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유럽이 아시아로 온다

딸기21 2006. 3. 16. 13:32
728x90

식민주의가 끝난 이래 아시아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갖지 못했던 유럽이 다시 아시아로 돌아오고 있다. `제2의 아시아 진출'에 성공한 유럽의 무기는 유로화와 `유러피언 스탠더드(유럽식 기준)'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16일 아시아와 유럽이 경제적으로 최근 급속 가까워지고 있다면서 단일경제권으로 통합된 유럽이 아시아에서 다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로화가 몰려온다

네덜란드가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를 떠나고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전쟁에서 패배해 베트남에서 물러난 지 60여년. 마지막 남은 유럽의 흔적이었던 홍콩과 마카오도 중국으로 환수됨으로써 유럽은 아시아에서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몇년새 유럽연합 25개국이 유로라는 단일 통화를 도입하면서 달러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던 아시아 국가들도 유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유럽의 아시아 진출이 됐건 아시아의 유럽 진출이 됐건, 두 경제권이 급속히 가까워진 것은 두드러진 현상이다. IHT는 "근대 유럽 식민제국들이 총독을 앞세워 왔다면, 지금 아시아에 다가온 유럽은 통일되고 평화로운 테크노크라트들"이라고 양측의 관계를 평가했다.

아시아 시장에서 유로화 채권거래가 크게 늘어난 것은 단적인 예. 중국의 역외 사채 20%는 유로 표시 채권이다. 홍콩에 있는 금융연구소 `아시아 본드마켓포럼'의 마셜 메이스는 "미국에만 의존했던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유럽을 경제적 균형추로 여기는 경향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각국 외환보유고에서 유로 비중이 늘어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도이체방크의 아시아경제 전문가 마이클 스펜서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이 갖고 있는 총 외환보유고의 25%가 유로화"라고 전했다.

유럽의 기준은 아시아의 기준

태국 방콕 교외의 한 물류창고. 스위스 제네바에 본사를 둔 SGS사 기술자들이 매일 1000가지가 넘는 물건을 이곳에서 검사한다. 식료품, 완구, 의류 등 품목은 다양하다. 흰 가운을 입은 기술자들은 현지 관리인과 동행하며 태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이 EU 수입기준을 충족시키는지를 점검한다. 유럽으로 수출을 하기 위해 태국의 공장들은 전자부품 생산 공장에서 유해물질 사용을 대폭 줄이거나 금지했다. 완구의 안전기준도 강화했다. SGS의 태국인 매니저 유드야나 페치마니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은 갈수록 많이 유럽의 생산기준을 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에는 여러 나라가 있지만 대개 EU의 기준이 공통으로 적용된다. 아시아 국가들 입장에서는 내수용이건 수출용이건 EU식 기준으로 `통일'해놓는 것이 경제적일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아시아에 진출해 있는 미국 기업들이 유럽 기준을 따라야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방콕에 있는 제너럴 모터스(GM) 공장에서는 매일 승용차와 픽업트럭 400여대가 생산된다. 이 차들은 미국 브랜드를 달고 아시아에서 생산돼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 수출되지만 배기가스 방출량은 EU 기준에 맞춰진다. GM 동남아 지사의 존 톰슨은 "EU 기준이 통용되는 나라가 늘면서 미국 기업들은 두 가지 스탠더드를 설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환경이나 산업안전 부문에서는 미국보다 훨씬 엄격한 유럽 기준이 국제적인 모범으로 여겨지면서 `아시안 스탠더드'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국내총생산(GDP) 총액 규모는 각기 13조 달러 정도로 비슷하지만, 인구에서는 유럽이 4억5000만명으로 미국(3억명)보다 크다. 아시아 국가들의 최대 수출상대국은 여전히 미국이지만 유럽으로의 수출도 눈에 띄게 늘었다. 퍼시픽 얼라이언스 그룹의 호르스트 가이크는 "미국으로 수출할 땐 소송을 겁내고, 유럽으로 수출할 땐 규제를 겁내는 것이 수출회사들"이라며 "유럽 기준이 훨씬 제도적, 구조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