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들어온 바그다드는 여느 나라의 대도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경비초소를 지나 바그다드 외곽의 만수르에 들어서자 팔레스타인과의 친선관계를 상징하는 기념조형물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시내 중심가인 사둔거리에는 허름한 간판을 내건 극장들이 늘어서 있었고, HDTV와 DVD 플레이어 등 고급 전자제품을 파는 가게도 보였다. 도심을 흐르는 티그리스 강가의 레스토랑들은 가족, 연인과 함께 야경을 즐기는 시민들로 새벽 1-2시까지 북적거렸다. 사둔 광장의 분수대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물 속에 뛰어들어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쟁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번 더 들여다보면 경제난의 기색이 역력했다. 근사한 외양의 대형건물들과 잘 정비된 도로망은 과거의 영화를 짐작케 했지만, 건물들은 개보수를 하지 않아 대부분 낡고 칠이 벗겨져 있었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특급호텔들도 내부에서는 물품부족을 여실히 보여주줬다. 거리에는 일본제 승용차와 한국산 승합차들이 앞 유리창이 깨진 채 달리고 있었다. 도로는 잘 만들어져 있지만 대중교통수단이 거의 없어 시민들은 대부분 20년도 더 되어 보이는 덜컹거리는 승용차들을 끌고 다녔다.
전쟁과 제재를 겪으면서도 이 정도의 경제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석유 덕분이지만 그들의 정신을 지탱해주는 것은 '자존심'인 듯했다. 거리의 상인도, 호텔 직원도, 택시기사도 모두 "우리는 12년이나 제재를 받고 있으면서도 이 정도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관영 INA통신의 이자멜 케난 기자는 "우리의 힘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self-confidence)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긴박한 상황은 아니라고 해도 전시동원체제를 연상케 하는 요인들은 곳곳에 있었다. 외국인들이 드나드는 호텔의 정문 앞에는 "이라크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요람" "사담 후세인은 세계의 영웅" 따위의 문구가 쓰인 현수막들이 붙어 있었다. 바그다드 시내 전역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얼굴로 뒤덮여있었다.
전력공급이 충분치 않아 매일 두세번씩 전기가 나가는 상황이었고, 통신사정은 더욱 열악했다. 대형 호텔에서는 인터넷 연결이 가능하긴 하지만 외국 사이트들은 대부분 접속이 막혀 있었다. 외부의 봉쇄와 내부의 독재 때문에 극히 통제된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라크인들은 이 모두를 '남의 탓'으로 돌렸다.
시내 곳곳에서 눈에 띄는 것은 모스크 건축현장이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90년대 말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경제위기에서 종교로 돌리기 위해 이슬람주의를 강조하고 있고, 내핍 속에서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축구장 크기의 초대형 모스크를 여러 곳에 짓고 있었다. 막대한 석유자원과 넓은 땅, 역사적 전통과 문화 자산을 가진 이라크는 그 엄청난 잠재력을 스스로 묶어놓고 외부와 무의미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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