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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제비’ 미사일 엔진폭발?...방사능 누출 러시아 항구에선 무슨 일이

딸기21 2019. 8. 1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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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북쪽 바다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7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북부 항구의 폭발을 두고 추측이 분분하다. 방사능 누출로 주민들은 불안에 떠는데 정부는 속시원히 밝히지 않는다. 신형 핵추진 미사일 발사실험 도중에 폭발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모스크바타임스 웹사이트 캡처

 

폭발이 일어난 것은 지난 8일(현지시간)이었다. 러시아의 아르칸겔스크 군사기지 앞 백해(白海) 해상에서 폭발이 일어나 사람들이 바다로 튕겨져나갔다. 특수선박이 투입돼 수색작전에 나섰다. 그린피스는 이 일대의 방사능 수치가 평소의 20배로 뛰었다고 했다. 인근 세베로드빈스크에서는 주민들이 갑상선암을 예방한다는 요오드를 사기 위해 약국으로 몰려들었다.
 

이틀간 입을 다물고 있던 국영원자력회사 로사톰은 10일에야 사고 사실을 인정했다. 알렉세이 리카체프 로사톰 사장은 “새로운 특수디젤”을 시험하다가 직원이 숨졌다고 했다. 새 무기시스템과 관련된 업무는 “종료됐다”고 했지만 어떤 무기였고 어떤 과정에서 폭발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 관리는 11일 “방사능 수치가 2배로 올라갔다가 1시간 뒤에 다시 내려갔다”고 했다. 주민 18만5000명이 사는 세베로드빈스크 시 당국은 웹사이트를 통해 “잠시 방사능 수치가 올라갔다”고만 알렸다. 아르칸겔스크 항만당국은 사고해역 부근의 항구를 한 달 간 폐쇄한다면서도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사고 뒤 며칠이 지나서야 전말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 등은 12일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사망자는 7명이며 신형 9M730 부레베스트니크(바다제비) 핵미사일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엔진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서 “사거리 제한이 없는” 새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자랑했는데, 이 미사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됐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미사일방어(MD)를 무력화할 신무기”라고 소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SSC-X-9 스카이폴’이라 부른다. 알래스카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미국 본토를 곧바로 타격할 수 있다는 얘기여서 미국이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이후 시험발사에 번번이 실패했다는 얘기만 나돌았다.
 

이번 사고는 미국과 러시아가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해 군비경쟁이 재점화할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5일에도 미국이 새 미사일을 개발하면 러시아도 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던 차에 사고가 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트위터에 “미국은 러시아의 실패한 미사일 폭발에서 많은 걸 배웠다. 우린 비슷하지만 더 나은 기술이 있다”고 비꼬는 글을 올렸다. 
 

미국은 이 미사일의 개발 상황에만 관심을 쏟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핵 관련 사고를 대하는 러시아 당국의 태도다. 사망자 중 5명은 모스크바 동쪽 사로프 지역에 있는 로사톰 연구소 소속 핵과학자들이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 연구소의 발렌틴 코스튜코프 소장은 11일 방송 인터뷰에서 “희생자들은 국가적인 영웅들로, 정부에 포상을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사톰은 2007년 푸틴이 연방에너지국을 없애고 만든 국영 원자력회사이자 세계 최대 원자력기업이다. 1990년대 총리를 지냈고 푸틴 대통령 비서실 부실장이었던 세르게이 키리옌코가 이끌고 있다. 정부의 발표에도, 로사톰의 입장에도 방사능 피해를 걱정하는 시민들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심지어 당국이 사고 사실을 숨기려 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고 당시 모스크바의 TV방송 전파는 1시간 가까이 교란됐다. 타스통신을 비롯한 국영언론들은 사고가 나자마자 주변 지역의 방사능 수치는 정상이라고 보도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위험한지 아닌지 알 권리가 있다”는 러시아 시민들의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러시아와 유럽 언론들은 원자로 폭발 9일 만에야 사고가 났음을 공개한 1986년 체르노빌 사태를 연상케 한다고 지적한다. 사고를 쉬쉬하고 감춤으로써 러시아가 피해를 키운다는 것이다. 2017년 11월 유럽은 물론 아시아와 아라비아반도 등 세계 곳곳에서 루테늄-106이라는 방사성 물질이 발견됐다. 러시아 기상·환경감시청은 누출 경위는 밝히지 않은 채 “주민 건강에는 피해를 주지 않는 수준”이라고만 강조했다. 지난달 말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당시의 방사능 물질이 “우랄산맥 일대에 있는 핵재처리시설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는 논문이 실렸다.
 

1989년 노르웨이해에 가라앉은 옛소련 핵잠수함 K-278콤소몰레츠에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골칫거리다. 러시아와 공동으로 이 잠수함의 방사능 누출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노르웨이 방사능안전청(DSA)은 지난달 “가라앉은 잠수함 내부의 바닷물을 조사해보니 방사성 세슘 검출량이 정상수준의 80만배”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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