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베네수엘라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용병을 보냈다고 베네수엘라가 주장하면서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발단은 지난 3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 주변에 있는 라과이라는 곳의 바닷가에서 무장괴한들을 사살했다고 베네수엘라 정부가 밝힌 겁니다. 정부는 국영방송을 통해 “쾌속정을 타고 혁명정부 지도자들을 살해하기 위해 용병들이 침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장에서 8명이 사살됐고, 당시 체포된 미국인 2명을 비롯해 37명이 검거됐습니다.
베네수엘라 “해안 침입 용병들 사살”…배후는 미국?
베네수엘라의 현 대통령은 우고 차베스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2018년 대선에서 재선됐는데,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임시대통령이라 우기고 있습니다. 미국은 과이도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고 세계 각국에도 '줄서기'를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마두로가 여전히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상황이죠. 이런 가운데 마두로 대통령을 공격하려는 용병들이 등장했다고 베네수엘라 정부가 주장한 겁니다.
체포된 전직 미군 특수부대원의 자백 동영상 공개
용병 침투작전을 무산시킨 직후 베네수엘라 측은 "공격 배후에 미국과 콜럼비아가 있다"면서, 체포된 사람 중 1명은 미국 마약단속국 요원이고 현장에서 고성능 무기와 위성전화, 성조기가 새겨진 헬멧 등도 발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 법무부 마약단속국(DEA)은 명칭 그대로 마약단속을 담당하지만, 마약갱들을 잡고 미국으로 마약이 유입되는 걸 막는다면서 중남미 각국의 갱 소탕작전이나 군사작전에 개입한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보도들에 따르면 DEA 직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침투 과정에서 체포된 사람들 중에 미군 특수부대 출신이 2명 있는 것은 확인됐습니다.
베네수엘라 국영방송은 미국인 루크 덴먼(34) 등 두 명의 자백영상을 6일과 7일 공개했습니다. 덴먼은 미군 특수부대 그린베레 출신이고, 현재 ‘실버코프’라는 용병회사 소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1월 중순부터 베네수엘라에서 가까운 콜롬비아 국경지대에서 전투원들을 훈련시키고 작전을 수행하는 대가로 돈을 받기로 했고, 카라카스 국제공항을 장악하고 마두로를 미국으로 끌고갈 계획이었다”고 말했습니다.
4일에 트위터에 영상이 하나 올라왔는데, 3월부터 콜롬비아에서 베네수엘라와 미국의 퇴역 군인들이 마두로 정권을 공격할 준비를 했고, '기드온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라과이라 해안 침입을 감행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덴먼의 말과 거의 같습니다. AP통신은 이 영상에 대해 보도하면서 "자금 부족에 정보가 새어나가 실패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개입? 과이도가 배후?
지금까지의 언론 보도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대략적인 스토리는, 조던 구드로라는 미국인이 플로리다에 용병회사 실버코프를 세웠고, 자백영상을 찍은 덴먼을 비롯해 베네수엘라 전직 군경 등을 끌어모아 훈련을 시켰다는 겁니다. 용병들을 모집한 구드로는 "베네수엘라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무기를 비축하고 해안 침투를 시도했는데 쿠바 측에 포착됐고, 그 정보가 베네수엘라로 전달돼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습니다. 혹은 쿠바의 도움을 받은 베네수엘라 정보요원들이 진작에 용병 집단에 침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0일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작전이었다"며 이런 뒷이야기들을 소개했습니다.
Poorly Organized and Barely Hidden, Venezuela Invasion Was Doomed to Fail
과이도 측이 공작에 관련이 돼 있었던 것은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 과이도 측은 마두로 대통령을 몰아내려고 작년에 군사 봉기 계획까지 세웠지만 실패했습니다. 반정부 시위에 힘이 실리지 않았고, 미국과 야권이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군부의 마두로 지지가 굳건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그래서 과이도 측이 전략위원회라는 비밀 조직을 만들었는데, 거기 들어가 있던 게 실버코프 용병회사를 만든 구드로였다는 겁니다. 이들이 마두로를 붙잡아 몰아내는 작전을 세웠는데 돈 문제로 마찰이 있었고, 작전은 잘 안 됐던 모양입니다.
마두로에 현상금 건 미국
베네수엘라가 "미국이 배후에 있다"고 비난했을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 정부와는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우리가 개입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며 해명을 빙자한 비난을 했습니다.
체포된 덴먼이 자백 동영상에서 '이 계획을 지휘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휘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마약단속국이나 중앙정보국(CIA) 같은 미국 정부기구가 관여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다만 사전에 정보를 알았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AP는 마약단속국이 3월에 용병들의 베네수엘라 침투 계획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용병들을 모집한 구드로를 미국 당국이 조사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상원 정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질의문을 보낸 상태입니다.
미국은 경제 제재로 숨통을 조이면서 마두로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마두로 정부를 '베네수엘라 옛 정권'이라 부릅니다. 과이도가 지난해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와 거래하는 러시아 석유기업을 제재하고, 베네수엘라에서 영업 중인 미국 석유회사 셰브론에 사업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지난 3월엔 마두로 대통령을 ‘마약테러’ 혐의로 기소하고 1500만달러(약 184억원)의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김향미의 ‘찬찬히 본 세계’]베네수엘라와 이란이 부쩍 가까워진 이유
한국 정부도 작년 2월에 과이도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 얘기로는 마두로 정권이 쉽사리 무너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차베스의 유산인 서민 복지정책의 효과를 부정할 수 없고, 과이도가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의 봉쇄로 수출길이 끊기고 경제난에 생필품 부족이 심하기는 하지만 국민들이 마두로를 쫓아낼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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