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권력을 이긴 사람들'- 하워드 진의 새로운 역사에세이

딸기21 2008. 9. 16. 18:01
728x90

권력을 이긴 사람들. A POWER GOVERNMENTS CANNOT SUPPRESS.

하워드 진의 새로운 역사에세이. 문강형준 옮김. 난장




손에 잡자마자 순식간에 읽었다. 하워드 진의 책은 벌써 몇 권 째 읽지만 이번에도 역시 감동적이다. 역사에 대한 낙관, 정의와 평화에 대한 신념. 특히나 2MB 시대라는 황당무계한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 들으라고 하는 얘기 같기도 하다. 노학자이자 실천가의 굽힘 없는 태도와 강건한 메시지는 항상 마음을 울린다. 이 울림이 나의 움직임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 우리나라에는 대통령도, 군대의 지휘관도, 월스트리트의 마법사도 아니지만, 불의와 전쟁에 저항하는 정신을 살리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수많은 영웅적인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연방법에 저항해 경제 제재 아래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의약품을 전달하기 위해 수십 차례도 넘게 이라크로 향했던 케시 켈리를 비롯한 ‘황야의 목소리’ 회원들을 생각한다. 나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반대하는 차원에서 텍사스 크로퍼드의 부시 대통령 휴양지 밖에 캠프를 열고 있는 신디 시핸과 ‘코드 핑크’의 여성들을 생각한다. 

또한 나는 노동착취 공장에서 생산되는 옷들이 대학에서 팔리는 것에 항의하는 수천 명의 학생들을 생각한다. 얼라이언트테크시스템사의 지뢰 생산에 반대하다가 수차례 감옥에 갇혔던 미니애폴리스의 맥도날드 수녀 자매 네 명을 생각한다. 살인기술을 가르치는 전미대륙군사학교의 폐지를 요구하며 조지아주 포트베닝으로 향했던 수천 명의 사람들 역시 생각한다. 

나는 흑인 운동가 무미아 아부-자말에게 내려진 사형선고에 저항해 8시간 파업운동에 참여했던 태평양연안의 항만노동자들을 생각한다.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이들을 생각한다. 역사로부터 완전히 멀어지거나 침울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념되지 않은 과거의 영웅들을 기억하고 알려지지 않은 주변의 영웅들을 찾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74쪽) 


▷ 치명적인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듯이 지구상에서 지뢰, 네이팜탄, 황린, 열화우라늄을 없애려는 운동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운동과 치료는 질병 자체의 제거가 필수적임을 이해하는 일과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전쟁의 철폐는 이상주의로 치부될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 노예제 폐지 문제 역시 그렇게 비쳐졌으나 소수의 노예폐지론자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들의 이상주의적 꿈을 현실화시킬 만큼 강력한 전국적 운동을 조직해냈다. 우리 역시 전쟁 없는 세상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꿋꿋이 버팀으로써만, 오직 그 꿈을 포기하기를 거부함으로써만 가능하다. (177쪽)


▷ 테러와의 전쟁을 비판하고 그 수많은 위선을 드러내야 하지만, 오직 그 일에만 집중한다면 우리 역시 그 전쟁의 희생자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적들이 여기저기 모든 곳에 있다는 대통령의 무시무시한 의견을듣고 있는 수많은 미국인들처럼) 미국인들을 묶어줄 하나의 생각에 눈길을 돌리지 못하게 될 테니. 우리에게 가장 치명적인 적들은 해외의 동굴이 아니라 수백만 명을 죽음과 비참함에 내주는 결정들이 나오는 기업 회의실과 정부 사무실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 적들을 물리치려면 우리에게는 시애틀 전투와 포르투알레그레의 정신이 필요하다. 지구의 열매를 함께 나눈다는 오래 미뤄졌던 목표를 바라보며 새로 활기를 되찾은 노동운동, 인종을 뛰어넘은 인민들의 행동, 그리고 전 지구적 연대의 시작을 알려주는 그 정신 말이다. (228쪽)


▷ ‘캠던의 28인’이 무죄방면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연방대법관 윌리엄 브레넌은 훗날 이 재판을 가리켜 ‘20세기의 위대한 재판들 중 하나’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 재판은 징병위원회에 침입했던 반전운동가들에 대한 많은 재판들 중 배심원들의 투표로 무죄가 선고된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왜? 이 재판에서는 잔혹한 전쟁의 희생자가 된 미국인들과 베트남인들을 보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들려준 동료 시민들의 이야기를 배심원들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심원들은 피고들이 어떻게 저항을 극대화하기 위해 법을 위반하기로 결정했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국가가 전쟁을 하고 있는 오늘날, 상황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은 배워간다. 거짓말도 밝혀진다. 한때 인기 있던 전쟁은 점점 의심받게 된다. 진실의 힘으로 미국인이라는 배심원에게 호소하면서 양심에 맞춰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아질수록 상황은 그렇게 되어갈 것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