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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가스 카르텔’ 만든다…보유량 1~3위 러·이란·카타르 추진

딸기21 2008. 10. 2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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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천연가스 보유량 1~3위 국가인 러시아와 이란, 카타르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같은 ‘천연가스 카르텔(가격담합기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천연가스 공급가격을 놓고 최근 몇년간 러시아와 줄곧 마찰을 빚어온 유럽연합(EU)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천연가스 카르텔이 유럽과 러시아 간, 에너지수입국과 수출국 간 새로운 갈등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AP통신은 21일 러시아와 이란, 카타르가 테헤란에 모여 OPEC 스타일의 카르텔인 천연가스 가격협력기구를 만드는데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골람 호세인 노자리 이란 석유장관은 압둘라 빈 하마드 알 아티야 카타르 석유장관,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즈프롬의 알렉세이 밀러 최고경영자(CEO)은 이날 테헤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며 이같이 발표했다. 밀러 CEO는 “우리 ‘가스 트로이카’는 앞으로 매년 3~4차례 모임을 갖고 주요 사안들을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 측은 앞으로 이른 시일 내 2차례 정도 모임을 갖고 가스협력과 관련된 협정을 공식 체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연가스는 석유보다도 매장지의 지역편중이 더 심해서, 러시아·이란·카타르가 지구상에서 확인된 매장량의 60%를 갖고 있다.

가스카르텔은 2006년 8월 가즈프롬이 알제리 국영 천연가스회사 소나트라치와 파트너십 협정을 맺으면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대통령이던 지난해 2월 가스 수출국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의를 공식화했고, 곧이어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관심을 모았었다. 러시아는 카타르, 이란과 협력을 강화한 뒤 알제리,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사우디 등으로 가스카르텔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가스카르텔이 만들어지면 러시아의 에너지 패권이 유럽에서 남아시아로까지 확장될 것이라고 AP는 내다봤다. 장기적으로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수입하려 하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정학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로 캐나다·멕시코에서 에너지를 들여가는 미국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지만 유라시아 에너지 패권구도에는 큰 변화가 올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은 특히 러시아와 이란이 손을 잡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이란과는 부세르 원전 건설 지원등을 통해 관계를 탄탄히 다져놓은 상태다. 이란은 세계 3위의 석유매장고를 갖고 있지만 석유산업 합리화에 실패해 다운스트림(정유·가공·공급)이 정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은 최근 천연가스 쪽에 시선을 돌리고,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로 이어지는 ‘남아시아 파이프라인’을 만들려 하고 있다. 미국은 이 파이프라인이 이란의 힘줄이 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으나, 당장 에너지가 급한 파키스탄·인도는 미국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이란에 구애하고 있다.

가장 다급한 것은 유럽이다. EU 27개국은 입을 모아 가스카르텔에 반대하고 있다. 페란 에스푸니 EU 대변인은 21일 “우리는 자유시장을 통해 에너지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송유관·천연가스관을 이용해 유럽 에너지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크렘린은 작년, 재작년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로 가는 드루쥐바 파이프라인의 밸브를 잠가 유럽을 긴장에 빠뜨렸다. 

유럽의 천연가스 소비량 중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단히 높다. 보스니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몰도바, 슬로바키아는 100%를 러시아에서 들여온다. 불가리아 97%, 헝가리 89%, 폴란드 86%, 체코 75%, 터키 67%, 오스트리아 65%, 루마니아 40%, 독일 36%, 이탈리아 27%, 프랑스 25% 등 유럽 전역이 러시아산 가스에 매여 있다. 유럽연합 전체로 보면 25% 가량이 러시아로부터 온다. 가즈프롬이 일개 에너지회사 이상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천연가스는 불안정한 매질의 특성 때문에 냉각시켜 선박으로 수송하거나(액화천연가스·LNG), 파이프라인 형태로만 수송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천연가스 시장은 러시아산은 유럽으로, 중동산은 아시아로, 미주산은 미국으로 가는 수출입구조가 굳어져 있다. 유럽국들이 수입선을 다변화하려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천연가스 거래는 이런 속성상 장기거래가 대부분이며, 시장가격도 안정적이었다. 러시아와 중동 가스생산국들이 가격을 담합하면 이 구조가 깨질 수 있다. 유럽은 최근 그루지야 사태에서 드러났듯 러시아가 패권주의를 감추려하지 않고 있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미국은 아직 공식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워싱턴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에너지 전문가 로버트 이블은 “가스는 ‘전지구적 상품’인 석유와 달리 아직까지 ‘지역 상품’에 속한다”며 “러시아 등은 카르텔을 통해 천연가스를 더욱더 통제하려 하겠지만 OPEC 같은 영향력을 가진 기구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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