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구정은의 '현실지구'

[구정은의 '현실지구'] 아프리카, 난민, 르완다.

딸기21 2022. 6. 18.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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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남서부에 위치한 니융궤 열대우림. 서쪽으로는 키부 호수와 콩고민주공화국, 남쪽으로는 부룬디 국경과 접한다. 아프리카 대륙 복판에서 가장 잘 보존된 열대우림 중 하나다. 2004년부터 이 일대 1000여㎢ 숲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침팬지와 원숭이 등 12종의 영장류를 비롯해 숱한 동물들이 살아가는 숲을 가로지르는 능선은 나일강과 콩고강 사이의 분수령을 형성한다. 키부 호수를 따라 북쪽으로 옮겨가면 비룽가, 멸종위기종인 고릴라들이 사는 곳이다. 아프리카 하면 흔히 떠올리는 밀림이 바로 이런 곳들이다.

유럽에도 ‘정글’이 있다. 영국과 마주보는 프랑스 도시 칼레. 영국으로 건너가려는 이주민, 난민들이 이곳에 모여든다. 칼레의 밀림이 형성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해협 아래 터널을 이용해, 혹은 페리선을 타고 영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자 프랑스 정부의 요청을 받아 적십자사가 칼레의 상가트라는 곳에 임시 캠프를 만들었다. 이를 시작으로 천막촌이 여기저기 솟아났고 주민들과 충돌이 벌어졌다.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로터널이 이주민들 때문에 폐쇄된 적도 있었다. 인신매매조직에 돈을 주고 냉동컨테이너에 숨어 도버를 건너다 숨진 사람들, 보트를 타고 영국에 다다랐다가 해안경비대에 붙잡힌 사람들...프랑스 정부는 천막촌이 커질 때마다 강제철거에 나서지만 곧 다른 곳에 새 정글이 생겨난다.

 

14일 영국 남서쪽 윌트셔주 보스콤비 다운 공군기지 주변에서 르완다로 가는 난민을 실은 군용기로 추정되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해협 건너 도버는 정글을 거쳐, 혹은 더 멀리 동유럽을 지나는 여러 경로를 타고 몰려든 이주민들의 1차 기착지다. 주로 아프리카, 중동 출신들이 많지만 지금은 베트남 등 아시아인들의 영국행도 늘고 있다. 곳곳에 위험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국제 밀입국 루트는 말 못할 인권침해의 현장이자 불법적인 ‘인간 거래 산업’이 되고 있다. 난민과 망명신청자와 불법이주자, 혹은 인신매매 피해자. 이런 구분들 사이에 사실 명확한 경계선은 없다.

지난 4월 도버를 방문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불법 이주자를 르완다로 보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서 6500km 떨어진 르완다에 1억2천만 파운드, 약 2000억원을 주고 이주자들을 넘기겠다는 것이었다. 5년간 시범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르완다 이송 프로그램'의 골자는 영국에 들어온 이들을 르완다로 보내 난민 심사를 받게 하는 것이다. 르완다에서 영구적인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거기 계속 살거나, 그렇지 않다면 다른 나라로 재차 망명을 신청하거나 둘 중 하나다. 영국 정부는 올해 들어 소형 보트나 트럭에 숨는 식의 "불법적이고 위험한 방법"으로 영국에 도착한 사람들이 이송 대상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영국에서 르완다로 떠나는 비행편은 있지만 영국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은 없다.

 

영국의 내무장관 프리티 파텔(왼쪽)이 4월 14일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서 르완다의 외교장관 빈센트 비루타와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르완다는 영국의 불법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1억2천만 파운드를 지원받는 파트너십 협약을 영국과 맺었다. 키갈리/EPA 연합뉴스


영국 정부는 르완다에 1억2천만 파운드를 선불로 줄 것이고, 더 많은 이들을 '처리'하면 추가로 더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미 지금도 난민 심사와 불법 이주자 관리에 그 이상의 돈을 쓰고 있다면서 '예산 절감'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계획에 대해 정부 안에서조차 “이주자들을 막는 효과가 거의 없을 것”이라며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해협을 건너 영국에 도착한 불법 이주민은 2만8500명. 올들어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존슨 정부가 ‘르완다 이송’ 계획을 발표한 뒤인 4월 18일부터 이달 5일까지 조각배를 타고 도버에 도착한 사람이 약 3600명이다.

‘불법’이든 아니든, 이주자들은 자기가 태어나 자란 나라를 떠나 ‘더 나은 삶’을 찾아나선 사람들이다. 영국에서 더 나은 삶을 찾고자 했던 이들이 느닷없이 르완다로 실려가 그곳에서 원하던 삶을 찾을 수 있을지와는 별개로, 돈을 주고 이주자들을 빈국에 떠넘기는 행위 자체가 부도덕한 일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영국 법원은 정부를 편들어줬지만 유럽인권재판소는 14일 망명 신청자 7명을 태우고 르완다로 향하려던 영국 수송기의 이륙을 ‘임시조치’로 중단시켰다.

 


영국 정부는 반발했다. 야당인 노동당은 정부가 르완다로 보내려 한 사람들 중에 고문과 인신매매 피해자들도 있다면서 이 계획을 "수치스러운 정책"이라 불렀지만 존슨 정부는 계속 추진할 것이라 말한다. 이 계획을 주도한 프리티 파텔 내무부 장관은 그 자신 우간다-인도계 부모를 둔 이주민 가정 출신이다. 파텔은 르완다로 망명 신청자들을 보내는 것이 "옳은 일"이며 "단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슨 정부는 이번 계획이 성공하면 르완다로 보내는 사람 수를 수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영국 내에서의 논란은 ‘르완다가 과연 난민들을 보낼만한 곳이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에서도 이 사건을 둘러싼 보도는 ‘아프리카에 이주자들 보낸다는 영국’이라는 식으로 ‘가난한 아프리카 저개발국’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우려에는 분명 근거가 있다.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한 르완다는 우간다, 탄자니아,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에 둘러싸인 내륙국가다. 한때 ‘피그미’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여전히 숲속에서 살아가는 소수의 트와족을 빼면 인구 대부분 후투족 아니면 투치족이다. 1990년대 후투족의 투치족 학살, 이른바 ‘제노사이드(종족말살)’는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수치만 보면 르완다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인구 1320만명 가운데 40% 가까이는 빈곤선 아래에서 산다. 성인 인구 30%는 여전히 글을 못 읽는다.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의 야경. www.roughguides.com/


하지만 한 나라를 수치로 재단하기는 쉽지 않다. 1인당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100달러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2000년대부터 매년 6~8% 경제가 자라고 있으며 부패도 적은 편이다. 유엔개발계획(UNDP)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겨우 33.4세에 불과했던 평균기대수명은 2019년 69세로 늘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성 평등 순위’에서 르완다는 매년 북유럽 국가들에 이어 세계 5~7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국회에 여성 의원이 남성보다 많고, 법률적 제도적 평등 수준이 매우 높다. 1990년대 내전이 낳은 상처와 용감히 맞대면해, 진상규명과 처벌과 화해의 힘겨운 절차를 밟아나간 나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국제기구들 평가에서 이 나라는 효율적인 행정과 함께 발전의 기틀을 다지고 있는 나라로 칭찬받는다.

[경향신문] ‘종족 말살’ 제노사이드 겪은 르완다···‘여성의 지옥’서 성평등 국가로

지난 4월 BBC는 르완다 르포에서 "일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나라, 녹색이 깔려 있고 깔끔한 나라,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수도 키갈리"를 언급했다. "모두가 세금을 내려 하고, 서비스는 믿을 만하며 도로는 안전하다." 정부는 정보통신 인프라 깔기에 열심이고,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60%가 넘는다. 르완다를 여행했거나 체류한 한국인들도 “르완다는 주변 국가들과는 다르다”며 입을 모은다. 서구인들은 이 나라를 ‘아프리카의 스위스’라 부르기도 한다.

 

동아프리카의 '빅맨', 카가메. www.africanleadershipmagazine.co.uk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공포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도 있다. “술집에서 정치적 토론을 하면 누군가가 입을 다물게 할 것이다. 말 한 번 잘못했다가는 당국에 보고될 가능성이 높다.” 내전을 진압한 폴 카가메 현 대통령이 2000년부터 장기집권하면서 인권단체와 야당을 탄압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카가메는 효율적인 주민 동원-감시체제를 만들었고, 르완다의 빛과 그늘은 모두 그 체제와 연결돼 있다. BBC가 전한 바로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우무간다’라는 이름의 공동 청소를 한다. 쓰레기는 사라지고 도로는 깨끗해진다. “강제로 시키는 사람은 없지만 당국의 지침에 협조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것임을 모두가 안다.” 망명 신청자들을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제3국으로 보내는 것은 난민에 관한 국제규약 위반이다. 하지만 이주자들이 넘쳐나는 게 싫다며 브렉시트까지 결정한 영국에서, 여론은 존슨 정부 편에 서 있을 수도 있다.

유럽국들은 마치 가난한 나라에서 떼밀려들어온 이들을 자기네가 다 끌어안는 것처럼 말하지만 전 세계 난민의 85%는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에 머물고 있다. 분쟁을 겪는 나라들은 대체로 저개발 지역에 있고, 분란을 피해서 혹은 먹고 살 길을 찾아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맨 먼저 도착하는 곳은 비슷하게 가난한 이웃나라다. 르완다에도 난민이 많다. 1990년대 내전 때 르완다를 떠난 이들은 유엔난민기구(UNHCR)의 규정에 따라 각국에서 2013년부터 난민 지위가 정지된 반면에 르완다는 지금도 주변 부룬디나 콩고민주공화국 등 이웃나라들로부터 온 난민 15만명 이상을 수용하고 있다.

(폴 카가메와 르완다에 대해 혹시라도 더 알고 싶으시다면 -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

영국 정부가 계획대로 이주자와 난민들을 르완다에 떠넘길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영국의 ‘르완다 이송’ 계획은 서구의 이율배반을 여러 측면에서 부각시켰다. 영국의 생각 있는 이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르완다의 인권상황이 아니라 영국 정부당국의 인권마인드인지도 모른다. 당초 비행기에 실려 르완다로 떠날 예정이던 몇몇 사람들은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한 남성은 기절한 뒤 휠체어에 실려 비행기에 올려졌고, 수갑을 찼거나 밴의 좌석에 손이 묶인 채 공항에 옮겨진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영국 난민정책과 인권 수준의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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