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스크랩] 프란츠 홀러, '원시림 책상'

딸기21 2005. 11. 8. 12:13
728x90

원시림 책상


프란츠 홀러


어떤 상인의 사무실에 마호가니 목재로 된 커다란 책상이 있었다. 이 사무실에 들어오기 위해 상인은 거의 전부 유리로 된 백화점의 맨 위층까지 매일 승강기를 타고 올라와야 했다. 상인은 마호가니 책상에 앉아 전세계로 전화를 하면서, 아프리카산 땅콩을 노르웨이에, 노르웨이산 고무장화를 아프리카에 팔았다. 그리고 저녁이면 컴퓨터로 이익을 따져보았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사무실 문을 잠그고 승강기를 타고 주차장으로 사라졌다. 그러면 사무실에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만이 벽장, 고무나무와 함께 우두커니 남았다.


책상은 아마존 원시림에서 자른 마호가니로 만든 것이었다. 책상은 매일 밤 늙은 고무나무와 얘기를 나누면서 원시림에 대해 들려주었다. 책상은 또한 보름달의 아름다움과 나뭇가지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원시림에 쏟아지는 엄청난 폭풍우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마지막엔 늘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한번만이라도 다시 원시림에 가봤으면......”


컴퓨터와 전화가 낮은 소리로 웃으면서, 자기들은 곧 가게 될 거라고 속삭였고, 의자는 열대림이 너무 습하다고 투덜거렸다. 고무나무는 가볍게 잎새를 끄덕였다.


아마존 원시림에 어린 마호가니 한 그루가 있었다. 언젠가 새떼들이 나무에게, 유리로 된 고층 건물과 경적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와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빛나는 광고 간판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날 이후 어린 나무는 원숭이와 앵무새와 표범이 싫어졌다. 일생에 단 한번 만이라도 대도시를 보는 것이 나무의 가장 큰 소원이 되었다.


어린 마호가니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견디다 못해, 옆에 있던 늙은 고무나무가 지금은 입을 다물고 있다가 보름달이 뜰 때 간절한 마음으로 빌면 도시로 가고 싶다는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고 일러주었다.


같은 시간, 사무실에 있는 고무나무도 마호가니 책상의 신세 한탄을 듣느라 지쳐 있었다. 고무나무는 책상에게 투덜거리지 말고 보름달이 뜰 때 간절한 마음으로 빌면 원시림에 가고 싶다는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보름달이 아마존 원시림 위에 붉은 오렌지 색깔로 떠오르고, 대도시 위에 창백한 치즈 색깔로 떠오르자, 원시림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나면서 마호가니 한 그루가 솟아올라 날아갔고, 같은 시간 대도시에서는 책상이 고층 건물 꼭대기에서 밖으로 날아갔다.



이튿날 아침 승강기에서 내려 사무실 문을 연 상인은 제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커다란 유리창은 깨져 있고, 컴퓨터와 전화기가 올려져 있던 예쁜 책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낯선 나무가 박혀 있었다. 나무줄기는 천장에 구멍을 내고 올라가 하늘로 뻗어 있었다. 화려한 색깔의 앵무새들이 요란스레 지저귀면서 고무나무와 벽장 사이를 날아다녔고, 의자에는 원숭이가 앉아서 고무장화 거래내역이 보관된 서류철을 넘기고 있었다.


상인은 조심스럽게 천장에 난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려다가,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비명을 지르며 아래층으로 뛰어내려왔다. 아래층에선 국수공장 사장과 그의 비서가, 천장에서 내려와 사방으로 뻗은 거대한 뿌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국수공장 사장은 주머니칼을 꺼내 전기 소켓 속으로 뻗은 뿌리를 자르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만 합선을 일으켜 건물 전체가 마비되고 말았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정원사들이 기계톱을 사용해봤지만 톱만 망가졌다. 나무는 기분이 정말 좋아보였고 순순히 죽으려 하지 않았다. 뿌리는 건물 전체로 뻗어 내려갔고, 얼마 후에는 가장 아래층 창문을 뚫고 어린 마호가니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곧 이웃 건물의 지붕 위로도 어린 나무들이 올라왔다. 앵무새들이 참새처럼 번식해서 수가 많아지고, 원숭이들이 여유롭게 이 빌딩 저 빌딩 옮겨 다니며 회사원들이 들고 있는 샌드위치를 빼앗아 먹었다. 표범은 계단으로 내려와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고양이와 개를 잡아먹었다. 도시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 작은 원시림과 함께 살아야만 했다. 원시림은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커졌다. 사람들은 곧 개구리들이 우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은행과 보험회사 창 밖으로 알록달록한 나비들이 날아다녔다.


땅콩 상인과 국수공장 사장은 원래의 사무실을 버리고 새 사무실을 구해야 했다. 고무나무만이 원래의 자리에 남아, 밤마다 마호가니가 원시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잎새를 끄덕였다.


아마존 지역에서 원숭이를 연구하다가 최근에 돌아온 어떤 여류 동물학자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원시림 한가운데에 책상이 하나 있다고 한다. 개미핥기가 서랍 속에 먹이를 저장해두고, 책상 위에서는 원숭이가 즐겁게 소리를 지르며 전화 수화기를 들고 놀고, 앵무새가 의자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 컴퓨터 자판을 누가 먼저 부리로 두드릴지를 놓고 싸운다고도 한다.


노르웨이에 아주 이상한 주문서가 도착했다. 땅콩을 다시 아프리카로 보내고 고무장화는 노르웨이로 보내라는 얘기인지, 아니면 전부 아마존으로 보내라는 얘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