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 THE 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
C K 프라할라드. 유호현 옮김. 럭스미디어.
협소하게 말하면 ‘공정무역(Fair Trade)’, 좀더 넓혀서 말하면 ‘친절한 자본주의’ 문제에 대해 요새 관심이 많아졌다. 극단적 빈곤을 없애기 위한 제프리 삭스 식의 접근, 아프리카 빈곤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같은 것들이 뒤섞여서,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방식의 해법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게 됐다.
인도계 경제학자 C K 프라할라드의 이 책, 원제는 ‘피라미드 밑바닥의 부(富)’인데, 한국에서는 딱 실용서 느낌으로 제목을 붙였다.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라니, 한국에 와서 멋대가리 없게 변한 책 제목 몇 순위 안에 끼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형편없는 작명이다. 책은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하다.
기본 발상은 단순하다. ▲이제는 다 같이 잘 사는 자본주의를 모색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저소득층은 왜곡된 시장구조 때문에 여태까지 자본주의의 혜택을 못 입었다 ▲자원봉사와 구호활동 만으로는 안 된다, 민간기업이 들어가서 자본주의적 방법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저소득층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기업들에게도 이익이다, 왜냐면 40~50억명 저소득층 시장은 구미 부자들 시장 못잖은 엄청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저소득층들의 세계도 충분히 ‘시장성’이 있음을 살피고, 저소득층은 브랜드 가치를 모른다거나 좋은 상품에 관심이 없다거나 첨단 기술을 수용·소화할 능력이 없다는 식의 편견은 사실이 아님을 여러 사례들을 들어 보여준다. 책은 전제와 사례가 번갈아 나오는 형식으로 돼 있다. 다만 저소득층 시장을 개척하려면 상품의 포장에서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다른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런 혁신을 통해 저소득층 시장에 훌륭히 진입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 준 기업들의 사례를 분석한다.
뒷부분은 거의 케이스 스터디인데 전반부에서부터 계속 인용돼 왔던 기업들 사례를 좀더 상세히 설명해놓은 수준이라 동어반복이 많아 대충대충 읽었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참신하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1.
중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러시아, 인도네시아,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등 9개국의 인구 총합은 전 세계 개발도상국 인구의 70%인 30억명이지만 이들 국가의 구매력기준 GDP 총합은 전세계 저개발국 시장의 90%인 12.5조 달러다. 이는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구매력 기준 GDP 총합보다 더 크다.
일반적으로 저개발국의 저소득층은 고비용 경제 구조 속에 있다. 그들은 쌀부터 신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있다. 뭄바이의 고소득층 지역인 와든 로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저소득층 지역인 다라비 사람들은 똑같은 서비스에 평균 20배 정도의 비용을 지불한다. 이러한 현상은 나라마다 규모는 다르지만 아주 보편적인 것이다. 저소득층에게 불리한 이런 비용 불일치 구조는 지역 중간 상인들과 비효율적 유통구조에 기인한다. 만약 민간 부문의 많은 기업이 저소득층 시장에 진입한다면 이러한 문제점들은 쉽게 해결될 수 있다.
2. 사람들은 빈곤층이 브랜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저소득층은 브랜드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치 또한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저소득층 사이의 브랜드 인지도는 보편적인 것이다. 더 높은 삶의 질에 대한 열망은 모든 이의 꿈이며, 저소득층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소득층 소비자들은 막연한 브랜드 이미지보다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구매자들이다. 따라서 대기업들의 도전 과제는 저소득층 소비자들이 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훌륭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3. 보편적인 관점과는 달리 저소득층 고객들은 첨단 기술을 쉽게 받아들인다. 인도의 기업집단 중 하나인 ITC는 마을에 설치한 PC를 통해 농부들과 직접 접촉하기로 결정했다. 덕택에 농부들은 만디라고 불리는 그 지방 경매소의 가격 뿐 아니라 시카고 거래소의 콩 선물 가격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채팅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활발한 활동으로 가득 차 있다.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인도 케랄라 주에서 낚싯배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일과를 마친 후 휴대전화를 이용해 케랄라 항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입찰자에게 그날의 어획물을 판매한다는 것이다. 뗏목 형식의 이 단순한 배는 예전과 변하지 않았지만, 어획물의 가격 입찰 과정과 신뢰할만한 정보에 근거한 판매 방식은 저소득층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저소득층 소비자들은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들을 받아들이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
4. 저소득층을 소비자로 전환시키려면 구매력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물론 현금이 부족하고 저임금으로 고생하는 저소득층에게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저소득층의 구매력을 만들어내는 기존의 접근 방식은 제품과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박애주의식 자선 사업은 기분 좋은 일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저소득층의 구매와 선택을 촉진시키기 위한 접근 방식 중 하나는 단위 포장을 작게 만들어서 그들이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빈곤층은 수입을 예상하기 힘들다. 그들은 현금이 있을 때만 구매하고 그날그날 필요한 품목에 대해서만 지출한다. 샴푸, 케첩, 차, 커피, 아스피린의 일회용 포장 등이 이러한 인구층에 적합하다. 일회용의 혁신은 저소득층 시장을 휩쓸고 있다.
구매력을 창조해 내는 또다른 접근법은 혁신적인 구매 계획 및 구매시스템을 제공하는 것.
- 브라질 카사스 바이아 가전제품 판매
- 멕시코 세멕스의 시멘트 판매
5. 민간 부문이 저소득층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개발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빈곤층이 소비자로 바뀔 때 그들은 제품과 서비스 그 이상의 것을 받게 된다. 그동안 중산층만 누리던 민간 기업들로부터의 관심과 선택을 통해 이제 저소득층들은 자신의 존엄성을 알게 되었다.
저소득층에서 일어나는 가장 흔한 문제점 중 하나는 정체성 결여다. 그들은 주로 사회의 바닥층에 있고 투표자 등록이나 운전면허 또는 출생신고와 같은 법적 정체성을 갖지 못한다. 예를 들어 상하이에서는 모든 이주 노동자가 오랫동안 문서로 기록되지 않았다. 이러한 양상은 민간 부문의 생태 시스템이 나타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브라질의 빈민들은 카사스 바이아에서 쇼핑을 할 때 신분증명서를 받는다. 회사로부터 카드를 받고, 그 카드는 세상에 그들이 누구인지를 말해 준다. 소비자들은 그들의 존재와 신용도의 증거로 자신들의 카드를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합법적 정체성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 없이는, 저소득층 소비자들이 우리가 당연히 받는 신용 대부와 같은 서비스를 누릴 수 없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사람이 아닌 사람’의 지위는 사람들을 가난의 악순환 속에 가둘 수 있다.
대기업과 저소득층 소비자들은 전통적으로 서로를 믿지 않았으며 그 불신은 아주 깊었다. 따라서 저소득층 시장에 접근하는 민간 기업들은 그들과 소비자들 사이의 신뢰를 구축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 인도 유제품 회사 아물의 설사방지 아이스크림
- 볼리비아 금융서비스회사 PRODEM FFP의 지문인식·컬러터치·방언 사용 ATM
- 멕시코 최대 제과업체 빔보의 저소득층 상대 트럭판매 시스템
6. 저소득층 시장에선 물 문제가 핵심적이다. 서구 선진국들에서 물은 삶의 질을 높이는 아주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 시장이 우리에게 주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물을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아니면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 같은 수준의 기능을 제공해주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을까?
포장 문제는 저소득층 시장의 환경 친화적 개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50억의 잠재적 사용자를 감안하면, 포장 원료를 포함한 모든 자원의 1인당 사용량은 극히 중요하다. 심지어 재활용 체계조차도 비실용적일 수 있다. 농촌 지역이 넓게 분산되어 있고 재활용을 위한 쓰레기 수거 또한 경제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포장은 제품의 안전을 확신시킬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다. 지금까지 다국적 기업들과 관련 기관은 포장 문제에 대한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안하지 못했다.
저소득층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원을 사용하게 할 것이다. 그것이 에너지든, 운송을 위한 화석연료든, 인간의 청결함을 위한 물이든, 안전과 미적 감각을 위한 포장이든 환경과 생태계를 고려하는 것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아마도 점차적으로 선진 시장보다는 저소득층 시장에서부터 더욱 혁신적이고 환경파괴가 없는 해결책들이 나타날 것이다.
7. 잘 인식돼 있으나 명료하게 표현되지 않는 개발의 실체는 여성의 역할이다. 그라민이 ‘여성들’이라고 부른 사람들은 사업가들이다. HLL의 샤크티 암마, ICICI 은행에서 SHG는 전부 여성들이다. SHG의 여성들은 예금과 대출에 책임을 지고 있다. 세멕스의 경우 회사는 여성들로만 운영된다. 우유 회사인 아물도 지역에서의 우유 사업 개시를 여성들에게 의존하고 있다.여성의 경제적 독립에 대한 접근법은 여성들에 대한 억압과 기회 부정과 같은 오랜 전통을 변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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