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요르단]페트라, 그리고 돌아오는 길

딸기21 2002. 10. 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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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오기 전에 요르단에 2박3일간 머물면서 '좋은 구경' 정말 많이 했는데, 여행기를 쓰다쓰다 지쳐서...제대로 곱씹을 여력이 없다. 

요르단의 압권은 역시나 페트라였다. 인디애나 존스 1편을 찍었던 곳이라는데, 별로 가본 데는 없지만 앞으로 어디를 가든 평생 잊지 못할 곳이라고, 마음 속에 도장을 콱 박아놨다.


협곡을 사이사이 누비고 지나가면 바위틈새로 눈앞에 갑자기 어마어마한 크기의 암벽사원이 턱 허니 나타난다. 붉은 바위를 파들어간 석실이 있고, 윗부분은 앞면(facade)만 있는데 그 등장하는 방식이 가히 충격적이다. 협곡과 사막과 바위산이 섞여 있는 페트라는 너무나 대단하고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하루 종일 모래바람 마시며 입을 벌리고 다녔다.

페트라에 간 날, 이날 하루 동안 14km 정도를 걸었다. 다른 언론사의 선배 한분과 같이 갔는데, 물살이 좀 있는 그 선배는 가는 길 내내 땀 뻘뻘 흘리며 힘들어했지만 난 아무래도 사막체질이었는지 펄펄 날았다. <저 쪽에도 무언가 있는 모양>이라며 선배를 설득해 한 15분 걸었는데 어느새 주변은 사막으로 변해있었고, 도마뱀들만 기어다녔다. 덤불을 지나 마른내(와디) 자국을 따라 걸어 휴게소에 다다른 뒤 동행했던 분은 주저앉았고, 나는 1시간 동안 바위산을 올라 기어이 나바테온 신전(기원후 1세기)을 보고 왔다. 인간은 얼마나 오만하길래, 2000년 전에 벌써 바위산 꼭대기에 저 높은 신전을 지었을까.


산에 갔다왔더니 선배가 입구에서 눈 빠지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태우고 갔던 택시기사가 혼자 돌아온 선배를 보고 "여자는 어디 갔느냐"고 해서 "산에 갔다"고 했더니 "very dangerous!"라고 했단다. 페트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일종의 국립공원 같은 곳이지만, 저녁 6시쯤 해가 지고나면 베두인 세상이 된단다. 특히 산에서는 무슨 일이 이러날지 알 수 없는데다, 나같이 "pretty"한 여자들에게는 정말 위험한 곳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이거 허풍 아님. 실화임)


그래서 요르단 경찰에 신고할까 하고 있던 차에 내가 도착했던 것. 날이 저무는데 낙타나 말, 하다못해 당나귀라도 타고 오지 그랬냐는 타박을 받았다. 어쨌든 구경 잘 했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뒷좌석에 널부러졌다.

요르단에서의 둘째날에는 암만 시내 산꼭대기에 있는 시타델과 로만 씨어터, 올드 캐슬과 베두인 여성들의 작업장을 찾아갔다. 

마지막날은 혼자서 돌아다녔다.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짐을 택시에 실었다. 운전기사 사바 알 사바는 전날 암만시내 구경을 함께 했던 사람이었는데, 훌륭한 관광가이드였다. 요르단 DHL에서 일을 한 적이 있어 영어를 잘 했다. 마다바라는 곳에 있는 유대 정교회에 들러 모자이크를 구경하고 니보산으로 갔다. 


사방으로 사막이 둘러쳐져 있고, 멀리 요단강과 사해가 보였다. 니보 산꼭대기에는 오래된 교회당이 있다. 니보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가 죽은 곳으로도 유명한데, 교회당 안의 모자이크들이 아주 멋있었다. 원래 이 산은 베두인 소유였는데 한 재단에서 산을 사들여 발굴을 했다고 한다. 산의 원소유자였던 베두인족의 손자가 입구에서 경비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사해에서 수영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수영>은 아니고, 물 위에 동동 떠서 파도에 밀려다니는 놀이를 했다. 사바의 안내를 따라 일종의 야매 해수욕장을 찾았는데 관광객이라고는 나 하나였다. 물에 들어갔다가 나와 머드팩을 하고, 다시 물에 들어가고. 물은 너무나 짠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짰다는 이야기. 이 물은 말 그대로 죽음의 물이어서 애당초 <수영>은 불가능하다. 물 한 방울이 눈에 튀니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한동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사바와 친해져서 저녁은 사바 집에서 해결했다. 사바의 부인은 이집트인인데, 알자지라 방송에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이 나오니까 자신은 카이로에서 왔다며 반가와했다. 사바의 막내딸은 낯선 사람이 찾아오자 너무 신기해하면서 좋아했다. 

경유지인 암스테르담에 내린 것은 오전 7시가 채 못 되어서였다. 공항에서 1시간 정도 버티다가 기차를 타고 시내에 들어갔다. 너무 추웠다. 바로 몇시간 전까지 사해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한겨울의 날씨 속에 들어와 있었다. 서울에서 입고 온 가을재킷 하나만 입고 3시간 정도 쏘다녔다. 반고흐 미술관에서 그림 구경을 하고, 서둘러 기념품 한개를 산 뒤에 공항에 돌아왔다. 9시간 비행해 서울에 오니 역시나 겨울이었다.

"나는 남편과 아들을 잃은 한 여성을 인터뷰하러 갔던 일을 기억한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온 마을의 아이들이 새앙쥐처럼 조용히 바닥에 앉아 나의 몸짓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떠나기 위해 차에 오르려는데 50여명의 아이들이 나를 끌어안고 손을 흔들었다. 차가 출발한 뒤에도 아이들은 길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1998년 2월21일의 그 어두운 밤, 우리는 미국과 영국이 또다시 이 곳을 공습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울고 또 울었다."


바그다드의 호텔방에 앉아 지난 98년 '제2 걸프전' 직전 이라크를 취재했던 한 서방기자가 쓴 글을 읽으면서 나도 따라 울었다. 짧은 시간 동안 이라크에서 느꼈던 감정들, 사마라의 탑 위에서 사멜과 함께 노래했던 일, 바빌론의 성터를 보았을 때의 그 느낌, 사막의 밤과 모래바람, 모스크를 가득 채운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들. 언제 전쟁이 날 지 알 수 없지만, 언제고 다시 이라크 취재를 가게 될 때에는 좀더 많은 생각을 가지고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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