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이웃동네, 일본

일본의 매뉴얼 문화

딸기21 2004. 6. 7.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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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 떨어진다 싶고, 저러니 변태들이지 싶을 때가, 바로 저 '매뉴얼 문화'의 극단을 볼 때다. 물론 내가 본 것이 극단인지 아닌지는 아직 나는 모르지만, 아무튼 내가 본 가운데에서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 있다.

우리처럼 도쿄에 한해살이로 연수 와 있는 선배 가족과 함께 후지산에 여행갔다가 들은 이야기다. 그 집 큰 딸이 소학교 6학년인데, 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닛코에 간다고 했다. 그런데 여행 안내문(매뉴얼)을 받아왔는데, 이것이 거의 책으로 한 권 분량이더란다. 여행가기 2주 전부터 매일매일 체온을 재서 학교에 가서 보고를 해야 한단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디 그런가? 수학여행 갈 즈음 해서 아이가 열이 있거나(엄마가 손으로 이마를 재보면 알지 -_-) 아프면 선생님께 얘기하고 빠지면 되지. 그걸로도 전학년 집단 건강검진을 받는단다. 안전제일도 좋긴 한데, "그 준비하는 거 보니까 일본놈들이 얼마나 또라이인지를 알겠어" 선배의 말이다. 실제로 나도 꼼양을 놀이방에 보내면서 매일매일 체온을 재야 했고, 그래서 체온계를 샀다. 하지만 두 살짜리 체온 재는게 나한테는 도저히 불가능해서(일본의 엄마들은 대단하다고 할 밖에) 맨날 거짓말로 적어 냈다.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다 못해, 인간의 판단력 자체를 의심케 만드는 것이 일본인들이다. 내가 보고 있는 일본어 교재의 한 대목. 언젠가 말했던, '정신병자 교과서' 바로 그 책이다.

교실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받아쓰기 시험을 봅니다. 책을 덮어 주십시오."
"선생님, 연필로 써도 됩니까."
"아니요, 연필로 쓰면 안 됩니다. 볼펜이나 만년필로 쓰세요."
"선생님 저는 볼펜을 잊어버리고 왔습니다"
"잊어버리고 다니면 안됩니다. 앞으로는 정신을 차리세요."
(옆사람) "그러면 오늘은 제 볼펜을 빌려 쓰세요."
"선생님, 그럼 다무라씨에게서 볼펜을 빌려 쓰겠습니다."
"지금부터 받아쓰기를 하겠습니다. 종이에 이름을 적는 것을 잊지 마세요.
내가 세 번 읽을테니까, 잘 들으세요.
첫번째는 받아적지 마시고 잘 들으세요.
두번째는 천천히 읽을테니 이 때 받아적으십시오.
세번째에는 (틀린 부분을) 고치고, 5분 뒤에 제출하십시오."

나는 첨에 이 교재의 내용을 보고 막 웃었다. 옛날에 만들어진 교재라서 내용이 황당하구만,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역시 전에 얘기했던 거지만, 일본어써클의 선생이 나한테 '연필로 쓰면 지울수 있으니 좋다'라는 충고를 한 것도 그렇고, 아지님에게 물어보니깐 지금도 대학교(!)에서 저 따위로 수업을 한다는것이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연필로 쓰건 볼펜으로 쓰건, 그걸 선생님이 모두 관여한단 말인가? 그리고 받아쓰기도 마찬가지다. 공부 잘 하는 애들은 한번만 불러줘도 다 알아서 적을 것이고, 못하는 애들은 세번 아니라 다 들어야 쓸까말까 할 수도 있다. 저걸 선생님이 꼭 말을 해줘야 하나. 매사 저런 식이다. 아지님의 교재에는 심지어 이런 것도 있단다. 이 과를 이해하지 못했으면 (화살표) 몇번으로 가시오, 이걸 이해했으면 몇 번으로 가시오, 이런 식으로 공부의 순서와 지침을 정해놓은. 진짜 웃긴다. 여성지에 나오는 yes/no 놀이도 아니고 대체 무슨 공부를 저렇게? 공부야말로 사람마다 자기한테 맞는 방식이 있는 건데, '규격화'도 저정도면 가히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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