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한국의 논점] 미국과 중국 사이

딸기21 2022. 4. 2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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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대를 빼냈다. 철군 자체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미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예고됐던 것이다. 탈레반의 재부상도 예상됐던 일이다. 다만 그들의 진격 속도에 세계가 놀라고, 그것이 가져올 아프간인들의 고통을 걱정하는 것일뿐이다. 오히려 놀라웠던 것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철군한 방식이었다. 일정을 정해놓고 유럽을 비롯한 전쟁 동맹국들에게는 오직 통보만 했다. 카불 공항에서 미군이 나가는 일정이라도 늦춰달라는 요구조차 들어주지 않았다. 유럽은 이례적으로 격앙된 반응을 보였지만 아프간전 동지였던 영국도, 독일도 씁쓸히 ‘미군이 철수한다니 거기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며 돌아서야 했다.


미국의 군사행동에 관한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은 지난 30여년 동안 ‘케이스 바이 케이스’였다. 민주주의와 인권과 동맹을 강조하지만 철저한 실리외교다. 철군이 보여준 것은 명확하다. 미국은 더 이상 세상 모든 일을 책임질 뜻이 없으며, 심지어 자신들이 벌려놓은 일이라 할지라도 ‘안 되는 일’은 과감히 버리겠다는 것이다. 

 

Nikkei Asia


그렇다고 바이든의 미국이 동맹국들을 자유롭게 풀어주지는 않을 것 같다. 그는 취임 전부터 동맹을 강조했다. 하지만 바이든이 말하는 동맹의 복원은 전임자가 흐트러뜨려놓은 것들을 수습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호주, 영국, 뉴질랜드, 캐나다는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과 파이브아이즈라는 정보협력기구로 묶여 있었는데 여기에 더해 오커스(AUKUS)라는 이름으로 호주와 영국을 다시 묶었다. 또 ‘아시아판 나토’라는 쿼드(QUADS)를 통해 일본, 인도, 호주를 규합했다. 2004년 인도양 쓰나미 때 만들어졌지만 그 후 내내 유명무실했던 이 기구는 갑자기 아시아 질서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아시아 동맹들을 이리 묶고 저리 묶으며 단속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줄을 세우는 것은 트럼프 정부 때보다 더 심해졌다. 무의미하게 돈을 퍼붓고 피를 흘린 ‘테러와의 전쟁’을 끝내고 중국을 상대하는 데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이 구도에서 한국의 자리는 어디일까. 안보협력 블럭들을 열심히 묶고 있는 미국을 보며 한쪽에선 ‘못난 정부 때문에 한국이 빠졌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미국이 주최한 모임에 들어갔다 못 들어갔다를 가지고 마치 나라의 앞날이 걸린 양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한국이 블럭들에 들어가는 것의 득실을 면밀히 따질 일이고, 저 블럭들의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유리할지 계산해야 한다. 당장 쿼드의 경우만 해도 안보동맹이라기보다는 중국 견제 동맹으로 모두가 해석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동맹국도 아니고 어떤 안보동맹에도 가입하기를 거부해온 인도가 여기에 들어간 것은, 중국 견제 메시지를 보내는 데에 동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쿼드를 좀더 들여다보자면 이 모임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상황에 따라 앞으로 계속 변화할 것이라고 봐야 맞을 듯싶다. 미국과 일본이 주축이 돼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거나 최소한 ‘균형’을 잡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전망이다. 하지만 코로나19 같은 팬데믹 대응이나 기후변화 대응 등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아시아의 ‘중도세력’들이 연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아직은 소수의견에 불과하지만. ‘미들파워’를 주창해온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중국의 위협을 강조할수록 미국에 더 의존하게 된다”면서 “일본의 관심사가 이것(중국 견제)만이라면 일본의 ‘전략적 자율성’은 없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쿼드의 핵심 안건 중 하나는 기술 문제다. 백악관이 9월 24일 쿼즈 정상회의 뒤 공개한 내용을 보면 ‘개방적이고 접근성이 뛰어나며 안전한 기술 생태계’를 만드는 것에 큰 비중이 할애돼 있다. 향후 몇 달에 걸친 작업 뒤에 “기술 설계, 개발, 거버넌스 및 사용에 대한 원칙을 공표할 것”이라고 했다. 기술표준을 만들고 반도체 공급체인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5G 구축과 다양화를 지원하고 생명공학기술을 모니터링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은 이미 5G 통신망 구축 과정에서 화웨이 문제 등으로 미국의 압박을 받았다. 핵심기술 분야에서 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을 하라는 요구가 더 심해질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필요성은 한국도 인식했다. 트럼프는 선험적인 반중 구호를 국내정치에 활용하는 것에 치중했지만, 바이든은 다르다. 바이든 정부는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 정도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핵심산업의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구축하려 한다. 반면에 쿼드가 내세운 다양한 목표들 중에는 미국과 중국의 협력이 필요한 것들도 많다. 쿼드 정상들의 성명에서는 중국을 아예 거명하지 않았다. 경쟁할 것에서는 하되, 협력할 곳에서는 협력할 길을 열어뒀다. 미국은 한국도 동참하길 바라지만 한국은 가입을 거절했다. 반중국 연대에 끼어드는 것은 한국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일이므로 신중한 결정을 내린 셈이다. 이후 제한적인 참여 쪽으로 접근해가는 것 같은데, 필요하면 ‘쿼드+’에 가담할 수도 있고 사안에 따라 미국과의 양자 관계에서 논의할 수도 있는 일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올해 안에 화상 정상회의를 열기로 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중국의 최고위 외교관 양제츠(楊潔篪) 공산당 정치국 외교담당 위원이 10월초 스위스에서 만나 장시간 논의 뒤 정상회의에 합의했다. 설리번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3월 앵커리지에서 양 위원과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만났을 때만 해도 양측의 기싸움이 대단했다. 하지만 반년이 지나 이뤄진 만남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던 모양이다. 회담을 하기 위해 설리번이 취리히에 갈 무렵 중국 공군은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했고, 미국은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을 제공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그 와중에 양제츠와의 만남을 가진 미국 당국자들은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치열한 경쟁을 하더라도 그 경쟁을 책임감 있게 관리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안정된 상태”라고 말했다. 경쟁 관계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양국의 생각이 일치한다는 얘기다.


바이든은 미국의 대통령이면서 그 자신이 외교전문가다. 집권 이후 보여준 움직임들은 치밀한 전략가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 모두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지만 무모한 도발보다는 전략적 계산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미국의 지정학적 목표, 특히 아시아에서의 지정학적 질서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생각은 대체로 현상유지 쪽이다. 미국에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 있다는 것이 한국에는 어떤 면에서는 부담이다. 똑똑한 파트너의 잘 계산된 요구를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발성 대신에 예측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단, 우리도 똑똑해야만 한다. 한국도 핵무기를 갖자는 수준의 무지한 주장으로 상대할 수 있는 미국이 아님을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한반도 이슈에서나 중국과 관련된 많은 이슈들에서나 한국의 태도는 계속 신중해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 
결국 미중 갈등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잘 찾아야 한다. 어느 한쪽을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기술 문제뿐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앞으로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것들은 더 많아지고 면밀해질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서든 글로벌 공급체인 속에서든 중국을 도외시할 수 없는 한국으로서는, 미묘한 지리경제학적 위치 속에서 유연하면서도 모호한 태도를 어떻게 잘 취할 것인지 더 면밀하게 고민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고 미국의 경제력은 중국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 힘의 한계는 명확하다. 한반도 문제 등 미국과 풀어야만 하는 문제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최근 드러난 미국의 행보, 더 깊이 들어가면 1980년대 이후 계속된 세계질서의 변화와 중국의 달라진 위상을 보며 한국도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지, 인식론적인 검토까지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미국은 한국에 ‘절대적인 존재’였다. 한쪽에서는 반미를 외치고 한쪽에서는 기승전 한미동맹을 외쳤지만 어느 쪽이 됐든 국제관계의 핵심에는 오로지 미국만 존재했다. 그래서 아프간과 이라크에 군대를 보냈고, 사드를 받아들였고, 곧 물러날 것으로 예상되던 트럼프의 요구에 맞춰 이란 앞바다 호르무즈에까지 파병했다. 남북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했고, 방위비 협상에서 우리가 낼 비용을 깎기 위해서라는 디테일한 이유를 들기도 했다. 이유는 그때그때 달랐지만 바탕에 깔린 것은 미국의 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이 대테러전 파병을 요구할 때 한국에서도 거센 반대 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이른바 진보정권 관리들이 보인 인식수준은 ‘미국이 요구한다’ ‘고로 우리는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에게도 결국은 이득이 된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한미관계에 대한 인식은 이런 3단논법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친미냐 반미냐,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구분만 존재한다. 한때 자주성을 외쳤던 사람들이 정권을 운영하게 되면 ‘들어와 보니 역시 미국을 따를 수밖에 없더라’는 태도로 바뀌는 경우도 많이 봐왔다. 미국은 강하고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나라이지만, 그럼에도 ‘강하고 중요한 나라들’ 중의 하나일뿐이다. 바이든의 ‘동맹 묶기’ 속에서 한국의 다음 정부에는 더욱 더 현명한 처신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동남아시아,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신남방정책도 외교의 지평을 넓히는 그런 접근법 중의 하나였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방향이다.

 


미국은 대테러전 시대를 끝내고 동맹 관리에 나섰다. 바이든 정부의 관심이 한반도 쪽에 더 많이 쏠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선언은 멋졌지만 평화 이니셔티브는 새로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의 제안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려면 우리 스스로 평화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무기체계를 증강하고 군사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해도, 평화와 종전을 이야기하는 한국의 태도는 일관되지 않았다. 미국이 요구하면 인도적 요구와 상관없는 지역에까지 파병하고 국제관계에서 자율성을 스스로 갉아먹는 식으로는 한국의 평화론이 먹혀들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중국식 표현을 빌면 한국 역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행위자’라는 것이다. BTS 붐과 K방역, 미라클 작전의 성공에서 ‘오징어게임’까지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일들이 이어지면서 근래 국민의 자긍심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미국이든 어느 나라든 외국은 외국일뿐이다. 의존, 추종, 미움 같은 감정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실리를 따져 행동하는 동시에, 한국의 국제적 책무에 대한 인식과 행동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 <2022 한국의 논점>(2021-12-15)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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