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 없어서 가격이 오른다”(1973년)
“석유가 없어질까 봐 가격이 오른다”(2026년)
연일 유가충격, 물가 걱정이다. 50여년 전 오일쇼크와 최근 상황을 단순화하면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둘 다 지정학적 불안이 에너지 가격을 올리고 글로벌 경제에 충격을 준 사건이지만 구조와 파급방식은 많이 다르다.
1973년 시작돼 이듬해까지 이어진 1차 오일쇼크는 아랍연합군이 이스라엘과 맞붙었다 패배한 ‘욤키푸르 전쟁’의 후폭풍이었다.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드는 미국과 서방에 맞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오펙)를 중심으로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 생산을 감축하고 수출도 대폭 줄였다. 공급이 줄자 유가가 네 배로 뛰었다. 미국의 주유소 앞에는 줄이 늘어섰고 ‘배급량’을 줄여야 했다. 미국은 그 뒤로 오랜 기간 석유를 아예 ’수출 금지 품목‘으로 만들었고 각국은 전략비축유라는 이름으로 기름을 쟁여두기 시작했다. 에너지 공급을 끊는 것이 정치적인 무기가 됐으며 자원 민족주의와 ‘에너지 지정학’이 세계를 움직이는 요인으로 떠올랐다.
이번엔 어떨까. 직접적인 수출 제한보다 ‘리스크 프리미엄’과 해상 길목의 위협이 세계를 강타한 충격의 핵심 요인이다. 초크포인트, 핵심 병목이라는 말이 뉴스마다 빠지지 않는다. 바닷길로 실려다니는 원유의 20%가 지나다니는 호르무즈는 미-이스라엘과 이란 간 다툼의 키워드가 됐다. 이번 사건에도 그놈의 이스라엘은 빠지지 않지만,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무기화한 것은 세계 경제를 볼모로 잡은 이란이다. 1차 오일쇼크의 주역 아랍국들은 이란의 무차별 공습에 이번엔 피해자가 됐다.

과거엔 석유 의존도가 절대적이었고 대체 에너지는 거의 없었다. 전략비축유 체계도 부족했다. 반면에 지금은 국제에너지기구(IEA)를 중심으로 비축유 체계가 있고 미국산 셰일 등 원유 공급통로가 다양해졌다. 재생에너지 비중도 높아졌다. 하지만 어떤 것도 위안을 주지 않는다. 4월 초 현재 아시아 국가들을 비롯해 일부 지역에서 원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지만 실제 공급량이 감소한 것보다 “공급이 끊길 수 있다”는 걱정이 기름값을 더 크게 끌어올렸다. 어찌 보면 그것이 1970년대 이후 일어난 세계 경제의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아닌가 싶다. 걱정이 곧 비용이 되고, 더 큰 비용과 걱정을 부르는 구조가 지난 50년 사이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유가의 기준은 지금 팔리고 있는 기름값이 아니다. 미국의 서부텍사스유(WTI)와 유럽의 브렌트유로 대표되는 원유 선물시장이 그 구조의 핵심에 있다. 지금의 석유가 아니라 미래의 석유를 계약하는 선물시장은 1980년대에 만들어졌다. 오일쇼크 10년 만이던 1983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유 선물계약이 도입된 게 시초였다. 그 후로 해외 수출도 안 되고 미국서만 팔리던 서부텍사스유가 ‘벤치마크 유종’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시장의 표준이 됐다. 중국이 석유 먹는 하마가 되고 이라크전 여파까지 겹쳤던 2008년 유가는 배럴당 140달러를 넘어 고점을 찍었다. 2020년에는 공급 과잉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번지면서 ‘마이너스 유가’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번엔 호르무즈 병목에 막혀 그래프가 다시 치솟았다.
선물시장을 도입한 목적은 석유회사들이 장악해온 시장에 안정성을 부여하는 것이었지만 결과는 반대인 듯하다. 지정학적 요인, 오펙의 결정, 경제 사이클의 영향이 뒤섞여 오르락내리락이 더 커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시장의 변덕은 기름값에 그치는 게 아니라 금융시장이라는 더 큰 변덕쟁이를 만나 증폭되고 또 증폭된다. 50년 전에는 산유국 카르텔이 가격을 결정했다. 그러나 선물시장이 만들어지고 헤지펀드의 투기자금과 ‘알고리즘 거래’가 맞물리면서, 지금은 소비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기름값을 정한다. 전쟁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뉴스만 나와도 곧바로 가격이 요동을 친다. 그래서 1차 오일쇼크 때보다 가격 변동이 몹시도 빠르다. 과거엔 몇 달 단위로 시장이 반응했다면 지금은 몇 시간 단위로 반응을 한다.
무기화된 에너지 시장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이 금융화된 에너지 시장이다. 오일쇼크의 진원지였던 산유국들이 누구보다 그 위험성을 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금융과 물류의 허브였던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가 상징하던 걸프의 경제 모델에 금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아랍 석유에 대한 공급 의존이 취약성의 원인이었다면 지금은 글로벌 시장의 연결성 자체가 모두의 약점이 됐다.
1970년대의 산유국이 자원 권력이라면, 지금 세계를 흔드는 것은 해상 통제와 금융시장 반응이 결합된 지정학적 리스크 권력이다. 두 상황은 비슷한 오일쇼크가 아니라 작동 방식 자체가 다른 위기에 가깝다. 산유국들이 담합했던 시절엔 해협 봉쇄도 드론 공격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에너지 인프라 자체가 전장이다. 가스전과 정유시설에 미사일이 떨어지고 선박과 항만과 해상 물류 전체가 전투 대상이 됐다. 1차 오일쇼크 때 석유는 정치적 무기였고 금수조치는 전쟁을 대신하는 위협 수단이었다. 이제 석유는 전쟁의 대체재가 아니라 전쟁과 하나가 돼버렸다.

1차 오일쇼크 뒤 고물가에 경기 침체가 겹쳐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미국의 경제적 패권이 약해지기 시작하는 시기와 맞물렸다.
세계경제 파장이 얼마나 갈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세계 경제성장률이 올해 2.9%로 둔화됐다가 내년엔 올라갈 것으로 봤다. 세계무역기구(WTO) 3월 글로벌무역전망 보고서는 고유가가 좀 더 이어지면 올해 세계 상품무역과 서비스무역이 모두 줄어들 것이라고 봤고, 여진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위기의 파장을 예측하기엔 아직 이르다. 호르무즈 해협의 개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세계 40여개국 외교장관들이 2일 화상 회의를 했다고 하는데… 여기저기서 나오는 경제 전망이 어두워지긴 했으나 현재까지는 부자 나라들이나 신흥경제권 모두 결정타를 입은 정도는 아니다. 인공지능이 이끌고 가는 경제 트렌드는 어쩌면 이번 전쟁 덕을 볼 지도 모른다. 똑똑한 나라들은 이 참에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높이려 애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깡패짓에 숨지는 이란 사람들, 이란의 보복에 아랍에미리트에서 숨진 외국인 노동자들. 피해자는 더 많고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이 관리하는 원조 식량 7만 톤이 이번 위기로 발이 묶였다고 한다. 아프리카 빈국 잠비아는 식료품값이 30% 이상 올랐다. 이미 세계에 배곯는 사람이 3억명이 넘는데, 이번 위기로 4500만명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기름값과 주가로 환산할 수 없는 목숨들이다.
- 참고문헌
https://www.reuters.com/markets/commodities/crude-oil-lng-supply-are-risk-worst-possible-scenario-2026-03-30/
https://www.middleeastmonitor.com/20260402-uae-rejects-report-claiming-it-is-ready-to-join-war-on-iran-to-reopen-hormuz/
https://www.oecd.org/en/publications/oecd-economic-outlook-interim-report-march-2026_d4623013-en/full-report.html
https://www.reuters.com/world/middle-east/iran-war-is-dimming-outlook-many-economies-imf-says-2026-03-30/
https://www.wto.org/english/res_e/booksp_e/gtos0326_e.pdf
https://www.bbc.com/news/articles/c4gjxv5g19no
https://www.wfp.org/stories/why-middle-east-conflict-threatens-record-levels-hunger
https://www.csis.org/analysis/chokepoint-how-war-iran-threatens-global-food-secu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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