말 하지 마! 진작 오려고 했었어. 다른 애들도 온다는 걸, 빵을 좀 가지고 오려고 내가 먼저 서둘러 왔지. 이삼이 오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잖아.”
누흐는 반에서 제일가는 먹보 이삼을 생각하고는 웃었다. 누흐의 외삼촌이 아랍어는 겨우 몇 마디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누흐의 엄마에게 우리의 대회를 통역해주자 그녀도 웃었다. 밖이 어두워졌다. 누흐의 엄마가 일어나더니 기름통에 불을 붙였다.
“저건 왜? 너희 전기 안 들어와?”
천장에 매달린 전구를 본 나는 놀라 물었다.
“우리를 이곳에서 내보내려고 새 정부가 전기를 끊었단다. 천벌 받을 놈들.”
할아버지가 화를 내며 표준 아랍어로 말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가 아픈 거니?”
누흐에게 물었다.
“뭐, 그냥 독감에 걸린 거야.”
이렇게 말하고 누흐는 짧게 기침을 했다.
누흐의 엄마가 자기 동생에게 무슨 말인지 물었고, 그는 그 내용을 통역해주었다. 누흐의 엄마는 흥분하면서 그에게 뭔가를 이야기하라고 시켰다. 그러자 그가 누흐는 심장결함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때까지 심장결함이란 것이 무엇인지 몰랐었다.
“심장결함이 뭐야, 다 쓸데없는 소리라고! 의사가 잘못 본 거지. 난 이렇게 말처럼 건강한데 말이야.”
누흐는 자기가 아프다는 사실을 부인하다가 다시 기침을 했다. 그의 엄마는 그런 그를 슬픈 눈으로 걱정스러운듯 바라보다가 일어나, 방 한쪽 구석에 쳐진 커튼 뒤로 사라졌다. 그 커튼 뒤에는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할아버지, 제 친구에게 이야기 하나 해주세요. 얘는 옛날이야기 듣는 걸 좋아해요.”
“난 아랍어를 그렇게까지 잘하지는 못 하잖아. 그런데 왜 네 친구는 쿠르드 말을 못하는 게냐?”
“얘는 아랍인이잖아요.”
“그래서? 아랍인들은 쿠르드 말을 배울 수 없다더냐? 불어와 영어는 배우지 않느냐......”
노인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하긴 너도 곧 쿠르드 말을 할 수 없게 될 것 같은 마당에.”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엄마가 나에게 엄마가 쓰는 말을 할 줄 모른다고 나무랄 때와 똑같이 씁쓸하게 들렸다. 엄마는 아람어를 했다. 그것은 몇몇 마을 주민만이 지금도 사용하는 고어로, 예수가 사용했던 말이라고 한다. 살림 아저씨도 아람어를 할 수 있다. 언젠가 아저씨가 술에 취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로마인들이 예수를 못 박아 죽인 이유는, 예수가 자기를 신의 아들이라고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그들은 어차피 많은 신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신이 하나 더 늘거나 줄어드는 일 같은 것은 별 상관이 없었다. 그다지 옹졸한 편이 아니었던 로마인들이 예수를 죽인 진짜 이유는 그가 아람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흐는 눈을 돌리더니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좋아요.”
갑자기 그가 말했다.
“쿠르드 말로 해주시면, 제가 친구에게 통역을 해줄게요.”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누흐가 통역을 했다. 하지만 겨우 몇 문장을 하고는, 다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만두라고 부탁했다. 누흐가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그 이야기가 내게 재미있을 리 없었다.
누흐의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매우 늦은 시각이었다. 누흐의 엄마가 방 가운데 넓게 펼쳐진 식탁보 위에 야채 냄비를 올리는 동안 그는 몸을 씻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누흐가 나를 잡았다.
“함께 저녁을 먹기 전에는 안 된다.”
라며 누흐의 아버지도 한 마디 거들었다.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누흐 옆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3일 후 나는 이삼과 이스마일, 그리고 몇몇 다른 급우들과 함께 누흐를 찾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일찍 학교에서 폭탄과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누흐가 심장 수술을 받은 후에 죽었다는 것이다!
물리선생님이 그날 오후 장례식에 가도 좋다고 허락했지만, 함께 간 아이들은 몇 명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죽어간다. 소리 없이. 가난한 사람의 죽음과 부자들을 위한 매춘 중개업에 관해서는 귀신도 모른다고, 엄마가 말해주었다.
장례식은 너무나 슬펐다. 누흐의 엄마는 문 앞에서 울부짖었고, 많은 사람들이 말리는 가운데 얼굴이 핼쑥해진 누흐의 아버지가 누흐를 보내지 않으려는 듯 관을 움켜잡았다. 그의 손은 잿빛 흙처럼 보였고, 깊은 주름살로 뒤덮여 있었다.
누흐의 할아버지가 한쪽에 비켜서 있는 것이 보였다. 수염을 깎지 않은 그의 얼굴 위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누흐를 실은 관이 방에서 나갈 때, 나는 재빨리 할아버지에게로 갔다. 나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마디마디 못이 박인 할아버지의 손을 잡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나를 보더니, 힘껏 끌어안고 내 머리에 입을 맞췄다.
“누흐는 너를 아주 좋아했단다.”
할아버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니는 쓰디쓴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그 몹쓸 놈의 역사 선생님이 누흐의 심장에 상처를 입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칠판에 이렇게 쓸 것이다. 이 교실에 쿠르드인 누흐가 살았다고. 학교 담장에도, 운동장의 나무 그루터기에도, 온 사방에 그것이 보이도록 말이다.
“할아버지, 제게 쿠르드 말 좀 가르쳐 주실래요?”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할아버지에게 부탁했다.
“물론이지, 네가 원한다면.”
나는 그러고 싶었다. 그것이 누흐의 언어였기에.



라픽 샤미의 소설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 '1001개의 거짓말'의 작가인데 아무렴. 문화부 테이블에 ‘아무나 가져가시오’ 하며 쌓아놓은 것을 냉큼 집어왔다. 그게 벌써 몇 달도 더 전이다. 그 때 집어온 책들 중엔 꽤 괜찮은 제3세계권 문학작품이 많았는데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손도 못 대고 있다가 일단 샤미부터 집어 들었다.

이번에도 책은 재미있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파리 젖 짜는 사람’이라니. 이런 제목을 붙일 수 있는 작가가 또 누가 있으리오.

주인공은 어린이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10대 소년이다. 그가 사는 집은 다마스쿠스의 빈민가다. 한쪽에선 동네 아낙들과 매춘부들 간 한판 대결이 벌어지고, 한쪽에선 아이들이 나름의 생존법칙에 따라 돈벌이를 하며 세상을 알아 나간다.

케밥에 인생의 자존심을 내건 요리사, 라디오 없이는 못 사는 아저씨, 남편의 구타에 시달리다 결국은 가방 하나만 들고 떠나버리는 미녀. 주인공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들 속에 들어있는 것은 빈곤, 독재, 그리고 성장의 아픔이다. <1001개의 거짓말>이 그랬듯 이번에도 작가는 눈물과 웃음을 잘도 버무려 놓아서, 읽는 내내 웃다가 뒷부분엔 눈물이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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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베껴올린 것은 마지막에서 세번째 에피소드인 쿠르드 소년 누흐의 이야기다. 내용은 쿠르드 소년에 대한 것이지만, 현대 중동의 모든 상처가 이 안에 들어있다. 쿠르드, 팔레스타인, 헛된 자존심, 사라져가는 아람어, 쿠데타와 정치적 배신, 억압과 가난. 이 얘기도 그렇지만, 샤미가 전하는 13개의 일화들은 ‘통렬 풍자’라 하기엔 그 현실이 너무 씁쓸하다. 저 모순들은 언제까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을 것인가.

이집트에서 무바라크가 쫓겨났다. 컨템포러리 중동사를 다시 쓰게 만들 대사건이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요르단은? 레바논은? 팔레스타인은? 이라크는? 이란은? 시리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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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에는 ‘다마스쿠스에서 온 이야기들’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띠지에는 ‘헤르만 헤세 상 수상작 <1001개의 거짓말> 작가 라픽 샤미가 전하는 13편의 통렬 풍자 다마스쿠스 이야기!’라 적혀 있다. 출판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샤미의 이름 앞에다가 헤르만 헤세를 붙이는 건 우스운 일이다. ‘통렬 풍자 다마스쿠스 이야기’에 헤세가 웬 말인가.

다마스쿠스에서 전해오는 향료 냄새, 그 독특한 맛과 향이 아름다우면서도 너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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