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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마우 봉기'를 아시나요... 영국 정부, 61년만에 사죄와 배상 약속

딸기21 2013. 6. 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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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가 과거 케냐 식민통치 시절 탄압한 현지 주민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배상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 6일 1950년대 케냐 ‘마우마우 봉기’ 때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2000만파운드(약 341억원)를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BBC방송 등이 보도했습니다. 헤이그 장관은 이날 의회에서 “영국 정부는 케냐에서 발생한 가혹행위와 이로 말미암아 케냐 독립운동에 차질을 준 것을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좀 우습긴 합니다. 점령통치를 했던 자들이, '독립운동에 차질 줘서 미안하다'고 하다니.


헤이그 장관은 피해자 5228명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으며,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 세워질 봉기 기념비 건립비용도 내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 측은 “불행한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이라며 환영했습니다.





영국은 그래도 일본보다 훨씬 낫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식민통치 시대의 잔혹행위에 대한 책임을 외면해온 영국 정부가 60여년이 지나서나마 사과와 배상을 결정하기까지는 주민들의 끈질긴 싸움이 있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1952년 케냐 중부에서 일어난 반식민지 투쟁이었습니다. 


케냐의 주류인 키쿠유족이 중심이 된 ‘케냐 토지와 자유 군대(KLFA)’은 토지와 자원을 수탈하는 영국군에 맞서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영국 지배당국은 이들의 운동을 낮잡아, 키쿠유어 발음을 흉내낸 무의미한 단어인 ‘마우마우’라고 부르면서 군대를 투입해 탄압했습니다. (편의상 지금도 '마우마우 봉기'라 부르기는 하지만, 당시 봉기를 일으켰던 투사들은 'KLFA'라 스스로를 지칭하지 결코 '마우마우' 따위라 부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덧붙이자면, 케냐는 동아프리카 내륙철도의 출발점으로, 영국 제국의 아프리카 수탈에 꼭 필요한 전략적 거점이었습니다. 지금도 영국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영국계 국제학교가 발달해 있다는 이유로 '영어 가르치려' 여기까지 애들 보내는 한국인들이 요즘 많다는 슬픈 전설도;;)





당시 영국이 이 봉기를 얼마나 강력하게 진압하려 했는지, 예를 들어볼까요.

1954년까지 영국은 나이로비에서 모든 아프리카계 주민(즉 흑인)들을 전면 검문검색했습니다. 

모든 흑인들을요! 이름하여 '안빌 작전(Operation Anvil)'입니다. 백인 병사 2만5000명이 투입돼 흑인 주민들을 무차별 붙잡아다가 키쿠유족인지 조사하고, 키쿠유족이면 구금시설로 보냈습니다. 키쿠유족이 아닌 엠부족이나 메루족 같은 부족 출신이라면 석방. 붙잡힌 키쿠유족은 랑가타 조사 캠프라는 곳에서 남성, 여성 아이들로 분류됐습니다. 


봉기와 관련있다는 의심을 받은 2만여 명이 이 곳에서 '신경가스 보복'을 당했습니다. 이러니 나치 캠프나 다름없다 하는 거지요.


1960년까지 계속된 학살과 감금, 고문 등으로 9만명 이상이 숨지거나 고문 당해 불구가 됐고, 16만명이 강제수용소에 보내졌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영국의 강제수용소는 독일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를 연상케 합니다. 이 수용소들에서는 수감자 인권을 유린하며 강제노역을 시켜 악명 높았습니다.


살아남은 반영 전사들은 1999년부터 영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마우마우 오리지널 그룹’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영국 정부에 50억파운드의 배상을 요구하고 나섰으며, 당시의 가혹행위 증거들을 모아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미 1963년 케냐가 독립하면서 현지 정부가 식민통치 당국을 승계했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영국 관리들과 언론은 마우마우 봉기의 주축들이 폭력적인 ‘테러범들’이었으며 그들도 주민들에게 가혹행위를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안중근 의사도 테러범이었다 주장하는 자들이 있더군요;; 저항과 테러의 의미를 모르는... )





2011년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런던 고등법원이 고문 피해자인 파울로 무오카 은질리, 왐부가 와 은잉기, 제인 무토니 마라 3명에게 “영국 내에서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다”고 판결한 겁니다. 

은질리는 강제수용소에 잡혀가 신체 일부를 절단당했고, 은잉기는 극심한 고문을 겪었고, 마라는 성고문(성폭행)을 당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배상청구소송이 시작됐고, 12월에는 키쿠유족 학살에 대한 기록들이 공개돼 영국 내에서도 이 문제가 공론화됐습니다. 


영국 정부는 등 떼밀려 원고들과 배상 협상에 들어갔고, 오늘 배상 계획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케냐에서는 독재정권 시절 영국 편에서 마우마우 봉기를 탄압한 자들이 요직을 차지, 이 봉기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독립운동으로 기념되고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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