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아침을 열며] 우리를 돌아보게 한 '작은 뉴스들'

딸기21 2011. 9. 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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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경기 성남의 시내버스 안에서 외국인 남성이 한국 노인을 폭행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지하철 패륜남, 개똥녀 등 비슷한 사건들이 하도 많으니 이제 이런 종류의 소동은 웹에선 일상이다. 하지만 이번엔 가해자가 ‘흑인남성’이라는 점때문에 시끄러웠다.  
 
언론들은 “거구의 흑인남성이 한국 노인을 폭행했다”며 피부색을 강조했고, 네티즌들은 ‘무례한 흑인’을 욕했다. 이어진 보도에 따르면 이 흑인은 “shut up”하라는 노인의 말에 화가 났고, 뒤이은 노인의 한국말을 흑인비하 발언으로 오해해 폭행했다는 거였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논쟁이 붙었다. 한국에서 흑인이 얼마나 적대적이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왔을지 짐작이 간다, 그렇다고 노인을 때리는 게 정당화되느냐, 영어 같지도 않은 영어 쓰는 흑인은 나가라, 우리도 반성할 게 없지 않다….



 
며칠 전에는 곰이 사람들을 울렸다. 중국의 곰 사육장에서 산 채로 새끼곰의 쓸개에 파이프를 꽂아 담즙을 빼내려다 생긴 일이다. 새끼곰의 비명을 들은 어미곰이 철창을 부수고 달려가 제 새끼를 죽이고 자기도 머리를 벽에 내리쳐 죽었다. 어떤 이들은 “곰이 자살을 했다니, 중국인들의 허풍 아니냐”고 했지만 대부분 독자들의 반응은 새끼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모정에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쪽이었다.
 
동기들에게 성추행을 당한 고려대 의대 여학생이 라디오프로그램에 전화 출연해 그동안의 고통과 가해자들의 어이없는 행태를 고발했다. 이 여학생의 인터뷰 전문은 트위터 등을 통해 삽시간에 퍼지며 공분을 불렀다. 

가장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학교 측이다. 가해 학생들을 징계했는지 밝히지도 않고, 심지어 교수들이 가해자들을 두둔하는 듯한 말을 하기도 했단다. 오죽하면 피해 여학생이 직접 나서 절규하는 상황이 됐을까.
 
위키리크스를 통해 다시 점화된 BBK 의혹, 안철수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수사 등으로 난리다. 금방이라도 세상이 뒤집힐 것 같은 뉴스 쓰나미 속에 ‘조그만 뉴스’들은 얘깃거리도 안 되어 보인다. 나라 꼴이 이 모양인데 겨우 흑인 동영상이나 곰 얘기를 가지고, 겨우 성추행 따위를 놓고 분석하고 토론할 틈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저 ‘작은 뉴스’들에 많은 이들이 눈길을 준 건,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사건들이었기 때문이다. 흑인 남성을 욕하긴 쉽지만 우리 안의 인종차별을 모두 부인하긴 힘들다. 중국의 곰 사육장에서 벌어지는 동물학대는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성추행 가해자에 관대한 대학은 성희롱 국회의원에 관대한 국회의 복사판이다. 어쩌면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한국 사회 전체의 축소판이다.
 
우리는 세상과 서로를 향해, 그리고 자연에 대해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누구의 지적대로,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흑인을 보면 얼굴 표정부터 바뀐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흑인은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이른바 ‘원어민 강사’다. 실상은 한국의 영어 열병이 불러들인 사람이다. 
 
곰 이야기에 이르면 정말이지 금수만도 못한 건 누구인가 싶다. 곰 한 마리를 잡으면 생웅담이 겨우 180g 나온단다. 그래서 두고두고 쓸개즙을 빼내려고 그 몹쓸짓을 한다. 올초 기사를 보니 한국에 사는 곰은 모두 1447마리라고 한다. 그 중 지리산에 풀어준 반달가슴곰 17마리와 동물원에 있는 290마리를 빼면 1140마리가 웅담채취용 사육곰이다.




우스운 것은 이 사육곰들도 대부분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반달가슴곰 보호’ 또한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어미곰의 자살 기사를 보며 많은 이들이 격분의 댓글을 달았지만, 그래도 또 다른 이들은 중국이나 동남아로 희귀동물을 찾아 보신관광을 하겠지.
 
동기를 성추행한 대학생은 어떻게 “이 여학생 평소 문란하지 않았느냐”는 설문조사까지 할 마음을 먹었을까. 고액 선임료를 내고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있는 집안 아들인가본데, 아픈 곳을 고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에서 어떻게 교수와 학생들이 1차, 2차의 가해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걸까. 

어떤 네티즌은 “지금 고대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한 지인은 “어느 순간부터 부끄러워해야 할 때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회가 됐다”며 “얼마나 더 살벌해질지 걱정”이라고 했다.
 
작은 뉴스거리들일 뿐이지만, 저런 예의 없고 도리도 없고 살벌한 단면들이 겹쳐져 온통 도둑과 사기꾼 뿐인 세상을 만든다. 그래서 죄인을 돌로 칠 ‘죄없는 자 하나 없는’ 사회로 만들어버린다. 뉴스 속 가해자들을 손가락질하지만 손끝은 어느 새 우리를 향해 있다. 우리는 예의와 도리를 지키며 살고 있나.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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