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구정은의 세계] 정치인들은 왜 늙었을까

딸기21 2017. 4. 1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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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인구는 약 73억명이다. 세계은행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그중 25%는 갓난아기부터 14세까지의 아이들이다. 15세부터 24세 인구는 전체의 16%다. 


20세기 이래로 14세 이하 아이들이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았던 때는 1965년이었다. 그해 지구 사람들 중 아이들이 38%였다. 중국이 산아제한에 나서고 각국에서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아이들 비중은 점점 줄고 있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4명 가운데 1명은 15세 미만의 아이들이다. 25세 이하까지 합치면 아이들과 청년층 인구는 세계 인구의 42%다.

 

1965년에 65세 이상 노년층은 세계 인구의 5%가 조금 넘었다. 지금은 고령화로 많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8.7%, 아이들과 청년에 비하면 훨씬 적다. 세계 사람들을 나이순으로 줄 세웠을 때에 가운데에 있는 사람의 나이, 즉 연령의 중간값은 30.1세다.


그런데 이 절반의 사람들, 30세가 못 되는 사람들의 정치적 발언권은 미미하다. 전 세계에서 서른 살이 안 된 국회의원의 수는 전체의 1.9%에 불과하다. 의회가 있는 나라들의 30%는 서른 살 미만 의원이 한 명도 없다. 국제의회연맹(IPU)의 지난해 보고서에 나온 통계다.

 

이미지 : RELEVANT Magazine


나이대를 좀 올려보자. 세계의 40세 미만 의원은 14%, 45세 미만은 24%다. 여성 의원이 적은 것은 대개 비슷하지만 45세 미만만 놓고 보면 남성 60 대 여성 40으로 격차가 줄어드는 것이 눈에 띈다. 


젊은 정치인이 많은 곳은 스웨덴, 에콰도르, 핀란드, 노르웨이다. 세계에서 이들 네 나라만 20대 의원이 10%가 넘는다. 벨기에, 부탄, 케냐도 20~30대 의원 비율이 조금이나마 높다. ‘행복한 나라’라는 부탄은 의원의 80%가 45세 미만이다. 젊은 정치인이 많아서 행복해졌다는 얘기는 아니고, 왕정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로 바뀐 지 몇 년 안돼 그렇다.

 

지금 한국 국회의원의 평균 나이는 55.5세다. 역대 최고령 국회라고 한다. 60대가 86명이고 지역구 의원 중 20대는 없다. IPU 보고서에서 한국의 30세 미만 의원은 0%. 아제르바이잔, 캄보디아, 가봉, 카자흐스탄, 이란, 동티모르 등과 함께 꼴찌다. 미국도 0%라고 하면 좀 위안이 되려나. 하지만 30~40대 장관조차 없는 나라는 세계에서 정말 드물다. 그러면서, 아니 그렇기 때문에 허구한 날 ‘노오력’하고 아이 많이 낳으란 말만 나온다. 어려서부터 정당 조직에 들어가 활동하고 정치를 배우는 유럽에는 젊은 각료들이 많다. 오스트리아의 세바스티안 쿠르츠 외무장관은 1986년생이다. 조지 오스번은 2010년 39세로 영국 재무장관이 됐다.

 

의회가 있는 나라의 90%는 18세부터 투표권을 준다.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브라질, 쿠바, 에콰도르, 인도네시아, 니카라과는 16~17세부터 투표를 한다. 18세에도 투표권이 없는 나라는 한국, 바레인, 레바논, 말레이시아, 오만뿐이다. 투표 연령은 젊은 정치인들이 있느냐 없느냐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선거제도 영향도 크다. 지역구 다수결 투표에서는 20~30대 의원 비중이 낮지만 비례대표로 가면 다르다. 세계에서 비례대표 의원의 25% 이상이 20대이고 30대는 33%에 이른다. 그래서 IPU는 투표 개시 연령을 낮추고, 비례대표 선출을 늘리고, 세대별 균형이 이뤄지도록 의회 쿼터를 둘 것 등을 제안한다.

 

젊은 사람이 많다고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인구 절반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것은 문제다. 청년실업률이 글로벌 이슈가 되고, 목소리를 낼 기회를 박탈당한 이들이 경제적·사회적 좌절감 속에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일부는 테러리스트가 되고, 또 몇몇은 증오범죄를 저지르는 세상에선 더 그렇다. 국제노동기구(ILO) 노동시장트렌드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의 실업률은 5.7%로 예측됐지만 청년실업률은 13.1%로 두 배가 넘는다.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아이들 36.9%는 노동을 하고 있지만 빈곤선 이하에서 살아간다. 일자리가 없거나 혹은 일을 해도 먹고살 형편이 못 되는 아이들, 청년들.

 

지금 세계는 아이들 때문에 슬프다. 돌이켜보면 시리아 내전을 촉발한 것은 독재정권을 비판한 아이들의 담벼락 낙서였다. 세월호가 올라올 때 시리아에서 아이들이 화학무기에 숨졌다. 부활절이던 4월16일, 세월호 참사 3주기이던 그날 시리아에서는 다시 자폭테러로 아이들 6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래를 위해 아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대신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시대다. 시리아 청소년들에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리를 행사할 기회가 있었다면 내전이 저 지경으로 치달았을까. 10대들에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이 그리도 부정당하고 모욕당했을까. 대선이 코앞인데 이번에도 10대들의 발언권은 없다. 10대, 20대의 목소리로 독재자의 거짓 회고록 따위와 케케묵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논할 날은 언제나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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