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푸틴과 룰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비슷한 고민'

딸기21 2007. 11. 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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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이냐, `수렴청정'이냐. 국가 위상을 높이고 경제를 살려내 승승장구하고 있는 대통령들에게, 집권을 연장하고 싶은 유혹은 클 수 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더욱이 언제 대선이 치러지든 압승할 자신이 있는 대통령이라면 헌법을 고쳐서라도 재출마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을리 없겠지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브라질의 루이스 이냐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지금 이런 고민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 지지율은 절반을 훨씬 웃돌고, 자신의 아성을 넘어설 경쟁자는 보이지 않고... 서방을 상대로한 `큰소리 외교'로 국가 위상은 한껏 높아진데다 경제도 어쨌든 겉보기엔 잘 나가죠. 

문제는 헌법.
두 나라 모두 미국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임기는 4년이고, 중임은 3번까지 가능하지만 `3연속 집권'은 금지돼 있습니다. 하지만 각기 집권 2기를 보내고 있는 두 대통령이 헌법을 고쳐 3선에 도전하려 한다면, 두 나라 정치구조상 못할 것도 없는 상황입니다.




인기 전선 이상없다

푸틴 대통령은 옛소련 붕괴 뒤 국가경제를 좀먹던 올리가르흐(신흥재벌)들을 내쫓아 대기업들을 재국유화하고, 오일달러로 국가부채를 조기상환하는 등 경제를 살려냈습니다. 미국에 맞서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 `강한 러시아'라는 국민적 자존심을 높여줬고요. 그 덕에 국민 지지도는 항상 80%를 웃돕니다.

지난번 대선 때 푸틴 대통령이 "지지율 80% 안되면 나 재선 안한다"는 식으로 국민들에게 '협박'(?)을 하는 걸 보고 참 희한하다 생각했는데, 남들이 뭐래거나 말거나 아무튼 러시아에서 인기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좌우를 망라한 경제개혁 정책으로 서방 투자가들의 신임을 얻고 민심도 붙잡았습니다. 기후변화라는 글로벌 이슈를 선점, 사탕수수를 원료로 만든 바이오에탄올 붐을 일으키며 `바이오에너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장악했습니다(바이오에탄올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과연 바람직한지 아닌지는 조만간 평가가 나오겠지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며 제3세계를 누리는 `남(南)-남 외교'에도 열심입니다. 러시아가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것처럼, 브라질이 2014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개최권을 따낸 것은 룰라 대통령의 최대 외교적 성과라고 할 수 있겠죠.

어쨌든 룰라 집권 기간 브라질은 남미의 맹주 자리를 넘어 제3세계의 대변자로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미국 달러 약세와 고유가로 세계가 몸살을 앓는 와중에도 브라질 정부는 올해 수출목표를 1550억달러에서 1570억달러로 상향조정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1일 보도했습니다.

선거 앞둔 두 나라, `연임설' 솔솔

러시아는 다음달 국가두마(하원) 총선을, 내년 3월 대선을 치릅니다. 총선이든 대선이든 그 결과는 푸틴대통령의 심중에 달려있다는 데에 이견이 없습니다.

최대 관심사는 푸틴 대통령이 헌법을 고쳐 3선에 도전할 것이냐 하는 것. 푸틴대통령은 자신의 거취에 대해 확언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년 대선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해왔지만 그의 발언을 액면대로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러시아의 여론조사기관인 레바다센터는 최근 조사에서 푸틴대통령의 3연임에 찬성하는 유권자가 절반 이상인 53%로 나타났다고 발표했습니다. 러시아의 현 국가두마는 집권 통합러시아당과 그 아류 격인 `친 푸틴 야당'들이 장악하고 있고 오는 총선에서도 여당 압승이 예상됩니다.

미국과 유럽은 크렘린이 비판적 언론을 탄압하면서 민주주의를 해치고 있다고 비난해왔습니다. 푸틴대통령이 3연임을 시도한다면 서방의 의구심은 더 커질 것이 뻔하지요. 러시아 정부는 지난달말 이번 총선 국제선거감시단원 수를 2003년 총선의 3분의2인 400명으로 줄였는데, 특히 유럽측 감시단 입국을 제한하기로 결정해 서방의 우려를 부추겼습니다.

브라질에서도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룰라 대통령 3연임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룰라 대통령은 그동안 3연임설을 일축해왔지만, 집권 노동자당(PT) 일각에서는 `대안 부재론'을 들어 개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개헌'이냐 `징검다리'냐

푸틴 대통령과 룰라 대통령 모두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개헌을 해서까지 3연임을 시도하면 `장기집권 독재'라는 비난을 피해가기는 힘들겠지요.

가능한 시나리오는 ▲무리수를 둬서라도 개헌을 하는 것 ▲한 차례 임기를 건너뛴 뒤 4년후 재출마하는 것 ▲`허수아비 대통령'을 내세운 후 자신은 총리가 돼 당ㆍ정을 장악하고 권력을 계속 행사하는 것 등으로 갈리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자신이 총리가 될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쳐 눈길을 끌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이 8년 임기를 마친 뒤 총선 출마를 거쳐 총리직을 맡을 의사를 내비친 것처럼 룰라 대통령도 비슷한 선례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었는데요.

룰라 대통령의 경우 차기 대선을 건너뛰고 월드컵 개최연도인 2014년 차차기 대선을 다시 노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브라질 야당들이 룰라 3연임 시나리오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한번 쉬고 `징검다리 집권'을 도모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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