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한국언론진흥재단] 국제뉴스, 무엇을 보고 어떻게 쓸 것인가

딸기21 2023. 6. 29.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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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언론재단에서 '국제 보도 가이드북'을 만든다고 해서 기고했던 내용입니다. 유튜브 영상으로도 찍었어요.
이 영상과 글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거지만 뉴스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어떤 기사에 어떤 문제가 있나, 어떤 것이 좋은 보도인가를 판단할 때 참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국제뉴스의 중요성이 저평가되어 있다’, ‘한국 언론은 국제뉴스를 소홀히 다룬다는 비판들을 많이 합니다. 뉴스의 독자(시청자)의 시각에서 보면 어떨까요.

 

국제뉴스를 접할 때는 누구든 거리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아무래도 남의 나라 이야기인 탓이 크겠지요.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갈등, 유럽과 러시아의 대립, 아시아 패권 다툼 등 너무 커다란 이야기들이 주로 오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와 관련 없는, 먼 세상 큰 이야기들로 느껴지거든요. 시민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그에 맞춰 언론의 관심이 덜한 것은, 국제보도의 그런 속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국제뉴스를 보도할 때, 국가 혹은 그 국가의 정치 지도자를 주어로 놓고 지정학적 분석을 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조금만 국제이슈에 익숙해진 기자라면 지정학적 분석을 하기는 매우 쉽습니다.러시아는 옛 소련의 영광을 되살리고 유라시아에서 패권을 확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미국은 나토를 규합해 러시아에 맞서고 있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포섭하려 한다’, ‘중동 국가들을 끌어들여 중-러 진영을 견제하려 한다이런 식으로 분석을 하다 보면 폼이 납니다. 하지만 그런 분석은 쓰기 쉬운 만큼이나 틀리기 쉽고, 몇 년 아니 몇 달만 지나도 의미가 없어질 때가 많습니다.

 

지정학과 게임 중계 넘어서기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 예를 들면 젠더 문제, 고령화와 세대 갈등, 정치적 양극화, 지역의 소멸, 갈수록 커지는 빈부격차와 민주주의의 위기 같은 것들은 모두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1970년대부터 가시화됐고 1980년대 신자유주의워싱턴 컨센서스의 시대를 거치며 굳어진 저성장-격차 시대와 이어져 있기도 하고요. 한국에서는 젠더 갈등이 유독 심한 것 같지만 ‘#미투는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지요. 주식시장이나 금융이나 경제활동의 동조화뿐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을 통해서도 세계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지정학도 중요하지만 모든 것이 이어져서 돌아가는 세계의 변화를 포착하는 게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팬데믹과 건강하게 살 권리, 기술과 일자리, 고령화와 생명과학 윤리, 기후와 에너지 등등 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문제들이 어떻게 우리 삶을 바꾸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 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 개인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로 주체의 차원을 확대해가는 분석들이 중요하겠지요. 눈 감고도 썰을 풀 수 있는 지정학적 분석보다, 실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들로 주제의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지명이 아닌 테마로 기사의 주제를 바꾸면 쓸 거리도 많고 읽는 이들도 많아집니다.

 

코로나19는 세계를 휩쓴 전염병이었지만 나라마다 정부의 대응과 사회에 미친 파장은 달랐습니다. 기후변화는 지구 전체의 문제이지만 유럽의 폭염, 미국의 허리케인, 사하라 사막의 확장, 파키스탄의 홍수로 발현됩니다. 지역마다 미치는 영향과 대응이 다릅니다. 개별적인 사건들 속에서 흐름을 엮고, 공통성 속에서 차이점(디테일)을 발굴해야 합니다. 글로벌한 것이 어떻게 로컬하게 발현되느냐를 보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 반대도 성립합니다. 지역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 뒤의 글로벌한 맥락을 살피는 것이죠.

 

VOX MEDIA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뒤 인도네시아에서는 식용유값이 폭등해서 정부가 수출을 제한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식용유의 주된 공급국인데 제재와 전쟁으로 그쪽의 유채꽃씨유과 해바라기유 수출이 줄어드니, 팜유 수출대국 인도네시아에서까지 식용유 파동이 일어난 겁니다.

 

시리아인들은 10년 넘게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독재정권에 맞선 싸움을 벌였으나 아사드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반정부군을 진압하고 권력을 연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러시아가 일으킨 동유럽의 전쟁 때문에 시리아인들의 고통이 추가됐습니다. 가뭄에 재정난이 겹쳐, 러시아 차관을 들여다 러시아 밀을 수입하기로 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와의 협상이 중단된 겁니다. 오랜 내전에 시달린 시리아 사람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숨겨진 피해자가 됐습니다. 국제정치 평론가처럼 ‘어느 나라가 어쨌네, 바이든이 어쨌네, 시진핑이 어떻게 했네’를 중계하기보다는 이리저리 연결된 세상의 나비효과를 들여다보는 게 좋은 보도라고 생각합니다.

 

기자의 준비상태가 최고의 기획안

 

아래는 바다, 위로는 넘을 수 없는 국경으로 가로막힌 한국은 어찌 보면 섬보다도 더 고립된 나라였습니다. 한국인들의 인식은 그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유지하고 있고, 여행, 비즈니스, 유학 등을 통해 외국과의 접점도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외국 보도를 번역해 옮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모두가 압니다. 그런데 정작 기자들은 어떨까요.

 

한국의 국제뉴스 보도도 지난 20년 동안 질적, 양적으로 크게 진화했습니다. 현지 취재를 다녀오는 경우도 많고, 영어 잘하는 기자들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맥락 없는 단편적인 보도나 전문성의 문제, 영어 이외의 언어의 경우에는 언어장벽 문제 같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blogs.microsoft.com

 

국제뉴스를 전할 때 가장 좋은 것은 물론 현장 취재입니다. ‘회사에서 보내주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기자들도 있고, ‘젊은 기자들이 도통 현장에 가려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하는 데스크들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예산의 제약 같은 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자 하는 기자의 의지입니다.

 

분란 등의 사건이 발생할 경우 곧바로 들어가야 하지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국가가 있다면, 미리 비자부터 신청해 놓으세요. 취재하고 싶은 지역을 어떤 식으로 취재할 것인지, 어떻게 기사를 쓸 것인지 마음속으로 계속 시뮬레이션 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데스크를 설득하세요. 몇 해 전 한 신문사의 기자가 찾아왔습니다. 회사의 규모와 분야를 얘기하면서 외국으로 출장을 다니기에는 회사 분위기상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더군요. 미리 비자를 신청해 놓은 뒤 데스크를 설득했던 저의 경험을 얘기해줬는데, 당시 그 기자의 반응은 그럴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쪽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꼭 비자가 아니더라도, 기자의 ‘준비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취재 계획안이 됩니다.

 

긴급한 출장이 아닌 기획취재의 기회는 찾아보면 많습니다. 취재하고 싶은 주제를 잡고 지역별 사례를 모으고 카테고리화하고, 하나로 이어 기획으로 만드는 연습을 많이 하십시오. 예산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을 비롯해, 주제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매개자의 정체부터 확인하자

 

현장에 직접 가서 볼 수 없다면, 자료를 보고 분석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뉴스든 어떤 분야의 뉴스가 됐든, 미디어는 말 그대로 중개자이기에 무언가를 인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격자의 증언, 보도자료, 판결문 등 인용할 거리들을 찾는 것이 곧 취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소스의 신빙성과 가치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국제보도에서 외국 언론에 실린 내용을 인용하게 되면 한번 중개된 것을 다시 중개하기 때문에 이중 중개라는 문제가 더 생깁니다.

 

20208, 미국에서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M)’ 시위가 거세게 벌어지던 시기에 몇몇 매체에 성경을 불태우는 시위대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미국 우파 언론들은 일부 시위자들이 성경을 불태우는 영상을 반복해서 내보냈고 트럼프 당시 대통령도 소셜미디어 등에서 이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공격함으로써, 백인 우파들의 반시위 감정을 자극하려는 것이었지요.

 

BLM 시위 때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글. ‘성경을 불태우는 시위대’를 비난한 트위터 글을 리트윗했다

 

문제의 영상을 처음 보도한 것은 럽틀리TV라는 매체였습니다. ‘성경 태우기 동영상처럼 뉴스 라이브 영상을 찍고 편집해 대형 미디어들에 팔거나 개인 유료회원들에게 서비스하는 회사입니다. 미국 CBS, 일본 NHK, 알자지라 등 세계 1,400여개 매체에 동영상을 공급하고 있다고 회사 측은 밝히고 있습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우주인 유영, 이란 핵협상 당시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의 ‘P5+1’ 대화 영상 등등 눈길을 끈 영상보도들을 적잖게 했습니다. 20194월에는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대사관에서 위키리크스창립자 줄리안 어산지가 체포될 때 무려 엿새 동안 현장을 지키며 생중계를 했습니다.

 

독일 베를린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럽틀리는 실제론 러시아 미디어 RT의 동영상 부문을 모체로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최고경영자는 RT의 영어뉴스 프로듀서 출신이었고요. 사실상 럽틀리의 모회사인 RT는 러시아 정부 돈으로 운영되는 국영 TV네트워크입니다. 2005러시아투데이로 창립해 2009년 이름을 바꾼 RT는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국내외 정책을 선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브랜치 격인 럽틀리는 스페인어, 아랍어 채널을 만들며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스탭들의 엑소더스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 회사가 BLM 시위 때 내보낸 동영상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주장한 러시아의 가짜뉴스 퍼뜨리기와 여론조작을 한 사례입니다.

 

문제의 동영상을 처음 공개한 럽틀리TV의 웹사이트(https://www.ruptly.tv/en)

 

코로나19 음모론을 퍼뜨린 중국의 감염병 전문가와 미국 우파의 결탁, 그걸 받아쓴 한국 언론 등 숱한 사례는 생략하겠습니다. 낯선 이름의 매체가 있을 때, 혹은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지역의 뉴스를 전달할 때는 먼저 내 기사에 인용하려는 매개자의 정체부터 확인하세요. 위키피디아만 찾아봐도 웬만한 외국 미디어/기관의 성향과 비판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북마크에서 뉴욕타임스를 지우자

 

매개자를 생각할 때, 외국의 언론들만 떠올리지 마십시오. 외국 미디어를 보고 발생 사실을 포착할 수는 있어도, 그 사건을 머릿속으로 재구성해보고 분석과 기사 작성에 필요한 팩트들을 모으는 것은 기자가 할 일입니다. 수많은 자료를 동원해야 합니다. 어떤 사건 혹은 주제를 쓰겠다고 정했으면 키워드를 넣고 검색해서 자료를 찾으세요.

 

1,000글자를 쓰는 데에 필요한 소스는 몇 개일까요? 물론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답은 확실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 뉴스를 전하면서 BBC만 보고 쓰거나 가디언만 보고 쓰는 것은 절대로 안 되는 일이죠. 경우에 따라서 특정 매체만이 보도한 사실, 혹은 그 매체가 보도했다는 자체가 뉴스가 되는 일이 있기는 합니다. 언론 보도가 자유롭지 않은 국가의 뉴스를 다룰 때에는 서방 언론의 기사가 도움이 될 때도 종종 있고요. 하지만 더 이상의 노력이 없이 서방 언론을 인용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기본 중의 기본인데, 지켜지지 않는 기사가 너무 많습니다. 카자흐스탄 소식을 전하면서 현지 언론 프라우다라고 쓴 것도 봤는데, 프라우다가 어느 나라 것인지를 몰랐거나 현지 언론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몰랐거나 둘 중 하나이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의 나라 언론이 아닌 더 원천적인 자료를 보는 일입니다. 외국 언론 말고도 찾아보면 너무나 많은 자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자·사망자 국가별 통계를 잘 잡아준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데이터베이스나 월드오미터(Worldometer) 사이트를 생각해보세요. 세계은행 자료들만 뒤져도 어지간한 국가별·지역별 경제 통계는 다 나옵니다. 일렉션가이드(IFES Election Guide)에는 각국의 각종 선거일정이 뜨고, 미국 지질조사국 사이트에는 실시간 지진정보가 다 나옵니다. 컨테이너선이나 대형 유조선 같은 배들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는 트래커 사이트들도 많이 있습니다.

 

백악관도, 각국 정상들도, 모두 소셜미디어나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들의 활동을 공개합니다. 유엔 산하 기구들의 자료는 대부분 웹사이트에 공개돼 있고, 심지어 유엔뉴스라는 자체 미디어로 충실히 알맹이를 뽑아 소개해주기까지 합니다. 그런 자료들에 담긴 내용을 전하면서 외국 언론을 인용하는 것은 좀 부끄러운 일입니다.

 

5분의 수고가 다른 콘텐츠를 만든다

 

중국은 미국의 러시아 제재에 협력하지 않고 있다라는 기사를 예로 들어볼게요. 먼저 질문을 던져 봅니다. 중국은 러시아에 맞선 경제제재 전선의 걸림돌일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의 공식 입장은 중립이죠. 필요에 따라 러시아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지만 실제로는 거리를 두고, 그러면서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채 교역은 이어왔습니다.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 1,000여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러시아와의 거래를 축소 혹은 중단했는지 조사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한 중국 민간 대기업은 없었지만 지난 7월 세계 최대 드론회사 DJI가 처음으로 러시아로의 수출을 끊었습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중국은행, 중국공상은행, 브릭스개발은행 등 국영 혹은 국가와 관련된 은행들은 러시아와의 거래를 그 전에 중단했습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샤오미 같은 회사들은 계속 사업을 하고 있지만 사업을 확장하려던 계획을 보류하거나 조용히 축소하는 민간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중국의 대기업들에게 러시아와의 거래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위험요인이 됐음을 보여줍니다.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기업들을 집계하는 미국 예일대 웹사이트 (https://www.yalerussianbusinessretreat.com/)

 

물론 여전히 중국서 영업하는 기업들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추이를 보고 확인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추이를 직접 확인해보면 ‘뇌피셜’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습니다.

 

미군이 2021 아프간에서 철수했습니다. ‘아프간은 수니파이고 이란은 시아파이니, 이란이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적극 협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해 힘의 공백이 생겼으니 이란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두 가지 시나리오들을 여러 기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둘 다 맞는 이야기인 동시에, 둘 다 피상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탈레반 재집권 이전의 이란-아프간 교역량, 이란이 아프간에 내주는 원유의 양, 그것이 이란의 전체 석유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아프간의 전체 석유 수입량에서 이란산이 차지하는 비중, 탈레반 재집권 뒤 이란이 취한 조치, 그에 대한 탈레반 정권의 반응 등을 찾아보면 두 나라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포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쓴 기사가 자료를 스스로 찾아보지 않은 채 외국 언론에 나온 것을 보고 쓰는 것과 같은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수고가 아깝게 느껴지고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통계자료들을 찾다 보면 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알 수 있게 되고, 새로운 내용을 분석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의 항목마다 찾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기껏해야 5분입니다. 기사 한 꼭지를 쓰기 위해 찾아야 할 것이 10개가 넘는다면 최소 50분은 단순한 수치와 용어와 팩트를 확인하는 데에 들어가는 셈이고, 꽤나 귀찮은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작업들을 거치면 예상치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됩니다.

 

코로나19 록다운을 실시한 나라는 몇 군데나 될까. 그 때문에 발이 묶인 사람들이 지구 전체에서 몇 명이나 될까’. 열심히 합산했는데 곧바로 외국 통신에 떠서 다소 허망했던 경험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직접 통계를 보고 확인하고 덧셈 뺄셈을 하는 과정에서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아이디어를 추가로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로 궁금한 것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제재 리스트에 올린 푸틴의 측근 중에 예브게니 프리고진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식당과 카지노 등을 운영하면서 크렘린 만찬을 주최해 AP통신이 푸틴의 셰프라고 불렀던 사람입니다. ‘콩코드 케이터링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러시아 정부 기관들의 식당을 운영해왔지요.

 

유럽과 미국 선거 당시 가짜뉴스를 퍼뜨리던 러시아 댓글알바들을 운용한 곳은 인터넷여론연구소라는 정체불명의 기관이었습니다. 러시아는 시리아 독재정권을 지원했는데, 군대를 직접 투입할 수 없으니 바그너라는 민간군사기업을 이용했습니다.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친러시아 민병대와 정부군, 그리고 반러시아 무장조직원들이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친러시아 민병대가 러시아 용병이며 그 중 상당수가 바그너 소속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론조작과 용병회사,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인터넷여론연구소와 바그너를 뒤에서 운영한 사람이 바로 프리고진이었습니다.

 

손가락 깊이만큼만 조사해 봐도 여러 이슈들이 어딘가에서 뒤섞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잘 풀어내는 것이 곧 맥락을 읽는 것이겠지요. 분산되어 있는 정보들의 접점을 찾아 연결하면 조금이나마 더 심층적이고 입체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숨 가쁘게 굴러가는 세상,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일이지만 바쁘게 뉴스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무엇을알아봐야 하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콘텐츠를 기계적으로 생산하게 되는 거예요. 그럴 때,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숨을 돌리고 ‘내가 정말로 궁금한 것’을 생각해보세요.

 

칠레 새 헌법안이 발표된 안토파가스타의 옛 은광 사진

 

20225월 칠레 제헌의회 의장이 새 헌법초안을 공개했습니다. 발표한 장소가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폐허였습니다. 사진을 보면 마치 고대 유적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안토파가스타라는 폐허가 된 건조물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 은광에 달려 있던 제련소로, 원주민들이 땅을 빼앗기고 노동에 동원됐던 곳입니다. 사진을 보면서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나아가 지명을 검색해 보면 지역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칠레의 새 헌법안을 만든 사람들이 어떤 역사, 어떤 사람들의 권리를 되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도요. 조금만 더 파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고, 많은 것들의 의미가 깊어지게 됩니다.

 

드러난 것의 이전과 이후를 보자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테러가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뿐 아니라 백인 극우주의자들의 테러, 총기 난사 같은 사건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테러는 좌절한 개인들이 분노를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분출하는 것이죠. 그들이 내세운 것은 때로는 종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인종주의가 되기도 합니다. 테러범들은 공격을 일삼는 자들이 속한 사회 저변에 횡행하는 논리를 명분으로 삼곤 합니다. 각기 다른 듯한 테러공격의 밑바닥에는 사회적 좌절감이 깔려 있습니다.

 

영국 브렉시트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 집권 등 포퓰리즘이 세계를 횡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세계는 갈수록 흉악하게 변해가고 있는 것일까요?

 

테러가 주춤해지더니 포퓰리즘이 판을 치게 된 과정을 들여다보면 언론에 많이 나오는 비관적인 시나리오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흐름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포퓰리즘은 좌절한 유권자들이 이민자들이나 사회적 약자를 향해 왜곡된 분노를 뿜어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테러 같은 극단적인 방식이 아니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분노를 드러내는 방식이 유권자로서의 정치활동으로 순화됐다고 볼 수도 있는 거니까요. 정치사회적 분노의 표출방식의 측면에서 지난 20년의 역사를 보면 ‘세계가 험악해졌다’는 막연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측면을 볼 수 있습니다.

 

궁금증을 버릇으로 만들자

 

파리협약 체제에서 중국은 걸림돌일까요, 지구의 우군일까요. 진영논리인 마냥 미세먼지든 기후변화든 중국 탓을 하는 기사들이 있지요. 그런데 세계의 숲 면적이 2000년대 이후 계속 늘고 있는 것이 모두 중국에서 숲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기후대응과 관련된 중국의 입장을 보고 싶은데, 대체 중국의 기후대응은 누가 이끌고 있을까요? 천지닝과 셰전화 같은 사람들의 행보를 눈여겨보면 도움이 됩니다. 모더나라는 회사가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었다는데 대체 어떤 회사일까요. 백신이나 신약 개발 실적이 별로 없는 회사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 걸까요. 세계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회사들은 어디어디일까요.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 3~4상 보고내역을 통해 어느 나라 어느 회사들인지 살피면 누가 이 경쟁에서 앞서나가는지 알 수 있겠지요.

 

www.lifewire.com

 

자꾸 검색해봐라, 파봐라, 더 들여다봐라 얘기하게 되지만 일에 치이다 보면 뭘 검색하고 뭘 파보고 뭘 들여다볼지조차 감이 오지 않는 상황이 돼버립니다. 궁금증을 버릇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모르는 지명, 인명이 나오면 구글 검색부터 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속에서 ‘역사’를 찾아보십시오. 미국과 중국이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솔로몬제도를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쓴다는데, 대체 왜 나라 이름이 솔로몬인지 찾아보면 연원이 나오고 역사가 나옵니다. 황금이 묻힌 줄 알고 솔로몬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실상 지금은 빈국이라는 역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가난한 나라를 놓고 힘싸움하는 미국과 중국을 솔로몬제도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현지 언론들을 뒤져보면, 강대국들 사이에 낀 섬나라의 애환과 내부 갈등을 볼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이 러시아의 공격으로 위험하다는데 대체 어떤 곳일까요. 체르노빌 참사도 있었는데 우크라이나는 왜 핵발전에 여전히 의존할까요. 자포리자 원전을 들여다보면 옛 소련 핵개발의 주역이던 우크라이나의 과학자들, 과거의 사고와 그로 인해 벌어진 두 나라 사이의 앙금을 볼 수 있습니다. 체르노빌을 넘어서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사정, 독립 뒤의 역학관계, 러시아와의 관계 등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나만의 DB와 리스트 만들기

 

외국어로 된 자료를 보는 것은 국제보도에서 기본적으로 넘어야 할 장벽입니다. 특히 영어가 아닌 제3의 언어로 된 자료들을 찾고 읽는 게 큰일입니다. 다행히 요새는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 같은 도구들이 있잖아요. 번거로운 것을 피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상황 분석은 물론이고 자료 검색과 기사 내용에 대한 확인까지, 상시적으로 도움말을 들을 수 있는 국내 전문가 풀을 만들어두십시오. 현지에 소식통을 두고 있는 국내 전문가들은 현지 분위기와 정서를 전해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취재원입니다. 큰 사건이 터져서 급히 현지에 가야 할 때, 출장지에서 도움을 줄 가이드나 취재원을 섭외해야 할 때에도 평소에 국내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두면 당연히 큰 도움이 됩니다.

 

catsy.com

 

국제보도라고 해서 국내 취재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국제기구, 한국 주재 대사관들이라는 취재원이 있으니까요. 어떤 나라의 사정이 궁금하면 한국에 와 있는 그 나라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나아가 기자 개개인이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기본은 다름 아닌 내 기사입니다. 네이버에서 내 이름 검색하지 말고, 내 기사들을 블로그든 구글 문서든 온라인으로 언제든 찾아볼 수 있도록 정리해두세요. 매일매일 퍼다 놓으려면 귀찮기는 하지만, 기사를 쓰는 속도를 빨리 하는 데에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됩니다. 데이터를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들의 북마크, 지역별 전문가들의 리스트, 나중에 필요할지 모를 자료, 분야별 책 리스트, 나중에 쓰고 싶은 기획기사 리스트 등 내 랩톱의 문서 폴더에 리스트들을 쟁여두세요. 카테고리화하고 리스트를 만드는 것 자체가 생각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축적하는 연습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시민들을 생각하게만드는 보도란

 

모든 뉴스는 편파적입니다. 편들기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가치판단에 선입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근거는 딱히 없지만 막연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나라들, 혹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여행가서 친숙한 나라들,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 소식을 아무래도 더 자주 전하게 되지요. 하지만 몰랐던 지역을 새로 알게 될수록 공감과 연대의 폭은 넓어집니다. 미디어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한국은 이미 국제사회의 중요한 플레이어입니다. 동시에 한국 언론에서는 오히려 숨겨진 플레이어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어느 기업이 인도양 섬나라에서 그 나라 농경지의 거의 절반을 헐값에 장기 임대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 나라 국가지도자와 좋은 조건에 계약을 맺었으니 성공적인 거래였다고 기업 쪽에서는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났고 숱한 인명피해 끝에 정권이 전복됐습니다. 시위를 촉발시킨 원인 중 하나가 한국 기업과의 토지거래 계약이었습니다. 각국 시민단체들과 저널리스트, 학자들 사이에서 부자 나라 기업들의 빈국 땅뺏기가 이슈가 되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파이낸셜타임스 등에서는 한국기업 케이스를 대표적인 사례로 보도했습니다.

 

https://www.ft.com/content/6e894c6a-b65c-11dd-89dd-0000779fd18c

 

부끄럽습니다만, 저도 당시에는 이런 전말을 잘 몰랐습니다. 나중에 외국 언론 기사와 외국 저널리스트의 책을 보면서 알게 됐습니다. 인도네시아의 한국계 기업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 기업이 지금 그 나라에서 하고 있는 일을 알자지라 방송을 보면서 전해 들었고요.

 

바그다드에서 미국이 이란 군사령관을 드론으로 암살하니 그 불똥이 튀어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을 해야 했습니다. 서방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문제로 등 돌린 사이에 한국은 폴란드에 10조원 규모의 무기를 팔았는데 한국 언론에서는 ‘K방산이라며 자랑 일색입니다. 무기 판매나 해외 파병을 모두 그만둬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한국이 하고 있는 행위의 평가 기준을 늘 염두에 두고, 그 기준이 점점 ‘윤리화’되어가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지 점검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입니다.

 

모호함을 두려워말자

 

국제뉴스에서 들려오는 것은 대개 대통령, 총리 같은 정치지도자들이나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힘센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기억해야 할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평화, 여성, 인권, 소수민족과 원주민 문제, 환경 이슈 등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내온 사람들 말입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윤리적 차원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치에서든 경제에서든, 중심부를 뒤흔들 파급력이 있을지 모를 변두리의 균열에 예민하게 촉수를 세우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덧붙이자면, 국가를 하나의 행위자로 묘사할 때는 늘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국가를 의인화하면 상황 분석이 단순해지고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국이든, 하나의 국가 안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집단과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당장 대통령이 어느 당인지에 따라 미국의 정책이 달라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달라지지 않고 변함없이 미국의 장기적 국익으로 추진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잘 구분해서 봐야겠죠.

 

그런가 하면 미국의 자본 중에도 전쟁으로 한몫 챙기는 군수와 에너지 자본이 있는 반면, 지정학적 불안을 극도로 싫어하는 금융자본이나 천재 창업자들의 움직임으로 포착되는 IT자본 등 다양한 분파가 있습니다.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로 다양합니다. 하나로 뭉뚱그려 국가의 행동을 해석하면 그 많은 움직임들을 포착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프레임으로 지정학적 움직임을 재단하면 반드시 모순이 생깁니다. ‘미국이 중동 패권을 놓지 않으려는 것은 석유 때문이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미국은 중동 석유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 하나의 가설만 하더라도 미국 내 석유 생산 추이와 유가 추이, 세계 산유국 지도의 변화 등등 온갖 것들을 확인해야만 입증할 수 있는 명제가 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패권주의 때문에 일어났다? 혹은 미국과 나토의 확장 의도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단순화의 함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원래 복잡합니다. 내편 네편 가른, ‘야마’가 똑 떨어지는 지정학 분석은 네이버 뉴스 몇 개만 읽은 사람이라면 기자가 아니더라도 다 합니다.

 

버마 민주화를 외치던 미얀마 운동가들이, 미얀마 민선 정부가 로힝야족을 학살할 때는 입을 다뭅니다. 시리아를 위해 캠페인을 하던 서울의 시리아인 운동가가 독재정권의 쿠르드족 학살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며 말을 바꿉니다. 그런데 절대적으로 나쁜 놈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섞여 있고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매사 양비론을 펼치라는 것인가. 물론 그런 뜻은 아닙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의도적으로 학살한 것은 반()인도 범죄입니다. 그렇지만 러시아가 절대악이고 우크라이나 혹은 서방이 절대선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누가 나쁘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명확히 해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고민스러울 때에는 ‘지금 가장 아픈 사람’이 누구인지가 보도의 기준이 돼줄 겁니다. 글로벌 이슈와 한국의 윤리의식, 시민의 관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를 늘 고민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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