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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의 그림자 속 그 소녀, 루비 브리지스

딸기21 2020. 11. 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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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이미지. 최초의 ‘흑인·여성 부통령’이 될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 뒤로 민권운동의 상징인 흑인 소녀 루비 브리지스의 그림자를 합성했다. www.instagram.com/briagoeller

 

한 여성이 걷고 있다. 흰 벽에 그림자가 비쳐진다. 그림자의 실루엣은 짧은 머리를 뒤로 묶은 어린 소녀다.

 

정장을 입고 성큼성큼 걷고 있는 여성은 카멀라 해리스. 지난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선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나와 부통령에 당선된 해리스다. 그림자 소녀는 루비 넬 브리지스 홀, ‘루비 브리지스’라는 이름으로 미국 흑인 민권운동사에 새겨져 있는 여성이다.

 

루비는 민권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즈에 살던 여섯 살 흑인 소녀였다. 그 해 11월 윌리엄프란츠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흑백 ‘통합 교육’이 시작됐다. 루비는 백인들만 다니던 학교에 맨 처음 등교한 흑인 학생이었다.

 

루비 브리지스가 1960년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즈의 윌리엄프란츠 초등학교를 나오고 있다. 인종주의자들의 공격을 우려해 보안요원들이 호위를 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등교길은 순탄치 않았다. 백인들의 저항은 거셌다. 인종차별에 반대해온 부모는 다섯 자녀 중 맏딸인 루비를 그 학교에 보내기 위해 미국 최대 흑인단체였던 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지원 속에 투쟁을 벌여야 했다.

 

‘루비의 등교’는 로자 파크스의 ‘버스 하차 거부’와 함께 민권운동의 상징적인 사건이 됐고, 민권운동 단체와 교육당국의 소송까지 거친 끝에야 이뤄질 수 있었다. 학교에 간 뒤에도 백인들이 공격할 위험을 피해 보안관이 그의 등하굣길을 지켜줘야 했을 정도였다. 루비는 자란 뒤에 흑인 권익 투쟁에 적극 참여했으며 1999년에 ‘루비 브리지스 재단’을 만들어 ‘관용과 존중과 서로 다름의 가치’를 옹호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루비 브리지스가 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학교에 가는 모습을 그린 노먼 록웰의 작품. www.childrensdefense.org

 

루비의 이야기는 노래와 TV 시리즈, 다큐멘터리와 책으로 만들어졌다. 가장 유명한 것은 화가 노먼 록웰이 그린 그림이다. 어린 루비가 책을 들고 보안요원들에 둘러싸여 학교에 가는 모습을 담은 이 작품에 록웰은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The Problem We All Live With)>라는 제목을 붙였다.

 

2010년 루비는 윌리엄프란츠 초등학교 인종 통합교육 5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이듬해에는 백악관을 방문,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을 만나 오벌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 전시된 록웰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2011년 8월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노먼 록웰의 작품을 함께 관람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루비 브리지스와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 버락오바마대통령박물관

 

해리스 부통령 당선자는 루비가 첫 등교를 하고 4년이 지나 태어났다. 교수 아버지와 생물학자 어머니를 뒀고,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개방적인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남부 흑인 가정’ 출신인 루비와는 형편이 달랐지만 흑인과 인도계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란 해리스도 인종적 소수자라는 점은 같았다. 해리스는 지난 3월 앨라배마주에서 루비를 만나 포옹하는 모습을 트위터에 올렸다.

 

루비 브리지스와 포옹하는 카멀라 해리스. 카멀라 해리스 트위터

 

미국 역사상 첫 ‘흑인·여성 부통령’ 탄생을 앞두고 소셜미디어에서는 해리스의 모습에 루비의 그림자를 합성한 이미지가 퍼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화가·디자이너 브리아 골러가 만든 작품이다. 골러는 8일 인스타그램에 이 이미지를 올리면서 “이 나라가 열정과 평등에 헌신해온 사람들을 택했다, 경이로운 아침이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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