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요르단대학교 공일주 교수 인터뷰+기고문

딸기21 2003. 4. 1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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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전쟁을 아랍세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요르단국립대학 현대언어학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공일주(孔馹柱·47)교수를 24일 만나 '아랍의 한국인'이 바라보는 이라크전쟁에 대해 들어봤다. 공교수는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를 졸업하고 지난 98년부터 암만에서 요르단 학생들을 가르치며 부인과 아들(17), 딸(13)과 함께 살고 있다.

공교수는 먼저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이라크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지요. 체제변화는 필요하지만, 그곳 국민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아랍문화의 이해', '중동의 기독교와 이슬람' 등의 저서를 낸 바 있는 공교수는 이번 전쟁을 '아랍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서방의 공격'으로 바라보면서 전쟁 이후 벌어질 혼란을 우려하고 있었다. "서방에서는 포스트모던을 이야기하지만 이곳은 이제 모더니티에 진입하는 시기입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 지역에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추진한다면 엄청난 혼란을 불러올 겁니다."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중동에 신(新)질서를 구축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에 대해 그는 "아랍의 특성을 무시한채 강압적으로 서구식 정치·경제체제를 이식하려 한다면 큰 충돌을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분석을 빌면 아랍세계에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의 자체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이슬람 성법(聖法)을 고수하려는 이슬람 세력과 아랍국 정부 간의 마찰, 즉 무슬림의 신앙과 현실 사이의 모순이 존재하는 동시에 이슬람과 별개로 유목민족 시절부터 내려오는 부족문화의 문제가 병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문화가 종교적 측면이라면 실제 이 지역의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가문·부족 문화의 유산들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지난해에야 여성들의 주민등록이 생겼을 정도로, 이슬람과는 또다른 부족 관습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변화는 사회 전체의 지지가 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도 세계화의 고통을 겪었지만, 급작스런 변화가 이 곳에 가져올 고통은 훨씬 클 수밖에 없죠."

미국은 이미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 공습이 시작되면서 아랍 각국에서는 격렬한 반전·반미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공교수가 근무하는 요르단대학에서도 매일 학생들의 반전집회가 열린다. 그는 "반미 정서의 저변에는 광범위한 아랍민족주의가 깔려 있다"고 진단한다. 20세기 초중반 서구의 식민주의에 맞서 아랍 전역을 휩쓸었던 아랍민족주의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민족주의는 냉전 이후 미국의 중동질서 재편 구상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불 수 있습니다. 외세의 새로운 개입에 민족주의로 맞서려는 것이죠."

공교수는 80년대 수단에서 5년간 유학했고, 90년대 초반에는 암만에서 기독교 선교사로 활동했다. 이라크도 95년과 2001년 두 차례 방문했었다. 그가 느끼는 아랍은 '다양한 문화와 시대(時代)들이 혼재하는 곳'이다. 개발의 기준으로 보면 분명 낙후돼 있지만 '느림의 문화'와 '이야기'의 전통, 베두인의 환대(歡待) 문화가 남아 있는 곳.
"여기는 아직도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는 곳입니다. 이라크의 바그다드 대학에는 고대의 기록들이 가득차 있고 모술의 도서관에는 서기 2세기의 문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는 이라크의 석유만 봅니다. 말 그대로 '카우보이 문화'가 바빌론의 문명을 부수고 있는 거지요."

공교수는 이라크의 반정부 세력을 전쟁에 동원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예전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견제하려고 무장단체 하마스를 지원했습니다. 미국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지원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소련에 맞서 이슬람 무자헤딘(전사)들을 밀어줬습니다. 결과가 어땠나요? 아랍은 아랍입니다. 미국이 이라크에 다시 똑같은 분열책과 대리전을 쓴다면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게 될 겁니다."
요르단에는 한국 교민 240여명이 있으나 이라크전쟁으로 긴장이 고조되면서 상당수가 떠나 현재는 120여명만 남아 있다. 요르단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대단히 좋은 편이다. 한국산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인지도도 높고, 교민들과 현지 주민들의 관계도 우호적이다. 한국정부의 이라크전 파병 결정으로 다소 관계가 껄끄러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한-아랍 관계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공교수는 "서구식 효율성의 잣대로만 재단하지 말고 아랍 문화의 풍요로움을 봐야한다"고 강조하면서 "한국도 석유문제만 보지 말고 시야를 더 넓혀야 이번 전쟁이 향후 중동과 세계에 미칠 영향을 내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오리엔탈리즘과 중동학 [공일주 교수 4.15. 문화일보 기고문]


한국에서도 한때는 <오리엔탈리즘> 이란 제목의 책을 가끔 서점가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은 주로 꾸란과 하디스, 무함마드, 철학, 논리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슬람을 종교 이상으로 보고 문화와 문명을 연구하는 일에 참여한 학자들이 오리엔탈리즘을 만들어갔다. 주로 출발은 중동을 식민지화하였던 국가들의 학자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서구의 이슬람 연구에 대한 왜곡은 십자군 전쟁때에 극도로 달해 그때의 이슬람과 무함마드, 꾸란에 대한 기록이 9.11 사건 때에도 다시 인용되었다고 오만의 이슬람법학 연구소 무함마드 자이니가 주장한다. 그는 서구의 오리엔텔리즘은 기독교 십자군 운동의 결과와 산업 혁명 이후 상당히 왜곡되었는데 특히 그들 자신이 속한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저술활동이 이루어졌다고 하고 12-13세기의 오리엔탈리즘 신학은 이슬람을 증오하는 내용과 무함마드와 꾸란과 이슬람을 왜곡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하였다. 사실 이슬람은 9.11 이후 이슬람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구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은 이슬람관련 사본 연구와 백과사전 편찬(1937년) 등을 통해 아랍 무슬림들이 이 자료들을 인용함으로써 아직까지 아랍 스칼라쉽에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카알 브록킬만은 아랍 사정에 맞지 않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고 모로코의 이븐 투파일 대학의 하산 알알라비가 말한다. 그는 이집트의 따하 후세인과 앗따흐따위 등도 서구로 유학을 다녀와서 서구 문명을 자랑하고 특히 따하 후세인은 <서구를 본받지 않으면 아랍이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어서 이들 오리엔탈리스트들이 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랍어에 능란한 사람이 없어 상당한 내용이 정확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말하고 아랍인들과 연구 방법이 달라 그리고 서구 시각과 아랍인간의 차이가 있어 당시 그들이 그려 놓은 이슬람 세계는 실제 상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따하 후세인의 작품은 고전이 되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애독하고 있다.
오리엔탈리스트들은 오늘날까지 해당 국가의 외교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데 버나드 루이스를 그 예로 들었다. 무함마드 자이니는 소르본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캠브리지 대학교 그리고 라이덴 대학교에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이슬람 학문이 공존과 상호 이해에 바탕을 두었으면 한다고 의견도 제시했다.

오늘날 아랍 중동에서 살고 있다보니 역시 아랍에 살고 있는 이슬람사람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신뢰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들의 말이 실제와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이라크 공격이 있기 전에 대학에 만난 아랍 학생은 이게 <종교 전쟁>이라고 열을 올렸다. 그런데 요즈음 아랍인들은 만나면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가 탐나서 전쟁을 벌였다고 말한다. 전쟁이 일어난후 어느 요르단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와 인터뷰가 있었다. 그때 질문은 어느 방송사가 요즈음 공정하냐고 물을때 이라크 방송이 제일 낫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전쟁이 끝나가는 과정에서 보니 이라크 공보부 장관이 사실 보도를 안하였다는 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집트 사람들은 이라크 정부 당국자들의 말만 믿고 이라크가 오래 버티어 줄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사태가 그리 되지 못하여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덧붙이기를 이집트가 1967년 전쟁에서 정부가 이기고 있다고 한말을 떠올리었다.

아랍 학생들에게 <아랍인에게 결혼의 자유가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말하다가 더 자세히 물으니 < 반드시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결혼할 수 있다>고 말로 흐렸다. 사실 이슬람 사람들은 <공존>이란 말을 자주 한다. 서로가 같이 살아가자는 것이다. 이라크 사담 대통령은 이란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란은 <12년간 불가침 협정을 하자고 할 때는 아예 쳐다보지 않더니 이제 웬말이냐>고 말하면서 거들 떠보지도 않았다.
막상 이라크를 미국이 공격하자 스웨즈 운하를 닫으라는 국민의 소리에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은 19세기에 만들어 놓은 스웨즈 운하에 관한 국제 협약을 내놓았다. 못 닫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중동학과 이슬람학은 어떤가?  아랍 학자들은 서구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의 말을 믿지 않고 있으니 불신은 더욱 증폭되어 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도 의존하지 않고 중동 현지의 학자들의 의견만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중동 이슬람학의 기술을 기대해 보는 것은 너무나 큰 요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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