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후나에서 폭력과 인권 침해가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비아 서부의 타르후나는 수도 트리폴리에서 남동쪽으로 65km 떨어진 인구 15만 명의 소도시다. 시내 한가운데에는 1915년 이탈리아에 맞서 싸운 독립투사 알리 스위단 알하트미의 동상이 서 있다. 알하트미는 1922년 붙잡혀 마을 광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100년도 더 전에 벌어진 일이라지만 이런 역사적 사건이 후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더 잔혹한 일은, 리비아가 독립 이후 오랜 독재정권에서 벗어나 민주화의 길로 가려고 하는 와중에 벌어졌다.
2011년 ‘아랍의 봄’ 시민혁명과 함께 리비아에서는 내전이 벌어졌고,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쫓겨다니다 처형됐다. 트리폴리를 포함해 서부를 통치하는 통합정부(GNU)와 동부를 장악한 군벌 칼리파 하프타르의 리비아국민군(LNA)의 양대 세력이 국토를 갈라 싸우면서 ‘한 나라 두 정부’라는 기묘한 상황이 이어졌다.
유엔이 인정하는 것은 서부의 트리폴리 정부이지만 동부의 하프타르와 국민군도 유전 지대를 차지하고 있어 세력이 만만치 않다. 그뿐 아니라 외부 세력의 입김도 있다. 튀르키예는 트리폴리 측에, 러시아와 아랍에미리트와 이집트는 동부에 용병과 무기를 보낸다. 프랑스도 그들에게 힘을 보태준다. 사정이 이러니, 유엔이 무기 금수조치를 취하고 2020년 10월 양측이 휴전협정을 맺었음에도 분쟁은 끝나지 않는다. 통합정부 자체도 선거를 치르네, 의회가 정부를 해산시키네 하면서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Libya Herald] Lack of accountability and impunity for Tarhuna human rights violations risk fuelling more instability and further division in Libya
시민혁명이 왜곡되면서 일어난 이 복잡한 내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는 곳은 없다. 카다피가 도망치고 양대 세력의 내전이 한창이던 2011년 8월 말 리비아국민군 세력이 타르후나로 진입했다. 그후 2020년까지 ‘알 카니’라는 가문의 형제들과 그들을 필두로 한 세력 ‘카니야트’가 이 일대를 장악했다. 2020년 6월 트리폴리 정부 군대가 타르후나를 탈환한 후 도시 곳곳에서 집단 매장지들이 발견됐다. 올 1월까지 정부는 타르후나와 그 주변 지역에서 615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 후로도 매장지들이 계속 발견됐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확인된 무덤의 숫자와 희생자들의 숫자도 늘고 있다.
8월 말 유엔이 타르후나 인권침해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리비아 정부 측 조사기관의 협조도 받고, 유엔 인권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독립적인 조사팀을 현지에 보내기도 했다. 유엔 조사팀은 타르후나에서 50명 넘는 피해자, 생존자, 희생자 유족을 만나 10년 동안 벌어진 학살과 성폭력, 납치, 고문, 감금, 강제이주 등등을 확인했다. 카니야트 무장세력이 기승을 부리는 동안 타르후나는 무법 천지였고 주민들은 끔찍한 고통을 받아야 했다는 것이 낱낱이 드러났다.
카니야트의 범죄가 파헤쳐진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들은 누군가를 잡아 죽일 때, 보복하지 못하도록 가족들까지 전부 다 죽인다. 그러고 나서 돈과 재산을 빼앗는다.” 시신이 절단된 사례, 무더기로 매장된 여성과 아이들, 우물에 던져진 주검들… 카니야트는 생수공장이던 곳을 사설 감옥처럼 만들어 사람을 잡아 가두고 고문했다. 멋대로 ‘경찰’과 ‘헌병대’를 만들어 전횡을 휘둘렀다. 이미 2021년 휴먼라이츠워치가 타르후나 주민들의 대량 실종과 집단 매장에 관한 보고서에서 공개한 내용들이었다.
국제 인권기구들이 관심을 쏟았고, 실종자 가족 단체도 만들어졌다. 유엔이 나서고 국제형사재판소(ICC)도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가해자 상당수는 국경을 넘거나 정부 통제를 받지 않는 동부로 도망쳤다. 지역 정부나 중앙 정부의 실력자들과 결탁해 처벌을 피하려는 자들도 있다. 카니야트는 서부 진영과 손을 잡았다가 필요하면 동부 진영에 합류하는 식으로 연줄을 바꿔가며 권력을 휘둘렀다. 실상은 정부군도 범죄에 관련돼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러니 진상 조사에서 처벌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다.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가해자들을 붙잡아 처벌을 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그러는 동안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계속된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대변인 세이프 마강고는 조사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타르후나의 인권 침해가 계속되는 것은 “정의가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의의 실현’이란 무엇일까.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가해자들은 여전히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진실과 정의, 배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처벌받지 않는 상황이 끝나야 한다, 국제적으로 적법한 절차와 공정한 재판 기준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의가 없으면 ‘과거’는 끝나지 않는다. 영원히 현재인 고통이 된다. 유엔 조사단 발표나 리비아옵저버 등 현지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처벌의 부재’ 때문에 주민들은 아직도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이 때문에 범죄를 신고하고 당국에 수사에 협력하기를 꺼리고, 그래서 정의를 찾는 것에도 계속 장벽이 생기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미국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67년 4월 베트남 전쟁에 항의하기 위해 뉴욕의 유엔 본부를 방문했다. 그 때 그는 인종 평등을 위한 투쟁과 반전 운동을 연결시키며 “정의 없는 평화는 있을 수 없으며 평화 없는 정의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그후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흑인들의 구호가 됐다. 또한 전쟁 범죄, 반인도 범죄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도 슬로건이 됐다. 이탈리아의 정치인이자 인권운동가인 엠마 보니노는 이 말을 따와 1993년 ‘정의 없는 평화는 없다(No Peace Without Justice)’라는 국제 인권단체를 만들었다.
이 기구는 2012년부터 리비아에서 내전 기간의 피해를 조사하고 인권 수준을 높이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의는 없고 평화도 없다. 유엔 보고서는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리비아가 국가적인 화해로 가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세계 곳곳의 어두운 ‘과거사’들이 그렇듯이 타르후나에 ‘진실’과 ‘정의’가 빛을 비추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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