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흑인 청년의 죽음, 20년 넘게 진상규명 하고 있는 영국  

딸기21 2015. 4. 1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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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데에도 ‘시효’가 있을까. 


죄없이 살해된 한 흑인청년의 죽음을 둘러싸고 영국에서는 20년 넘게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 조사를 못 믿겠다는 유가족의 호소, 시민들의 진상규명 요구, 독립적인 조사위원회의 조사, 그리고 거듭되는 재조사. 이 과정은 진실을 찾기 위한 싸움이 얼마나 길고 지난한지를 보여준다.

 

가디언은 9일 독립경찰민원위원회(IPCC)가 런던경찰청장을 지낸 존 스티븐스를 조사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IPCC는 경찰 수사가 미진했다고 여겨지거나 오류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경우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조사하는 기구다. 이 기구는 경찰청이 인권단체들의 지적을 받아들여 스티븐스가 조사에 회부돼야 함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발단은 1993년 흑인 청년 스티븐 로런스(당시 18세. 위 사진)가 런던 남부의 버스 정류장에서 백인 청년 5명에게 흉기로 살해된 사건이었다. 경찰은 당시 범인들을 모두 붙잡았으나 아무도 기소하지 않았다. 숨진 청년의 가족들은 명백히 인종차별에 의한 살인이며, 수사 과정에서도 인종차별이 그대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파장이 커지자 영국 정부는 1999년 ‘맥퍼슨 위원회’라는 독립 조사기구가 만들졌다. 이 위원회는 로런스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희생됐으며, 국가기관과 법·제도에 의한 차별 즉 ‘제도적 인종주의’가 사건 수사 전반에 작용했다고 명시한 보고서를 냈다.

 

스티븐스는 1998년 런던 경찰청 부청장으로 경찰 부패를 감독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로런스 가족은 스티븐스를 비롯한 경찰 간부들이 경찰의 부패와 관련돼 있는 보고서들을 맥퍼슨 위원회에 내주지 않고 누락시켰다는 의혹을 줄곧 제기했다. 유족과 인권단체들의 주장이 마침내 받아들여져, 스티븐스는 ‘보고서 고의 누락’에 대한 조사를 받게 됐다. 로런스 사건 이후 22년만, 범정부 조사가 시작된지 17년만이다.

 


기나긴 기간에서 보이듯, 조사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살해범은 백인 청년들이었으나 부실수사 논란이 불거지면서 정부 대 시민사회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은 범인들을 비호한 경찰, 부패 경찰을 감싼 경찰청에 맞서 ‘로런스 캠페인’을 조직해 오랜 시간 싸움을 벌여야 했다. 


마침내 기소된 주범 2명이 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2012년에 이르러서였다. 2013년에는 경찰이 피해자 가족과 친구들을 감시하고 뒷조사한 사실이 폭로됐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서야 재조사를 지시했다. 

 

지난해에는 조사에 참여했던 핵심 인물의 부패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숨진 로런스의 아버지 네빌은 9일 채널4 인터뷰에서 “아들의 죽음을 조사하는 동안에 일어난 일들의 진실을 이번에야말로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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