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인도 대법원 "정부는 빈민구제하라"

딸기21 2011. 5. 18. 10:23
728x90
제가 정말 좋아하는 국제부의 이지선 기자가 재미난 기사를 썼습니다. 
인도 법원이 빈민구제에 나섰다는 소식입니다.

 
지난 14일, 인도 대법원에서는 법원 휴무일인데도 특별재판이 열렸답니다. 법원은 이날 정부를 향해 명령을 내렸는데요. 굶어죽는 이들이나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이들을 돕기 위해, 500만톤의 곡물을 150개 지역에 공급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공적 배급 시스템에서 정부 지원 식량은 대부분 극빈층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것”이라면서 “영양실조와 아사가 때때로 보고되는 만큼 지원 식량은 이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힌두스탄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시민자유를 위한 국민연합’ 등의 시민단체가 법원에 청원을 했다고 합니다. 정부가 배급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니 시민들이 법원에 정부의 조치를 강제하도록 청원을 한 거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정부에 명령을 내린 거죠. 

한 걸음 더 나아가 법원은 정부 배급을 법원이 임명한 이들로 구성된 위원회 감독하에 두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 위원회는 앞으로 배급 대상자를 선정해 식량을 나눠준 뒤, 오는 7월 22일까지 법원에 활동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합니다. 

더불어 법원은 현재 농촌의 경우 월 생활비 10달러, 도시에서는 13달러로 정해져 있는 빈곤선 기준을 재검토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렇다면 법원의 기존 역할에서 한참 나아가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요. 법원이 법리만을 판단하는 역할을 넘어서, 국가 내에서의 역할을 한 차원 넓힌 것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행동주의’가 금기시 돼 있는 미국 등 다른 국가의 법원 문화와 달리 인도 대법원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신문은 인도 법원이 인도 연방정부·주정부들의 관료주의를 깨뜨리는 ‘hyperactivist’ 역할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네요. 

인도 대법원의 사회 참여가 가능한 것은 ‘공익 청원’이라는 특별한 제도 덕분이라고 합니다. 공익 청원 제도는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명망있는 단체나 개인 등 제3자가 공익적 차원에서 청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청원은 하급법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에 회부됩니다. 법적인 틀 안에서 행정의 사각지대를 배려할 수 있게 해놓은 거죠. 

물론 일각에선 정부의 영역에 사법권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장기적으로 행정기구를 정비해 제 기능을 하게 해야지 법원이 직접 나서서 시시콜콜 행정을 챙기거나 정부와 적대적인 관계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상은 이지선 기자가 기사에서 소개해놓은 내용...

대법원에서 그동안 관여해온 행정적인 조치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몇가지를 소개해 보도했는데요.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반부패 영역입니다. 정부의 부패가 국민들의 불신을 사는 가장 큰 요인이고, 법원이 여기에 개입해 나선 거죠. 대법원은 2008년 정부가 이동전화 주파수대역을 파는 과정에서 벌어진 부패혐의를 조사하도록 지시를 했고, 안디무투 라자 전 통신장관의 구속기소로 이어졌습니다. 

카스트 제도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법원은 최근 이른바 명예살인을 저지른 자들이 사형선고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습니다(명예살인은 보통 이슬람권에서 무슬림 남성들이 가족 내 여성의 순결을 문제삼아 살해하는 걸 가리키는데, 인도에서는 하급 카스트 사람들과 접촉했다거나 하는 이유로 명예가 더럽혀졌다며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동안에는 이런 카스트 관련 범죄가 엄벌을 받지 않았는데 대법원이 나서서 관행에 제동을 건 겁니다. 

세금이니, 의료복지니 하는 것들까지 법원이 관여를 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신흥 부유층들이 돈세탁이나 세금회피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의 조사를 믿을 수 없다해서, 정부 조사과정을 법원이 감독하도록 했습니다. 

이번에 곡물 배급을 늘리라고 한 것은 공익청원에 따라 사회보장·복지 영역에 손을 뻗친 거고요. 법원은 중앙정부가 농촌지역 취업지원과 관련된 예산을 다른 용도로 전용하거나 낭비했는지 조사에 착수하도록 지시한 적도 있습니다. 

경찰이 일부 지역에서 좌파 봉기를 진압하면서 인권탄압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지역 경찰관 양성제도를 중앙정부가 재검토하도록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학교 시설들이 제대로 돼 있는지, 식수가 교육시설에 잘 공급되는지, 남녀 화장실이 분리돼 있는지 등등을 조사해 법원에 보고서를 내라는 주문도 했습니다.
 





이번 법원 명령 중에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빈곤선을 재검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국가별 통계를 보면 빈곤선 이하 인구가 몇 %다 하는 것이 나옵니다. 빈곤선은 통칭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사는 사람을 가리켜왔는데 2005년 세계은행이 이를 하루 1.25달러로 높여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세계은행의 통상적인 기준이고요. 나라마다 통계를 낼 때 그 나라에서 정한 기준을 따릅니다. 인도 국가계획위원회 기준은 한달 578루피의 생활비를 빈곤선으로 잡고 있습니다. 한화로 하면 한달 14000원 이하, 달러로 환산하면 월 13달러 이하로 사는 사람들이 인도에서 빈민으로 분류된다는 거죠. 

인도 정부가 식량배급 등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빈곤선이기 때문에 사회보장 측면에선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기준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월 14000원은 너무 적죠. 물가가 싼 인도에서도 월 578루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란자니 모한티라는 저널리스트가 월스트리트저널 블로그에 올린 내용을 들여다봤습니다. 정부 기준이하의 빈민이라면 하루 20루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인데, 우유 500ml가 10루피, 망고 하나가 10루피 정도라고 합니다. 


그나마도 인도 정부는 농촌지방 주민들에 대해서는 하루 15루피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들이어야 식량배급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구호기구나 시민단체들은 “이것은 빈곤선이 아니라 아사선(starvation line)”이라고 비판해 왔습니다. 심지어 국가별 기준에 관여하지 않아온 세계은행마저도 인도의 기준은 너무 낮다면서 하루 1.17달러 정도로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법원이 이번에 이를 검토하라는 것은 현실화시켜 상향조정하라는 뜻이죠. 인도의 1인당 실질GDP는 지난해 3400달러, 공식실업률은 10%대입니다. 현재 기준으로 본 인도의 빈곤선 이하 인구는 전체 인구의 25% 선입니다. 기준을 높이면 빈곤선 이하 인구가 훨씬 늘어날 것 같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