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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책은 훌륭한데 번역이 GR

딸기21 2010. 3. 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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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안인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원래 독일에서 청소년을 위한 아프리카 역사책으로 쓰인 것이라 한다. 책은 아주아주아주 훌륭하다.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땅덩이의 기나긴 역사를 훑되, 기계적으로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테마들을 잡아서 흥미롭게 풀어간다.


대략적인 시대 순서로 아프리카의 역사를 전하면서 중간중간에 아프리카인들의 목소리를 넣었다. 거기에다가 멋진 그림으로 그려진 인물 그림들. 무엇보다, 아프리카를 ‘대충 한 덩어리’로 취급하지 않고 여러 곳의 사정을 ‘간략하면서도 충실하게’ 담아낸 것이 놀라울 정도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 지도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스크랩해두었다. 뒷부분에는 ‘오늘날의 아프리카’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 여성문제라든가 에이즈, 소년병 문제 같은 이슈들까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놓았다.


글쓴이는 아프리카의 어제와 오늘에 치명타를 입힌 노예제도의 문제를 설명하는 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존 아일리프의 <아프리카의 역사>에도 나오듯, 아프리카에는 유럽인들이 상륙하기 전부터 노예 사냥과 매매가 있었다. 하지만 “초기 아프리카 문명들의 노예 제도는 뒷날 아랍 사람과 유럽 사람의 노예 사업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노예제도는 경제 체제와 직결돼 있다. 노예경제라는 것은, 노예들의 강제노동에 의존해 주된 이익을 창출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 시스템이 ‘완성’된 것은, 유럽인들이 남북미의 거대 농장에서 노예노동으로 목화·담배·사탕수수를 재배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얻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여기서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서양과 아프리카 모두 자신들의 잘못을 직시하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공동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두리뭉실하지만, 글쓴이의 통찰력은 날카롭다. 서양은 자기네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입힌 엄청난 피해를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시 비 백인들을 차별하는 데에 동원한 이데올로기를 밝혀내야 한다는 것. 동시에 아프리카인들은 당시 자기네 지도자들이 서양인들의 노예사냥에 협력했음을 인정하고 아프리카의 권위적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것.


“숨을 돌리기 위한 휴식.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진행되었다. 착취와 노예 매매와 식민지의 500년이 흐른 다음 겨우 50년 만에 모든 것을 갑자기 정상으로 만들어야 하다니. 웃기는 일이다. 자유에 이르는 길 은 멀다. 역사의 발전이 500년 이상이나 억지로 중단되었다. 대체 어디서 시작을 해야 할까? 
그렇게 많은 사망자들이 있었고, 또 그 오랜 감옥 생활을 겪었음에도 압제자가 퇴장하는 방식에 대해 거의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오로지 유럽에 의해 남겨진 ‘국가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아프리카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좋다. 서양이 한 짓과 아프리카인들이 한 짓,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면면, 희망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들과 슬프고 끔찍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개울 흐르듯 이야기한다. 지적할 것을 다 지적하고 있지만 신랄하다는 느낌보다는 아프고 절절하다는 느낌이 든다.


문제는 번역이다. 꼼꼼히 안 읽고 그냥 술술 책장 넘길 사람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나처럼 자료삼아 스크랩해놓는 사람에게는 이런 식의 번역을 읽는 것은 정말이지 고통이다. ~족, ~인은 ~ 사람들로, 모어(母語)는 어미말로 쓰는 등 우리 말을 살리려고 어떤 부분에서는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무함마드는 마호메트라 쓰고, 카푸친스키(폴란드의 유명한 저널리스트)는 카푸신스키라 쓰고, 시바 여왕은 '성서에 따라' 세바, 통북투는 팀북투라고 쓰는 식이다. 이건 저자의 뜻과는 배치되는 ‘식민주의적인 표기’다. 거기다가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이슬람교 성당’이라 쓴 것은 난센스다. 로즈장학금으로 유명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광산 재벌 세실 로즈를 ‘로데스’라고 한 걸 보면 아프리카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듯하다.


문장은 어이없을 정도로 모호하고 뒤죽박죽에다가, 단어 선택은 끔찍하다. 질질 늘어진 문장, 적절치 않은 용어들. ‘민족 살해’는 아마도 종족말살(제노사이드)을 이야기하는 것 같고. 우간다에 다당제가 없다는 걸 ‘다수 정당이 없다’고 오역해 놓았다. 계속 이런 식이어서 짜증이 많이 났다.

다시 말하지만, 책은 훌륭하다!

 

(책 중에서)

▶ 중부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은 남부의 산족과 코이코이족, 탄자니아의 핫자족과 나란히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에 속한다. 다른 종족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멸종’ 위기에 몰려 있다. 피그미사람들은 허약하고, 어린이 사망률은 매우 높으며, 쉰 살을 넘기는 사람은 드물다. 그들의 숫자는 현재 30만 명을 넘지 않으며, 실제로는 15만 명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영항을 미치려는 외부의 어떤 시도에도 완강히 저항하였다.

▶ 카메룬의 바카족 여인 멘실라(Mensila)- “지금 우리 젊은이들 몇이 이런 샌들(플라스틱 샌들)을 신고 다닌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런 샌들은 숲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썩지 않고 망가질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색깔이 곱다. 누군가가 이곳 학교에서 그것을 가져왔다. 그런 것은 학교에서 온다.”

▶ 두 번의 세계 대전은 유럽에서 시작되었지만 나중에는 아프리카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 유럽 사람들은 수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전 쟁에 끌어들였다. 이들에게는 전쟁을 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약 200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유럽의 전투에 끌려 들어갔다. 그 중 약 20만 명이 유럽의 주인들을 위해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1915년 이후 유럽은 수많은 아프리카 남자들을 강제 동원하였다. 프랑스는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45만 명의 병사들을 데려다가 독일 전선으로 보냈다. 
1차 대전 이후 식민지에 건설된 인프라 덕분에, 2차 대전 때에는 훨씬 더 많은 원자재가 전쟁에 동원될 수 있었다. 1940년에 벨기에가 독일에 점령된 다음 런던에 본부를 둔 벨기에 망명 정부는 벨기에령 콩고에서 가져온 재원으로 수입의 86%를 충당하며 겨우 명맥을 유지하였다. 서로 적이 된 유럽 ‘주인’들의 명령에 따라 다시금 수십만 아프리카 사람들이 서로에게 총질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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