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두바이와 바스라

딸기21 2007. 11. 1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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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건물이 숲을 이룬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 한켠에 가정 폭력 피해여성들을 위한 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미국계 여성이 만든 이 쉼터는 사막 도시의 가려진 그늘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이라크 최대 석유수출항인 바스라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득세하면서 여성들에 대한 공격과 살해가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시계를 뒤로 돌린듯한 바스라의 모습은 중동 여성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단면으로 보입니다.



두바이 바닷가 `희망의 도시'


두바이 해안 주메이라 지역은 고층아파트들과 고급주택이 즐비한 곳이라고 합니다. 요새 국내 신문에서도 이 지명이 곧잘 보이더군요.
주메이라에서 한발짝만 벗어나면 허름한 집들이 이어진 움알샤이프 거리가 나온답니다. 그곳 18번지에 있는 낡은 빌라에는 `희망의 도시'라는 이름이 붙어 있대요. 이 곳의 주인은 미국에서 태어나 1982년 에미리트 남자와 만나 두바이로 시집온 샬라 무사비라는 여성이랍니다.

무사비는 에미리트의 문화와 전통을 아끼고 사랑하는 무슬림이지만, 가정폭력과 법적 불평등을 비롯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과 폭력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15년째 여성 인권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알자지라 방송은 며칠전 무사비와 '희망의 도시'를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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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동안 두바이에 살면서 무사비는 이 도시의 급속한 개발과 변화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고 합니다.
개발과 함께 새로운 거주민들이 쏟아져들어오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되자 아랍의 전통적 여성 인권 문제에 더해 새로운 사회적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여성 인신매매와 `하녀 학대' 같은 사례들이 빈발하게 된 거죠.
그러나 경찰도, 대사관들도, 사회단체들도 폭력에 희생된 여성들에겐 매몰차기만 하답니다. 어느 나라인들 안 그럴까마는.

무사비는 도움받을 곳도 없이 핍박받는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지난 2001년 폭력을 피해 도망친 여성들을 위한 쉼터로 `희망의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여성 9명과 어린이 4명이 피신하고 있는데, 무려 70명이 한꺼번에 이곳에서 생활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의 구타 때문에 도망쳐나온 영국 국적의 여성, 주인의 폭력 때문에 피신 온 하녀 등 쉼터에 머무는 여성들의 사연은 다양합니다.

오일달러가 넘쳐나는 두바이에는 수백만달러의 기금을 굴리는 `부자 구호단체'들이 많지만 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시설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희망의 도시'가 만들어진 뒤 무사비도 "전통을 해친다"는 비난을 받아야했대요. 불법단체 운영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법정에 출두한 것도 세 차례나 된다네요.
그래도 최근에는 에미리트 정부가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정부는 유명인사가 된 무사비에게 `두바이 여성ㆍ아동기금'이라는 거대 기금의 운영을 맡겼습니다. 정부는 무사비에게 `희망의 도시'에서는 손을 뗄 것을 권했지만 무사비는 힘 닿는데까지 여성쉼터를 돌볼 계획이라고 합니다.

포스트모던한 외양 속에 전근대적 모순이 교차하고 있는 두바이... 그곳에서 무사비의 작은 시도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모양입니다.


탈레반화한 이라크 남부

이라크 최대 석유수출항인 남부 도시 바스라에서 여성들을 상대로 한 공격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합니다.

바스라 치안책임자인 압둘 잘릴 칼라프 장군은 16일 영국 BBC방송 회견에서 바스라의 여성들이 극단주의자들의 공격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서 비참한 현실을 전했습니다. 직장에 나간다는 이유로, 혹은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협박과 공격을 받고 살해당하거나 팔다리가 잘려 불구가 되는 여성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42명이 극단주의자들 공격으로 숨졌지만 피해자 가족들이 쉬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한 여성은 `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유 만으로 자기 집에서 6살 아들과 같이 살해됐습니다. 움 제이납이라는 여성은 일을 마치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오토바이가 전속력으로 달려들어 간신히 피신했습니다.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인신매매단에) 팔아넘기겠다"는 협박이 날아오고, 히잡(머리쓰개)을 안 쓰고 외출했던 여성의 집 벽에는 `참수'를 위협하는 낙서가 써있기도 했다는군요.

한 여대생은 히잡을 안 썼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다리에 총을 맞았다고 합니다. 알 마칼 지역에 사는 여성 2명은 히잡을 안 썼다는 것 때문에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살해당했습니다. 칼라프 장군은 "여성을 공격해 살해해 놓고 극단적인 범죄를 정당화하려는 자들이 있다"고 개탄했습니다.

사담 후세인 시절의 이라크는 아랍 사회주의와 세속주의를 강조했기 때문에 여성들 교육수준이 매우 높았고 취업과 사회활동도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전후 국가체계가 무너지고 그 빈자리를 이슬람 세력이 메우면서 상황이 크게 악화됐습니다.
특히 친이란계 시아파 근본주의자들이 득세한 바스라 등 남부지역의 현실은 심각한 것 같습니다. 내년 봄 영국군이 철수하면 바스라의 인권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BBC는 전했습니다.

두 차례 이라크 방문 때에 이라크 여성들 사회활동이 참 많고 당당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고(물론 안에서야 차별이 많았겠지만) 멋지게 꾸민 바그다드의 여대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있었는데... 저렇게 한심하고 끔찍하게 변했다는게 놀랍고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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