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공은 둥글대두

월드컵, 알고 보면 더 재밌어요

딸기21 2006. 5. 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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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지배국과 피지배국 ‘운명의 대결’


“식민의 恨도, 굴곡진 역사도 축구와 함께 날린다.”


사람과 공, 사람과 사람이 맞부딪치는 축구는 가장 원초적이고 또한 ‘정치적인’ 스포츠다.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국가대항전을 할 때면 양팀은 ‘포클랜드 전쟁’을 방불케하는 사투를 벌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누캄프 구장에서는 카탈로니아 독립을 꿈꾸는 이들이 카탈로니아어로 ‘마드리드 중앙권력’에 맞서고, 빌바오의 축구장에선 바스크 독립운동세력이 바스크팀을 응원하며 민족의식을 달군다. 지난해 9월 북아일랜드 대표팀이 잉글랜드 대표팀을 33년만에 꺾자 북아일랜드의 중심도시 벨파스트에서는 반(反)영국 시위대가 거리퍼레이드를 벌였다. 세르비아에서는 민족주의세력이 1990년대 프로축구팀과 연결된 청년들을 동원해 반대세력을 탄압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총리와 같은 정치인이 축구를 정치에 동원해 집권을 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부유층과 빈민층을 대변하는 축구팀이 경기장에서 계급 대결을 벌인다.

우루과이의 좌파 지식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저서 ‘축구 그 빛과 그림자’에서 축구를 ‘춤추는 전쟁’으로 묘사했다. “축구는 전쟁의 형식적 승화이다. 짧은 바지를 입은 11명의 사람들은 그 나라 혹은 도시, 마을의 칼이다. 무기도 없고 방탄조끼도 입지 않은 이 전사들은 대중들에게 확고한 신념을 심어준다. 격전이 펼쳐질 때마다 조상들로부터 후손들에게로 전승되어 내려온 오래된 애증의 전투가 시작된다.”


가깝게 우리를 돌아보더라도, ‘한일전’은 항상 양국 국민들에게 스포츠를 넘어 민족의 역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축구는 민족주의, 지역주의와 결합돼 대중들에게 희로애락을 선사하는 것이다. 국기를 내걸고 경기를 펼쳐보이는 월드컵은 ‘스포츠 민족주의’의 정점이다. 특히 이번 월드컵에서는 3개 조에서 한일전과 같은 열전이 벌어질 예정이다. 과거 유럽의 지배를 받다 독립한 국가들과 옛 식민지배국 3쌍이 월드컵 본선 같은 조에서 만났다. 앙골라와 포르투갈, 토고와 프랑스,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잉글랜드가 그들이다.


앙골라 vs 포르투갈 “2002 세네갈의 영광 다시 한번”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아프리카의 세네갈은 식민지배국이었던 프랑스를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역사의 설움을 날려보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D조의 앙골라가 포르투갈을 상대로 세네갈의 이변을 재연하겠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특히 앙골라는 오랜 내전의 상처를 딛고 최근 몇 년 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보이며 아프리카의 신흥 개발도상국가로 떠오르고 있어, 이번 월드컵이 ‘희망의 상징’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서양에 면한 앙골라는 한반도의 5배가 넘는 면적에 석유, 다이아몬드, 금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는 나라다. 앙골라는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했지만 공식언어가 포르투갈어인 데에서 보이듯 포르투갈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여전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독립 이래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내전에 휩싸였던 앙골라는 2002년 내전이 공식 종료된 뒤 석유 등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이 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무려 19.1%에 달했다.

앙골라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중·서부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힘겨운 역사만큼이나, 앙골라의 본선 진출 과정은 험난했다. 약체인 차드와 예선 첫 경기를 치르면서 패배의 아픔을 맛본 뒤 루이스 올리베이라 곤칼베스 감독 체제로 팀을 정비했지만 아프리카의 축구강국 나이지리아 등과 예선 한 조에 속하게 됐던 것. 그러나 아프리카네이션스컵 출전 외에 이렇다할 국제대회 성과가 없던 앙골라 팀은 수도 루안다의 시타델라 경기장에서 기적을 일으키며 나이지리아 등을 꺾고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기적의 주역은 대표팀 주장으로 포르투갈 벤피카에서 주전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린 아크와. 만토라스, 피게이리도, 후아오 페레이라 등 포르투갈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규합해 첫 본선진출 영광을 안은 아크와는 “앙골라에는 석유와 전쟁, 가난만 있는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는 명언을 남겼다.



Angolan player Maieco Fabrice, number 10, celebrates with teammates after he scored the only goal

against Rwanda Oct. 8, 2005 in Kigali during their World Cup 2006 qualifying soccer match.

Angola qualified for the World Cup finals Saturday, winning Group Four in African qualifying. / AP


앙골라의 ‘코끼리 전사들’을 맞게 될 포르투갈은 한일월드컵 브라질 우승의 주역인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의 지휘 아래 루이스 피구, 파울레타,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등 쟁쟁한 스타들로 진용을 짜놓고 있다.


토고 vs 프랑스 “월드컵 통해 조국 새롭게 도약”




Togo's players Adekamni Olvfade, left, and his teammate Yao Aziawonou, right,
celebrate after the third goal for their team
during a Soccer World Cup preperation match
between the national soccer team of Togo
and a soccer selection team of Bavaria in Aindling,
southern Germany, on Tuesday, May 23, 2006. / AP


한국, 프랑스, 스위스와 함께 G조에 속한 토고는 지역 예선이 시작될 때만 해도 대표적인 축구 약소국으로 분류됐었다. 그러나 지역예선과 이후 평가전들은 토고에 대한 시선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에 면한 토고는 아프리카 주변국들에 비해 내전과 기근 등의 고통은 비교적 적게 받았지만 정치적으로는 굴곡진 길을 걸어왔다. 19세기 이래 이번 독일의 통치를 받다가 1차 대전 이후 프랑스에 점령돼 식민지가 됐으며, 영토 일부를 영국령 가나에 빼앗긴 상황에서 국제연합 신탁통치를 거쳐 1960년 ‘아프리카 독립의 봄’ 때 독립국가로 다시 태어났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토고는 옛 지배국가(독일)의 경기장에서 옛 식민종주국(프랑스)과 맞붙게 되는 셈이다.
토고인들은 월드컵 진출을 새로운 시대의 시작으로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38년간 집권했던 에야데마 냐싱베 전대통령이 숨진 뒤 권력을 승계한 포르 냐싱베 대통령은 점진적인 개혁조치를 펼치며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냐싱베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토고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되자 이를 기념, 국경일을 선포하기도 했다.
토고의 본선행 발판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지난번 월드컵에서 ‘아프리카의 꿈’을 실현시켰던 세네갈. 지역 예선에서 세네갈에게 3대1로 승리를 거둔 대표팀은 국민들에게 4연승 행진이라는 성공을 안겨줬다. 10번의 예선에서 7승2무1패라는 성적을 거둔 토고 대표팀이 본선에서 어떤 경기를 보여줄지에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언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vs 잉글랜드 ‘떠있는 산유국’ 기적을 꿈꾼


중미 카리브해의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인구 106만명의 작은 섬나라다. 영연방에 속한 이 나라는 스페인 점령과 영국 식민통치를 겪고 1962년 독립했다. 베네수엘라 앞바다에 위치한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비교적 높은 소득수준과 성장을 유지, ‘떠있는 산유국’으로 불린다.

중미와 남미에서 웬만한 나라들은 축구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이 지역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보는 이들도 많다.
2차 예선에서 강팀인 멕시코와 한 조가 됐던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멕시코전 2패라는 아픔을 맛봤지만 세인트 키츠네비스,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같은 주변 섬나라들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본선 진출의 행운을 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본선에서는 옛 식민종주국 잉글랜드를 비롯해 스웨덴, 파라과이 등 강국들과 B조에서 만나게 돼 행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 등과 함께 `죽음의 조' C조에 편성된 세르비아-몬테네그로는 이번 월드컵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전망이다.

월드컵을 20일 앞둔 지난 21일 몬테네그로가 국민투표를 통해 세르비아로부터 분리·독립하기로 결정했기 때문. 이에따라 `세르비아-몬테네그로'라는 국가명이 사라지고, 오는 2010년 월드컵에서부터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각각 따로 월드컵 진출을 겨루게 된다.




Serbia and Montenegro lineup to face Tunisia in Rades on 1 March 2006. / AFP


동유럽 발칸반도에 위치한 세르비아-몬테네그로는 `발칸의 화약고'라고 불릴 정도로 정치적 불안이 이어지는 곳. 때문에 1990년 월드컵 당시에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비롯,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까지 6개국이 통합된 유고슬라비아 국명으로 참여했지만, 1990년대 초 연방이 해체되면서 각자 길을 걷는 등 축구 국가대표팀도 혼선을 거듭해왔다.

유고슬라비아까지 포함하면 세르비아-몬테네그로는 올해 8번째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유럽의 강호. 유고슬라비아는 1998년 월드컵에서는 16강에 오르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라는 이름으로는 올해 첫 선을 보이는 셈이다.

그러나 몬테네그로의 독립에도 불구, 올해 월드컵은 단일팀으로 치를 예정이다. 데잔 사비체비치 몬테네그로 축구협회장은 22일 "독립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는 세르비아와 단일팀으로 경기를 치를 것"이라면서 "온 국민이 단일팀을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밀로 주카노비치 총리도 이날 "먼저 몬테네그로를 응원하겠지만, 그 다음엔 항상 이웃을 응원한다"면서 세르비아에 대한 돈독한 우정을 표했다.

다만 몬테네그로는 독립 결정으로 2008년 유러피언 챔피언십 출전자격은 상실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의 회원국 자격을 다시 얻어야 하기 때문. 한편 현재 세르비아-몬테네그로에 몬테네그로 출신 선수로는 이탈리아 세리에A 레체에서 활약중인 공격수 미르코 부치닉이 유일하다. 


■ 獨 “극우파, 잠시만 떠나있으면 안되겠니?”


2006 월드컵 개최국 독일에서는 `극우파'가 연루된 폭행사건이 잦아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내무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어떤 형태의 극단주의와 외국인 혐오증, 반유대주의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극우파 활동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쇼이블레 장관은 이어 "극우주의자들 때문에 독일이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인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다할 것"이라면서 일선학교에서 관용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캠페인도 함께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Action forces of the riot police of the German federal state of Baden-Wuerttemberg

demonstrate in a posed scene for the media the arrest of hooligans

in Boeblingen near Stuttgart, southwestern Germany, Friday, May 19, 2006. / AP

독일 연방범죄수사국에 따르면 극우파가 연루된 폭력사건은 지난해 958건으로, 전년보다 23% 급증했다. 또 지난해 극우파의 누적 폭력사건도 전년보다 400건 늘어난 1만400건에 달했고, 올 들어서도 베를린 동부 외곽에 위치한 브란덴부르크에서는 폭력사건이 독일 서부의 헤세보다 10배 이상 발생했다. 독일에서는 신나치주의자가 지난해 3800∼4100명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주에는 터키계 베를린 지방의회 의원이 괴한 2명에게 얻어맞아 머리에 상처를 입었고, 한 에티오피아계 독일인은 테러로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극우파들이 오는 6월21일 이란과 앙골라 경기가 열리는 라이프치히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이라는 첩보도 나오고 있다. 시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22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경찰노조는 월드컵 기간에 경기장 인근에서 시위를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하는 등 독일 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경찰노조 위원장 콘라드 프레이베르크는 "모든 시위를 막기에는 경찰 병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프란츠 뮌테퍼링 노동부장관은 "피부색이나 국적, 이름이 다르다는 이유로 외국인이 독일에 머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태를 철저히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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