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메리카vs아메리카

총기난사범의 영작문

딸기21 2007. 4. 1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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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렇게 만들었어" "망할 놈의 아버지" "널 죽여버릴거야."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조승희(23.영문학과)씨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과 친분을 맺지 않은채 고립 속에 생활해왔다. 그러나 영문학과 수업 때 써놓은 극본과 일기장, 낙서 등과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 그의 성격과 정신 상태를 유추해볼 수 있다. 그가 남긴 글들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과 증오감, 복수심, 분노 같은 것들로 가득차 있다. 그를 가르쳤던 교수는 이상행동 위험성에 대해 대학당국에 보고한 적도 있었지만 인권 침해 우려 등 법적인 문제 때문에 조치를 취할 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폭력성과 적개심

조씨는 기숙사에서 이전 여자친구 등 2명을 총기로 살해한 뒤 자기 방으로 들어와 총에 다시 탄약을 장전한 것으로 보인다. ABC통신은 조씨가 기숙사 1차 총격과 강의실 2차 총격 사이 2시간 반 동안 방에서 `재무장'을 하면서 "네가 이렇게 만들었어(You caused me to do this)" 등의 말이 적힌 메모를 남겼다고 18일 보도했다. 그러나 메모에 담긴 비난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다. 앞서 시카고트리뷴은 조씨 방에서 부잣집 아이들에 대한 증오감을 드러낸 메모들이 발견됐다고 전했었다.
조씨는 급우들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이상성격을 가진 `위험 인물'로 각인돼 있었던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인터넷 사이트들에는 조씨가 학교 수업 때 제출한 극본이 올라와 있다. `리처드 맥비프'라는 제목의 희곡은 아동성애 도착증에 걸린 양아버지와 13세 소년의 갈등을 다룬 살인극. 소년은 양부를 살해하려 하지만 결국 양부 손에 죽고 만다. 10여쪽의 짧은 희곡에는 전기톱과 총 같은 끔찍한 무기들이 난무하며 `살인범'`강간범'`사이코'`저주받을놈' 같은 폭력적인 말과 욕설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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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불안 조짐

2년전 조씨에게 시(詩) 작법을 가르치고 1대1 교습까지 맡았었던 루신다 로이 교수는 AP통신 인터뷰에서 조씨에 대해 "행동과 작문 내용 등 모두 문제가 많아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조용한 표면 밑에 항상 위협을 감추고 있는 듯 느껴졌다는 것. 로이 교수는 "대학당국에 이 학생이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보고하기도 했지만 법적인 장애들 때문에 아무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씨와 함께 극작 수업을 들었던 이안 맥팔레인이라는 학생은 17일 자기 블로그에 수업 뒷이야기를 올리면서 "그의 희곡은 너무 끔찍해서 교수조차 해설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맥팔레인은 "(`리처드 맥비프'를 읽은 뒤) 조가 권총을 들고 강의실로 들어오면 어떡하나 상상한 일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미국 언론들은 조씨가 남긴 메모들을 `살인범의 기록(Killer's notes)'이라 부르며 조씨의 심리를 집중분석하고 있다. 남겨놓은 글들이 대개 폭력적, 비정상적이었던 것으로 보아 조씨가 정신병적인 단계였다는데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이고 있다.

주변에선 "너무나 조용한 외톨이였다"

극작 시간에 드러내보인 폭력성과 반대로, 평소 조씨의 행동은 매우 조용해서 주변 사람들이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존스홉킨스 대학 정신과 앨런 랭글리브 교수는 AFP통신 인터뷰에서 "대형 살인사건의 범인들은 대부분 고립되고 반사회적인 외톨이들"이라면서 조씨의 행태가 폭력적 성향을 고립 속에 감추고 있는 이상행동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1984년1월생인 조씨는 8살 때인 1992년 미국으로 이민, 부모와 함께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센터빌에서 살아왔다. 부모는 세탁소를 하고 있고 누나는 명문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의 고교 동창생들과 이웃들은 조씨가 너무나 조용하고 대꾸조차 않는 성격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페어팩스카운티 웨스트필드 고교 동창들은 조씨가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은 채 혼자서 조용히 지냈다면서 "친구들이 말을 건네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왕따'나 다름없었다"고 전했다. 이웃 주민들도 "조는 인사를 해도 받지 않을 정도였고 식구들도 모두 이웃과 교류가 없었다"고 말했다. 버지니아 공대 기숙사에서 함께 거주했던 한국 유학생들조차 사건이 알려진 뒤 "조승희가 누구냐"며 궁금해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조용한 겉모습과 달리 조씨는 기숙사에서는 몇몇 여학생들을 스토킹하고 자기 방에 불을지르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이모저모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참사 이튿날인 17일 텍사스 등 미국내 3개 대학에서 폭발물 설치 메모 등이 발견돼 캠퍼스가 폐쇄되고 학생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이날 텍사스주 오스틴의 세인트 에드워즈대학 구내에서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메모지가 발견돼 학교 당국은 즉시 건물들을 폐쇄하고 수색 작업을 폈으나 의심할만한 물체가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대학 측은 신고가 접수된 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을 숙소로 돌려보내고 교직원과 일반 학생들은 캠퍼스 밖으로 이동시켰다.
테네시주 채터누가의 테네시대학에도 폭발물을 놔뒀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워 건물 3개동이 2시간 동안 폐쇄됐다. 이 대학 대변인은 "허위 전화로 판명나긴 했지만, 버지니아공대 사건이 있었던 터라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고 밝혔다. 오클라호마대학에서도 한 남자가 수상한 물건을 가지고 다닌다는 신고가 들어왔으나 조사결과 사실 무근인 것으로 밝혀졌다.

○…루이지애나에서는 한 고등학교에서 버지니아공대 사건을 직접 언급한 메모가 발견돼 학부모들이 몰려가 자녀들을 데리고 나오는 소동이 빚어졌다. 경찰은 `대량학살'을 암시하는 메모를 작성한 혐의로 한 남성을 체포, 조사하고 있다.
이날 워싱턴의 백악관 정문앞에서도 총성이 일어 잠시 경계가 강화되는 해프닝을 빚었다. 대린 블랙포드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문 부근에서 보안요원들이 업무를 하는 도중 총기 오발사고가 일어나 2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두 보안요원이 인근 조지워싱턴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번 참사에서 버지니아공대 측의 미숙한 대처에 비난이 빗발치자 각 대학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긴급연락대책을 만들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분교(UC버클리)는 구내 경찰서를 통해 위기상황시 사이렌으로 경보를 발령하고 대피요령을 담은 안내방송을 하는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플로리다대학은 허리케인, 토네이도 같은 기상재해를 포함한 각종 위기상황 경보를 캠퍼스 전화로 자동 전달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버지니아공대의 경우 긴급경보를 문자메시지 등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정작 16일 참사 때에는 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버지니아 주정부가 직접 대응과정을 조사하기로 했다고 dpa통신이 보도했다. 팀 케인 버지니아주지사는 17일 대학 측의 요청에 따라 독립적인 조사팀을 구성해 용의자 조씨에 관한 내용에서부터 구내 경찰과 학교 당국의 대응까지 전 과정에 대한 특별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사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던 휴대전화 동영상과 함께 인터넷 게시판 사이트가 이번 사건 상황을 알리는데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번에 성가를 올린 것은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을 연결해주는 `소셜네트워킹(친분맺기)' 사이트인 페이스북. 총기난사 사건 뒤 페이스북에 등록된 버지니아공대 관련 페이지 236곳에는 친구와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고 사건 정황을 듣기 위한 네티즌들의 접속이 쇄도했다. 버지니아공대 학생들은 사건 직후 희생자 명단과 부상자 상태 등 정보들을 시시각각 올렸다.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메시지도 이곳에 모였고, 언론들도 페이스북을 통해 상황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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