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시라크의 퇴진 선언

딸기21 2007. 3. 1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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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시라크(74) 프랑스 대통령이 다음달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11일 공식 선언했다.

"앞으로도 국민들에게 봉사하겠다"는 말이 따라붙긴 했지만 이번 선언은 사실상 그의 45년 정치인생을 접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의 퇴진은 한 시대의 종말, `구세대' 정치인들의 공식 은퇴, 유럽 세대교체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AFP통신과 BBC방송 등이 보도했다.


"대선 출마 안 한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날 TV연설을 통해 "지금까지와 똑같은 열정으로, 그러나 좀 다른 방식으로 여러분을 위해 일할 것"이라며 다음달 22일로 예정된 대선에서 3선에 도전하지 않을 것임을 공식 선언했다. 그는 "내 인생을 바친 정의, 진보, 평화를 위한 싸움, 그리고 위대한 프랑스를 위한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오는 5월 임기가 끝난 뒤의 계획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시라크 대통령은 대선에 다시 나오지 않을 것으로 진작부터 예상됐으나 권력누수를 줄이기 위해 공식 선언을 미뤄왔었다.

프랑스 정치 엘리트의 산실인 파리행정학교(ENA)를 졸업한 그는 1962년 조르주 퐁피두 당시 총리 보좌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고 5년 뒤 각료로 발탁돼 일찍부터 성공가도를 달렸다. 1974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때 한 차례 총리를 지냈다. 1981년 대선에서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에 패했으나 1986년 총리로 기용되면서 좌우 동거정부(코아비타시옹)를 이끌었다. 총리 재직기간 3년을 제외하면 1977년부터 1995년 사이에 15년 간 파리 시장을 지냈다. 1995년 엘리제궁 입성해 7년을 지냈고 2002년 재선에 성공, 바뀐 헌법에 따라 5년의 임기를 보냈다.

부인 베르나데트와의 사이에 두 딸이 있으며 베트남 난민 출신인 양녀가 있다.


능수능란 구세대 정치인


파리 시장과 총리, 대통령을 두루 거친 그의 정치 인생을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시라크 대통령은 고상하고 지적인 전임자들과 달리 스모를 좋아하고 요리에 관심을 보이는 등의 대중적인 면모, 직설적 화법과 열정적인 모습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가는데 성공했다. 위기를 능란하게 헤쳐나가는 능력 때문에 `카멜레온' `보나파르트(나폴레옹)' 같은 별명을 얻었는가 하면, 바람에 따라 방향을 바꾼다는 뜻에서 `바람개비'라는 비아냥 섞인 별칭으로도 불렸다.

과거나 지금이나 `강력한 프랑스 공화국'을 내세우는 드골주의자이며 퐁피두 시절엔 전형적인 `불도저' 스타일의 강한 추진력으로 이름을 얻었다. 1995년 대통령 취임 뒤 남태평양 핵실험을 강행한 것 등은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정작 12년 집권 기간 경제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지 못했고 실업률을 잡는데도 실패했다. 자유시장 정책과 프랑스식 복지프로그램을 어정쩡하게 섞는 중도적 색채 때문에 정책 혼선을 빚은 일도 많았다. 재작년 노동시장 유연화를 내세워 발표했던 대졸자 최초고용계약(CPE) 법안이 격렬한 반대시위에 부딪친 것도 그런 예에 해당된다. 파리 시장 시절의 공금 유용 스캔들 때문에 말년에 고초를 겪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유럽의 대변인'


시라크 대통령은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맞서며 `유럽의 가치'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라크전을 놓고 미국과 대립하면서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으며 중동 분쟁과 아프리카 빈곤 문제 등에서 프랑스의 외교적 발언권을 키우는데 큰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대 옛 유고연방 내전 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 공습을 이끌어내는 등 `인도적 개입'을 중시하는 입장을 보여왔으며 한때 제3세계 국가들까지 아우르는 지도자로 부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과 감정싸움을 일으켜 오히려 종종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불렀으며 특히 영국, 독일의 `친미 정권'들과 대비되면서 엘리제궁의 입지를 좁혔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지난 2005년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헌법이 부결되고 그해 말 파리 교외 대규모 소요사태까지 일어나 정치적 타격을 받았으며 지난해부터는 극심한 레임덕을 겪었다.


`세대교체' 그 이후는


시라크 대통령의 퇴진으로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의 정계 세대교체가 마무리되게 됐다. 이번 대선에서 3파전을 벌이고 있는 우파 국민행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52)와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53), 제3주자인 중도파 프랑수아 바이루(55)는 모두 2차 대전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다. 이미 영국, 독일 등 유럽 주요국들에선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시라크 대통령 자신은 킹메이커 역할에 관심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현재로선 다음달 대선에서 그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다. 대선 세 주자들은 모두 시라크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과거 정치와의 단절을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라크 대통령은 집권당 후보인 사르코지와도 껄끄러운 관계다. 항상 극우파에 맞서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인물로 자임해온 시라크 대통령은 11일 연설에서 유권자들에게 "극단주의, 인종차별주의, 반유대주의를 피하라"는 말만 했을 뿐 지지후보는 언급하지 않았다. 바이루 후보는 시라크 대통령의 임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사르코지와 루아얄 측은 아직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머 이런 말이 떠 오르네.. 2007/03/12    
  그런 면도 좀 있지요. 시라크 아저씨... 200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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