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오렌지혁명과 '유로마이단 혁명'

딸기21 2014. 2. 2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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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시민들은 대선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섰다. 독립 뒤 10여년이 지나도록 독재의 그늘이 가시지 않던 옛소련권 국가들을 잇달아 휩쓴 ‘색깔혁명’의 하나인 ‘오렌지혁명’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후 10년, 다시 키예프는 ‘유로마이단(유럽) 시위’의 물결에 휩싸였다. 하지만 오렌지혁명 때의 키예프가 축제의 무대였던 것과 달리 지금은 폐허와 참사의 현장으로 변했다. 10년만에 되풀이된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시위와 정권축출은 양상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서로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무엇보다 사상자 규모다. 오렌지혁명 때는 거리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1명 외에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석달여 동안의 시위로 5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이번 사태가 이 나라에 미칠 상처의 크기와 지속력이 오래갈 것임을 알려준다.



시위대의 앞에 선 사람들은 달라지기도 했고, 변하지 않기도 했다. 10년전 시민들의 적은 대선에서 부정선거로 승리한 빅토르 야누코비치였다. 지금의 적 또한, 다시 집권에 성공한 야누코비치였다. 10년 전 시민들의 구심점은 빅토르 유셴코와 율리야 티모셴코같은 야당 지도자들이었다. 


이번 사태에서는 티모셴코가 옥중에 수감돼있던 탓에 야권에 이렇다할 구심점이 없었고 여러 지도자가 난립했다. 하지만 티모셴코가 21일 석방됨으로써 다시 그 밑으로 결집하는 분위기다. 얼핏 보면 똑같은 인물들 사이의 악순환같지만, 반정부 진영의 색깔은 훨씬 다양해졌다. 이번 시위에는 의회정치에 참여해온 야권뿐 아니라 극우 신나치주의자들에서 극좌파 무정부주의자들까지 여러 집단이 참여했다.

 

오렌지혁명의 이슈는 ‘정권교체’였다. 이번에도 시민들은 야누코비치 퇴진을 요구했고, 조기대선을 약속받음으로써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권의 ‘옷갈아입기’로는 시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인 차이는, 이번 사태의 경우 ‘유럽이냐 러시아냐’로 표현되는 국가의 정체성을 둘러싼 싸움이라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러시아의 영향력이나 권위주의 통치와 같은 구체제의 유령에 대한 환멸은 더욱 커졌고, 유럽이 되고픈 열망도 그에 비례해 커졌다. 정치분석가 발라츠 자라비크는 키예프포스트에 “지난번 혁명은 한 사람(야누코비치)을 향한 것이었던 반면 유로마이단은 ‘가치’를 두고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 가지, 10년전의 혁명때만 해도 유럽은 국외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서방)과 러시아 각각의 끌어당김이 훨씬 강하다. 우크라이나 내부 정치싸움에서 국제적인 대리전으로 판이 커진 것이다.

 

이번 사태를 ‘완결되지 못한 오렌지혁명의 예고된 귀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유로마이단 시위를 “오렌지혁명의 끝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분석했다. 오렌지혁명은 완결되지 못했고, 야권의 분열 끝에 친러시아계 야누코비치의 재집권으로 귀결됐다.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둘러싼 모순과 내부 분열은 더욱 깊어졌으며 경제는 추락했다. 이 모든 것이 이번에 폭력적인 양상으로 터져나왔다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미국 바너드대의 케일리 하넨크라트 연구원은 허핑턴포스트 기고에서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2004년의 교훈을 기억하는 것”이라며 “혁명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변화를 끌어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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