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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라는 렌즈로 본 세계 - '인구가 세계를 바꾼다'

딸기21 2008. 5. 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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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세계를 바꾼다 

니혼게이자이신문사. 강신규 옮김. 가나북스



‘인구’라는 키워드로 변화하는 세계상과 다가올 미래를 그려내보인다. 책 표지에 ‘인구문제를 통해 미래 세계의 혁명적 변화를 예측한 충격적인 보고서!’라면서 느낌표까지 쿵 찍어놨는데, 책은 쉽게 읽히면서도 재미있다. 책 모양도, 표지도 예쁘고. 


인구구조가 사회를 바꾼다, 어느 나라는 인구가 폭발 지경이고 어느 나라는 고령화 때문에 골치 아프다, 이런 사실쯤이야 뭐 이젠 상식이 됐으니 그리 충격적이진 않다. 하지만 책에 나와 있는 것은 아주 구체적인 자료들이어서 생생하고 재미있다. 


예를 들자면 종교·종파별 인구 구성의 변화가 레바논 정정에 미치는 영향, 자살대국 러시아의 현실, 두바이의 차이나타운, 미국 내의 인구 이동과 정치적 역학관계의 변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느끼는 차이나 파워에 대한 경계심 같은 것들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현실화되고 있는 것들이어서 책 윗부분 접어놓고 밑줄 쳐가며 읽었다. 화폐 단위를 모두 원화로 환산해 표기한 것이라든가 한국 부분에 대한 설명을 충실히 보충한 것 등 출판사·번역자의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2004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존 케리를 ‘게리 하트’라고 적어놓은 것 따위의 사소하지만 어이없는 실수들이 보였고, 이미 인용 가치가 없어져버린(해마다 경신되는 지수라든지) 통계치들도 여럿 있었다. 신문 기획기사 시리즈를 묶어놓은 글의 한계이자 장점이랄까, 간단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워 좋은 대신 너무 짧고 간략하면서도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부분도 있었다. 번역도 자연스럽게 하려고 애는 썼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정교하지가 못하다. 



▷ 이스라엘 인구는 700만명이 채 안되지만 하닷에셀 병원 같은 체외수정센터가 10곳 정도 있다. 영국 더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인구 1인당 불임치료시설 숫자가 세계 1위다. 신생아에서 차지하는 체외수정아 비율은 한국과 일본이 각각 1.4, 1.0%인데 비해 이스라엘은 5.0%에 이른다.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 인구를 늘리기 위한 대책을 세웠고 그 중 하나가 불임치료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불임을 개인적인 문제로 여기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국가 문제로 받아들여 적극 대처하고 있다. 둘째아이까지는 평균 2000만원 정도 드는 체외수정 비용 전액을 정부가 부담하는 것이다.


▷ 레바논 정부 요직 배분 기준은 프랑스 통치 시대인 1932년에 취합된 종파별 인구 통계였다. 최신 수치가 밝혀지면 대립이 격화될 것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인구 통계수치를 밝히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1932년에 50%를 차지하던 기독교도는 지금은 30%대 아래로 출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이슬람 수니파에 이어 세 번째이던 시아파가 지금은 약 40%로 가장 많다. 인구에 걸맞은 정치적 권리를 얻지 못한 불만 때문에 시아파 주민들은 헤즈볼라를 광적으로 지지하게 되었고, 그로써 이스라엘과 충돌을 빚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뒤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레바논으로 도피했다. 60년 동안 난민들의 거주지는 텐트에서 빌딩으로 바뀌었고, 주민 대다수가 팔레스타인을 모르는 제2, 제3 세대가 되었다. 그들은 취직과 부동산 구입에 제한을 받고 참정권도 없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레바논이 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이 있다. 대부분 수니파인 난민은 수가 약 40만명으로 늘었다. 그들에게 참정권을 준다면 이 또한 인구통계를 보완하지 않은채 겨우 유지해오던 정치적 균형을 무너뜨릴 것이다.


▷ 프랑스의 지스카르 데스탱 전대통령은 “유럽 헌법은 터키 같은 대국을 가정하여 성립돼 있지 않다”면서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에 제동을 걸었다. 만약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한다면 터키는 의사결정과정에서 독일과 똑같은 14% 가까운 투표권을 지게 되며, 유럽의회에서 12%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 유엔의 통계에 따르면 인도의 인구는 2035년에 이르면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선다. 2050년에는 15억명을 넘어선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동남아 전체 인구와 거의 맞먹는 인구가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똑같은 브릭스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가 직면한 저출산·고령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 러시아 인구는 2050년에는 지금의 1억4000만명에서 1억명 안팎으로 줄어들 것이다. 노동인구는 2025년까지 계속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2012~18년 사이에 노동인구가 가장 많이 줄어들 것이며, 그때는 해마다 약 100만명 이상 줄어들 것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동국인’ 이민을 유도하고 있다. 동국인은 본래 러시아에 있던 민족, 러시아어를 말하는 사람 등의 의미로 통한다. 이민 수용의 1순위는 재외 러시아인, 2순위는 슬라브 민족인 우크라이나인과 벨로루시인 등이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가장 부족한 인력은 단순노동 인력이다. 자국 경제가 발전한 만큼 우크라이나인 등이 러시아에 들어오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고 들어온다면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이민이 주류를 이룰 수 밖에 없다.


▷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 수백여 개의 컨테이너 박스 사이로 ‘사호 시장 Four Tiger Market’이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이 나타난다. 바로 중국 이민자들이 모여 형성한 헝가리 내 차이나타운이다. 이곳은 원래 부다페스트로 유입되는 수입 물품을 일시 보관하는 일종의 물류기지였지만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컨테이너 박스를 상점으로 전용하면서 거대 시장으로 변했다. 

인구 200만명의 부다페스트에는 현재 4만명이 넘는 중국인이 살고 있다. 동유럽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천안문 사태를 전후해 이곳으로 들어왔다. 헝가리 정부가 1988년부터 중국인의 입국 비자를 면제해 주었기 때문이다. 1991년 한 해에만 2만1000여 명의 중국인이 헝가리로 이주했다는 게 헝가리 이민국 관리자의 설명이다.


▷ 지금 미국에서는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이 가속화되고 있다. 애리조나 주는 지난 10년 동안 인구가 40%나 늘어났다. 반대로 중서부 노스다코나 주와 동부 웨스트버지니아 주는 인구가 줄어들었다. 철의 마을로 알려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시의 인구는 이미 1940년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미국의 인구지도는 서고동저·남고북저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에 따라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방 하원의 주별 의석 배분은 각 주의 인구 비율을 기준 삼아 10년마다 조정되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인구 비율이 낮아지는 뉴잉글랜드 각 주의 의석 수는 줄어든다. 뉴잉글랜드 지방에서는 “이래도 가면 중앙에서 행사할 수 있는 발언권이 줄어들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인구이동으로 말미암아 정당의 세력균형이 크게 변화할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이 선벨트 Sun belt 로 이동한다”. 미시건 주립대학의 윌리엄 프레이 교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1972년에는 북동부 스노 Snow 벨트와 남·서부 선벨트가 거의 비슷한 숫자였지만 2030년이 되면 선벨트가 스노벨트보다 1.7배 많은 수준이 된다.


▷ 이라크에서는 1980년대만 하더라도 이집트인 노동자가 200만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이라크 사람들조차 요르단 등 이웃나라로 빠져나가면서 노동 수요의 균형이 크게 무너졌다. 요르단에 살고 있는 이라크 사람은 어림잡아 40만명 정도이다.

아흐람 정치전략연구소가 어림잡는 아랍 각국의 실질 실업률은 이라크 66%, 팔레스타인 55%, 알제리 38%, 이집트 30%이다.


▷ 중국 저장성은 상하이 시 남쪽에 있으며, 윈저우 시는 저장성 내에서도 중간 규모에 속하는 도시로 동중국해를 바라보고 있다. 인구가 약 750만명인데 그중 150만명이 고향을 떠나 살고 있다. 중국인들은 윈저우 사람들에게 ‘돈밖에 모른다’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장사를 잘한다’는 존경의 이미지를 동시에 품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윈저우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로 주목을 받았다. 

인구이동은 중국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중국의 경우 태어나 자란 곳을 떠나 사는 사람이 1억4700만명(2005년)에 달할 정도다. 특히 윈저우 사람들의 ‘떠돌아다니는 버릇’은 이미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농사를 짓는 데 적합한 토지가 적은데다 대만과 가까웠기 때문에 국가에서 경제 지원도 해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장사를 하러 떠난 것이다. 

윈저우 만으로 흘러드는 구강을 지나면 시 경계 서쪽에 베이안춘(北岸村)이라는 마을이 있다. 중국의 농촌에서 고령자만 눈의 띄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베이안춘 젊은이들은 다른 마을과는 달리 여권을 가지고 마을을 떠난다. 가는 곳은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다양하다.


▷ 도시화가 진전될수록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식용육 가운데 특히 판매가 늘어난 것이 종교적 금기 대상이 되지 않는 새고기였다. 금기사항이 없는 중국에서는 소·돼지·양도 소비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식육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은 세계의 가축·식육 업계에 커다란 비즈니스 기회일 수도 있지만 사료를 조달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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