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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양자 마음

딸기21 2002. 9. 2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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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양자 마음 The Large, The Small And The Human Mind 

낸시 카트라이트 | 로저 펜로즈 | 스티븐 호킹 | 에브너 시모니 (지은이) 

김성원 |최경희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 2002-10-30



언제인가, '괴델의 정리'를 놓고 고민 아닌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수학자가 수학적 원리로 풀리지 않는 세상에 대해 일종의 불가지론을 선언하다니. 공리(公理)란, 그리고 인간의 이성과 의식이란 얼마나 우스운 것이 돼버리는가.

큰 물리학(고전물리학)과 작은 물리학(양자물리학)의 간극, 정신(의식)과 물질의 간극. '이 세상에서 유일한, 진정한 의미의 거시이론'인 상대성이론과 미시세계의 지침인 양자론의 통합은 물리학자들의 지상과제다. 그런가 하면 물질로 이뤄진 뇌에서 어떻게 의식의 발현과 같은 비물질적인 과정이 생겨나는가 하는 문제는 '생명의 신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으로서 생물학자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난제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수학교수로 '황제의 새마음', '마음의 그림자' 등의 저술을 내놓았던 로저 펜로즈의 새 책은 이 난제들의 중간에서 특유의 인력으로 두 물음들을 끌어당기면서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론 사이에 다리를 놓겠다는 펜로즈의 구상은 이른바 '만물이론'(Theory of Everything)을 찾겠다는 과학자들의 치열한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의 작업은 또한 물질적인 존재에서 비물질적인 작용으로 나아가는 우리 뇌의 신비, 큰 우주와 '소우주'(인간)를 모두 포괄하는 이론을 찾으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삼라만상을 주재하는 조화롭고 유일한 법칙, 신만이 알고 계실 이 법칙에 다가서자는 야심만만한 계획.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지구상에서 적용되는 법칙과 하늘에서 적용되는 법칙, 즉 두 가지의 법칙이 있었다. 우리는 지금 양자 수준의 법칙과 고전 수준의 법칙이 분리된 그리스적 상황으로 되돌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갈릴레오와 뉴턴의 시도로 돌아가 거대우주와 소우주 모두를 '궁극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자는 것이다. 

우주론과 양자론의 교차로에서 '마음'의 문제까지 넘나드는 동안 펜로즈는 과학계에 널리 퍼져있는 환원론에 꾸준히 반박하고 때로는 격한 비판을 펼친다. 유일한 물리적 실재를 서술하는 유일한 관념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 플라톤주의자답게 그는 우리의 정신작용이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고 가정하면서, 정신작용을 과학적으로, 좁게는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양자와 우주 사이 그리고 뇌와 정신의 사이에는 이론과 측정의 괴리를 만드는 '무언가'가 있어 현재의 물리학 수준으로는 당장 해결하기 힘들기 때문에, 현재의 물리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리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물리학의 핵심은 그가 '객관적 오그라듦(Objective Reduction)'이라고 이름붙인 일종의 과정이다. 물론 아직 그의 'OR'은 영어 단어 'or(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처럼 아직은 실체가 불분명하다.




이 책에서 펜로즈가 제시하는 추론과정은 너무 불확실하고 역설적이어서 추론이라기보다는 주장에 가깝게 들린다. 그러나 그가 던진 문제들과 탐구정신, 상상력만큼은 읽는 이들을 즐겁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양자와 우주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고, 그 교차점에서 또다른 방향으로 다리를 놓아 우리 뇌의 본질을 규명할 수 있다는 믿음. 세상 무수한 환원론자들, 불가지론자들, 회의론자들에 대한 대담한 안티선언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1995년 펜로즈가 영국 켐브리지대학교에서 했던 세 차례의 강연내용을 다듬어 정리한 것인데 뒷부분에 애브너 시모니, 낸시 카트라이트, 스티븐 호킹의 비판과 그에 대한 펜로즈의 재반론이 실려있다. 펜로즈의 문제제기에서 그치지 말고 3인의 반론과 재반론을 곱씹어보면 더 재미있다.  시모니는 펜로즈를 '엉뚱한 산을 오르려는 등산가'라 부르면서도 상당부분 그의 주장에 공감을 표하며 '더 치밀한 논리구조'를 요구하는 반면, 카트라이트는 '물리학이 의식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올바른 출발점인가' 하는 좀더 포괄적인 질문을 던진다. 

블랙홀 연구에서 펜로즈와 상당부분을 함께 작업했던 호킹은 스스로 '낯 두꺼운 환원론자'를 자처하면서 의식의 문제를 물리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는 펜로즈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대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석학들의 짦지만 깊은 논쟁을 관전할 수 있다는 것은 책이 주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기하학적 패턴들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판화가 M.C. 에셔의 그림들이 우주-양자-마음의 문제를 설명하는데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보는 것도 부수적인 수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김희봉 샘의 글- <우주 양자 마음>에 대한 간략한 평가 (2002.11.8)

이 책은 전부 7장으로 되어있고, 1-3장은 펜로즈의 강연, 4-6장은 세 학자들의 즉석 언급, 7장은 다시 그 자리에서 여기에 대한 펜로즈의 답변으로 되어있다. 우선 1-3장은 펜로즈가 전작인 The Emperor’s New Mind와 Shadows of the mind에서 핵심만 간추려 설명하고 있다. 

1장이 우주, 2장이 양자, 3장이 마음을 다룬다. 1장은 상대론과 우주론을 다루며, 여기에서 펜로즈의 설명은 어느 책과도 다른 독특하고 수준높은 것이며, 특히 우주가 쌍곡기하로 되어있다는 생각은 아주 중요하다. 2장에서도 펜로즈의 설명은 명료하고 독창적이기 그지 없다. 양자역학에 필수적인 복소수를 눈에 보듯 그려주고, 양자역학이 왜 이상한지 그 미스터리를 대가답게 똑똑 끊어서 나열해 버린다. 그것은 파동 입자 이중성, 무효과 측정, 스핀, 비국소성, 파동함수의 오그라듦 때문이며, 이것을 Z 미스터리와 X 미스터리로 나눈다. 전자는 이해하기 힘들 뿐이지 다 사실이며, 후자는 진짜 미스터리인데, 자기가 보기에는 이것을 설명하는 현재의 이론이 틀렸다고 한다. 앞에서 열거한 것 중에서 맨 마지막 것만 X 미스터리이다. 

로저 펜로즈


파동함수의 오그라듦이란 무엇인가? 여기에서 부정확해질 위험을 무릅쓰고 감을 잡을만한 예를 하나 들겠다. 나는 지금 중국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 내 머리 속에는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육면체 하나가 들어있는데, x축은 짜장면, y축은 짬뽕, z축은 볶음밥이라고 적혀있다. 이것은 내가 점심으로 무얼 먹을지에 관한 확률을 나타내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 화살이 하나 그려져 있는데, 이 화살은 예를 들어 내가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확실히 결정했다면 x축과 일치한다. 짜장면과 짬뽕 중에서 결정을 못하고 있다면 이 화살은 xy 평면에서 비스듬한 방향을 가리킬 것이다. 짜장, 짬뽕, 볶음밥이 전부 똑같이 먹고 싶다면 이 화살은 공중을 어정쩡하게 가리킬 것이다. 어쨌든 내가 뭘 먹을까 고민하는 동안 이 화살은 고정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며, 식탁에 앉아 메뉴판을 볼 때까지도 계속 요동치다가 내가 점원에게 짬뽕! 하고 외치는 순간 이 화살표는 y축 방향으로 고정된다. 이것이 파동함수의 오그라듦이다. 


사실은 이걸로도 설명이 미흡하다. 좀더 생생한 감을 갖기 위해 실제로 원자를 생각하자. 원자는 핵 주위에 전자가 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전자는 핵을 돌지 않는다. 않는다기보다는 모른다. 전자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고, 핵 주위에 공 모양 또는 네잎 클로버 모양의 확률 구름을 이룬다. 아마 이런 원자 모형의 그림을 한 번은 봤을 거다. 전자가 그런 모양으로 핵 주위를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전자가 그 위치에 있을 확률을 그려보면 그런 모양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자의 파동함수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전자가 어디 있는지 관찰을 하게 되면, 전자는 그 공간 안 어딘가의 한 점에만 있다. 따라서 전자의 파동함수는 공 모양 또는 클로버 모양에서 공간의 한 점으로 오그라들었다. 이것이 파동함수의 오그라듦이다.

로저 펜로즈와의 대담 -http://www.abc.net.au/quantum/stories/s108094.htm

이것이 아원자적 대상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전부이지만, 펜로즈는 여기에 대한 현재의 이론이 불완전하다고 본다. 이외에도 양자 얽힘이라든가 무효과 측정에 대한 그의 설명은 참 깨끗하다. 

3장에서는 인간 정신의 활동은 수학적 계산으로 환원할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가 만드는 컴퓨터 또는 로봇이 유한한 수학적 계산에 의존하는 한 인간 정신을 모사하지 못하며, 따라서 인간 정신은 양자역학을 직접 이용하는 방식으로 동작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아주 재미나기는 하지만 설명하기는 좀 까다롭고, 또 아직은 소설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또 펜로즈는 인간 정신이 계산을 초월해 있음을 보이기 위해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끌어들이며, 이 정리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을 부록에서 보여준다. 

까다롭기는 하지만 펜로즈의 생각을 따라가보자. 괴델 논증 등등 때문에 인간 정신은 계산을 초월해 있고, 그러한 방식으로 뇌가 동작하려면 사람의 뇌 전체가 한꺼번에 작용하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하는데, 이 메커니즘이 바로 양자 얽힘인 것 같다. 그런데 양자 얽힘은 아주 민감한 프로세스여서 서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만 일어날 수 있고 그나마 교란이 전혀 없어야 가능하다. 적어도 뇌 정도 규모의 양자얽힘은 일어날 가능성이 작지만 펜로즈는 뉴런 속의 마이크로튜블 또는 미세소관이 이런 장소를 제공한다고 제안한다. 뉴런 내부에 있는 미세소관이라는 통로가 뇌 속을 마치 월맹군의 땅굴처럼 이리저리 연결하고 있는데, 이 통로를 통해서 뇌 전체가 동시에 얽혀서 (양자얽힘에 의해)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건 매력적인 상상이기는 하지만 누가 봐도 뻥인데, 펜로즈는 그래도 박박 우기고 있다.

4장에서 강평자로 나선 애브너 시모니는 양자역학의 근본적인 면을 탐구하는 데 많은 공을 세운 원로 물리학자로, 철학까지 같이 하고 있으므로 나이 지긋한 데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펜로즈에게도 한 수 지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몇 가지 지적을 했지만 펜로즈에게 그렇게 나가면 화이트헤드 철학과 뭐가 다르냐고 넌지시 묻는 것이 압권이다. 이걸 자세히 들여다 보면 또 이야기가 아주 복잡해지는데, 화이트헤드 철학을 슬쩍만 봐도 이 사람이 양자역학을 염두에 두고 이런 이론을 만들었겠다 하는 느낌이 팍 든다. 

전체적으로 보면, 1장과 2장은 최고 수준의 최고 압축된 물리학 설명이고, 3장은 그걸 바탕으로 물질에 의해 어떻게 의식이 구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한 편의 소설이고, 그 다음부터는 이 소설을 두고 최고급 학자들이 갑론을박하는 장면이다. 

한 마디로 대단히 흥미롭고 대단히 어려운 책이다. 이것으로 미흡한 서평을 마친다. 하지만 핵심은 대충 쩔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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