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딸기21 2005. 1. 1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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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Ubiquity: The Science of History . . . or Why the World Is Simpler Than We Think 
마크 뷰캐넌 (지은이) | 김희봉 (옮긴이) | 지호 | 2004-09-13


분명 저자 소개에는 물리학 박사라고 나와있는데, 그러니 물리학에 대한 책인 줄 알고 펼쳐들었는데 세르비아에서 울린 두 발의 총성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앞의 4분의1 정도는 지진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지진의 원인은 무엇인가. 지진을 예측하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 아니 불가능한가. 


그러더니 역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경제 얘기도 나온다. 대체 이 책은 무슨 책인가. 진정 유비쿼티(책의 원제목)를 책 한권 안에서 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물리학 박사이자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어떤 얘기를 꺼내고 싶어서 다종다양한 세상사와 자연계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일까.

굳이 말하자면 '역사 물리학'이다. 저자 스스로 이런 용어를 내뱉긴 했지만, 이런 분야는 없다. 하지만 과학에도 '역사'(시간의 흐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아주 최근의 것은 아니다. 정적인, 예측가능한, 평형적 과학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동적이고 변화하는, 예측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과학을 해보려는 시도는 이미 30년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여기에 새로운 이름(네트워크 과학)이 붙고, 새로운 실험들이 가능해진 데에는 분명 컴퓨터의 영향이 한몫 했을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과학(비평형 물리학)이라고 했지만 여기에도 법칙은 있다. 이 법칙을 찾는 것, 무엇이 세르비아의 총성 두 발로 전쟁을 일으키고 대규모 지진으로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는지, 이 복잡다단한 세상, 예측 불가능해보이는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을 찾는 것이 책의 목표다.

지진으로 시작해 경제와 역사를 아우르는 저널리스틱한 감각으로 저자는 '멱함수의 법칙'이란 것을 선보인다. 자연/세계에는 스스로 임계상태(아슬아슬한 균형 혹은 균형이 무너지는 시점)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멱함수 법칙을 따른다는 것. '멱함수'라는 말에 주눅들지 말자. 큰 사건과 작은 사건들 사이에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원인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 그것만 알아두면 된다. 큰 지진은 적게 일어나고 작은 지진은 많이 일어난다.

바꿔 말하면, 단층의 움직임이 임계상태에 이르기 전까지는 작은 지진들만 일어나지만 지층의 스트레스가 임계상태에 이르면 드디어 큰 지진이 일어난다. 그러니 큰 지진이건 작은 지진이건 원인은 똑같고, 다만 규모의 차이만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규모를 결정하는가. 무엇이 고베 지진같은 초대형 지진을 일으키는가, 왜 테러리스트의 총성 두 발이 전쟁으로 이어졌는가.

저자는 프랜시스 크릭의 '얼어붙은 우연'이라는 말은 인용함으로써 이 질문에 답한다. 세상은 네트워크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라고. 단층 속의 바위들도, 생태계의 종들도, 주식시장의 인간들도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아주 작은 우연이 하필이면 네트워크의 약한 고리에 떨어짐으로써 '격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건의 흐름(역사)을 제대로 보려면 네트워크를 알아야 한다. 물론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가 (결과적으로) 이뤄진다 해도 복잡계의 진화 방향은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어찌 보면 이 책은 물리학책이라기보다는 '과학이 할 수 없는 일들'을 '과학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세르비아의 총성으로 시작된 이 책은 지진이라는 자연과학적 소재를 넘어 인간들의 움직임으로 뻗어나간다. 자본시장의 움직임과 전쟁 같은 것들로. 세계/역사를 이해하는 또하나의 방법으로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세상은 평형이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예측불가능성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되므로.

'인간은 누구나 탐욕스럽다/인간은 자기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고전경제학의 기본 전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실제로는 이 전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주식시장의 컴퓨터 시스템을 아무리 잘 고쳐도 블랙 먼데이는 언제든 닥칠 수 있다. 사람들의 불안감,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되는 시장의 스트레스가 임계상태에 도달하는 바로 그 순간, 아주 작은 손동작 하나가 블랙 먼데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평형계(정적/합리적인 세계)에 대한 확신을 버리자, 낙관론과 합리주의를 경계하자!

책을 읽는다고 1차 대전의 원인이 손에 잡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 모래 한 알이 모래더미를 무너지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한 알의 모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네트워크 전체의 불안정성이었다는 것, 임계상태라는 개념을 알아놓는 것으로도 복잡한 세상을 좀더 단순하게 보는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 그것만 이해한다 해도 책을 읽는 의미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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