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니자르 카바니, 패배의 書

딸기21 2005. 9. 3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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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onquer The World With Words

I conquer the world with words,
conquer the mother tongue,
verbs, nouns, syntax.
I sweep away the beginning of things
and with a new language
that has the music of water the message of fire
I light the coming age
and stop time in your eyes
and wipe away the line
that separates
time from this single moment.

언어로 세상을 정복하는 시인

니자르 카바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은 아니다. 아랍세계에서는 한때 식자층 사이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고, 또 유명한 '이집트의 여가수' 움 칼툼이 그의 시를 노래로도 불렀다고 한다. 움 칼툼의 입을 통해 가락을 얻었던 카바니의 시는 2차대전 뒤 '절망의 시대'를 살아갔던 아랍인들에게는 분노와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며 동시에 마음을 달래주는 벗이었을 것이다.

타리크 알리의 '근본주의의 충돌'에는 카바니의 역작 '패배의 서'가 나온다. 그 시를 읽고난 뒤 카바니에 대한 자료를 좀 찾아보았다. 아랍어로 된 그의 시를 원작 그대로 읽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게 안타까웠다. 그의 시에서 줄기를 이루는 관능성이 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그 관능성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나는 카바니의 싯귀 몇마디에 가슴이 저렸고, 민족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달라도 '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시 속에 담긴 통한을 얼핏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카바니는 '시를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드문 시인이라고 했다. 형식에 얽매여 있던 아랍의 시를 해방시킨 해방자이자, 선구적으로 여성의 해방 그리고 '몸의 해방'을 외치며 이슬람 근본주의에 도전한 사람이기도 했다. 카바니라는 인물과, 시 몇편을 소개한다.



Hawamish 'ala Dartar al-Naksah (패배의 書)


1. 
낡은 단어는 죽었다. 
낡은 책들도 죽었다.
닳아빠진 신발처럼 구멍난 우리의 언어는 죽었다. 
우리를 패배로 이끈 정신도 죽었다.
2. 
우리의 시에서는 신내가 난다.
여자들의 머리, 밤, 커튼, 소파들에서도
신내가 나고 있다.
모든 것에서 신내가 났다.

3. 
슬픔에 잠긴 내 조국,
섬광 속에서
사랑의 시를 써왔던 나를 변화시켰구나.
칼로 시를 쓰는 시인으로.

4.
언어는 우리가 느끼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구나.
우리는 우리의 시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5. 
동양적 호언장담에 휩싸여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과장된 오만함으로,
깡깡이와 북을 든 채
우리는 전쟁터로 나갔다.
그리고 패배했다.

6.
우리의 외침은 우리의 행동보다 더 크구나.
우리의 칼은 우리의 키보다 더 크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7.
요컨대
우리는 문명의 망토를 입고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석기시대에 살고 있다.

8.
피리나 플루트로는
결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9.
우리의 조급함 때문에
5만 개의 새로운 난민텐트가 지어졌다.

10.
하늘을 저주하지 말지어다
만약 하늘이 너를 저버렸을지라도
환경을 탓하지 마라.
신은 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승리를 준다.
신은 칼을 두드리는 대장장이가 아니다.

11.
아침에 뉴스를 듣는 것은 고통스럽다.
개가 짖는 소리를 듣는 것도 고통스럽다.

12.
우리의 적은 우리의 국경선을 넘지 않았다.
적들은 개미처럼 우리의 나약함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13.
오천년 동안
우리는 동굴 속에서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우리의 문화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의 눈은 파리들의 안식처일 뿐이다.
친구여,
문을 부숴라,
머리를 감아라,
옷을 빨아라,
친구여,
책을 읽어라,
책을 써라,
언어와 석류나무와 포도를 길러라,
안개와 눈의 나라로 항해하라.
너희가 동굴에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너희를 혼혈아의 피로 간주한다.

14.
우리는 영혼이 텅 빈 채로 
두껍게 살이 올라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마법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고,
체스를 두거나 잠을 잔다.
우리가 과연 '신이 인류를 위해 내린 축복 받은 민족'이란 말인가.

15.
우리의 사막에 있는 기름은
화염과 불의 劍이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숭고한 조상들에게 죄를 짓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기름을 창녀의 발가락 사이로 흘려 버리고 있다.

16. 
우리는 거리로 미친 듯이 뛰었다.
밧줄로 사람들을 끌며
창문과 자물쇠를 때려부수며
우리는 개구리처럼 칭찬하고
개구리처럼 맹세하며
소년을 영웅으로 만든다.
그러면 그 영웅은 곧 불량배가 되고 만다.
우리는 멈춰 서서 생각하지 않는다.
사원에서
멍하니 몸을 웅크리고서
시를 쓰고
잠언을 외우면서
신에게 구걸한다.
적을 이기게 해달라고.

17.
만일 내 안전을 약속받고서
술탄을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술탄이여,
당신의 미친 개가 내 옷을 짖어버렸소.
당신의 염탐꾼이 나를,
그 눈이 나를,
그 코가 나를,
그 발자국이 나를 못살게 했소이다.
운명처럼 나를 따라다니며
내 아내를 욕보이고
친구들의 이름을 욕되게 했소이다.
술탄이여
내가 당신의 벽에 가까이 다가서서
내 고통에 대해 말했을 때
당신의 군인들은 내게 발길질을 했고 
신발을 핥도록 강요했소이다.
술탄이여
당신은 두 번이나 전쟁에 패했소이다
술탄이여
우리 국민의 절반은 혀를 가지고 있지 않소
혀가 없는 사람들을 어디에 쓸수 있겠소?
우리 국민의 절반은
개미나 쥐새끼처럼 갇혀 있구려.
벽과 벽 사이에."
아무런 해도 입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술탄에게 말했을 것이다.
"당신은 두 번이나 전쟁에서 패배했소.
당신의 자식들을 보살피지 못했단 말이오."

18.
만약 우리가 단결을 땅 속에 묻어버리지 않았더라면,
만일 우리가 총검으로 단결의 어린 싹을 짖어버리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 단결이 우리의 눈망울 속에 머물러 있었다면,
개들이 우리의 살결을 물어뜯지는 못했을텐데.

19.
우리는 성난 세대를 원한다
하늘을 개척하고
역사를 날려버리며
우리의 생각을 날려버리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세대를 원한다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
허리를 굽히지 않는.
우리는 거인의 세대를 원한다.

20. 아랍의 어린이들아.
오, 미래의 씨앗들,
우리의 사슬을 깨뜨려다오
우리의 머리 속에 있는 아편을 죽이고
망상을 없애 다오.
아랍의 어린이들아,
질식할듯한 우리 세대를 따르지 마라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우리는 수박껍질만큼 가치가 없다.
우리를 따르지 마라.
우리를 닮지 마라.
우리를 받아들이지 마라.
우리의 생각도 받아들이지 마라.
우리는 사기꾼과 도둑의 민족이다.
아랍의 어린이들아, 
오, 봄비여,
미래의 씨앗들이여,
너희는 패배를 극복할
바로 그 세대다.

(타리크 알리, <근본주의의 충돌>에서 재인용. 영문 참고해서 부분적으로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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