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란 권력자들의 물고 물리는 악연

딸기21 2009. 6. 2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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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부정 의혹에서 비롯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 뒤에서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를 둘러싼 고위 성직자층 내부의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직 대통령인 막후 권력자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에 이어, 이슬람혁명 시절부터의 라이벌이었던 최고위 성직자까지 현 정국을 비판하고 나섰다. 하메네이에 대한 성직자층의 불만이 이번 시위를 계기로 표출되는 양상이다.
 

집권층 ‘내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대통령의 가족들이 체포된 일이다. 당국은 라프산자니의 딸 파에제(46) 등을 체포했다가 21일 풀어줬다고 국영 프레스TV가 보도했다. 자세한 체포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하메네이가 라프산자니에 보내는 경고로 해석된다.

라프산자니는 이란 최고의 부자인 데다 영향력이 가장 큰 정치인이다. 1989년 호메이니 사망 당시만 해도 하메네이는 시아파의 최고위 성직자인 ‘그랜드 아야툴라’가 아닌 중간급 성직자에 불과했다. 그런 하메네이를 최고지도자로 옹립한 일등공신이 라프산자니였다. 

라프산자니는 호메이니 시절 하메이니가 맡고 있던 대통령직을 그대로 물려받아 89~97년 재임했고, 지금은 핵심 권력기구인 전문가위원회의 수장을 맡고 있다.
이슬람 성지 쿰에 본부를 둔 전문가위원회는 최고지도자 사후 후계자를 선임할 권한을 가지며, 위원 83명이 찬성하면 이론적으로는 지도자를 갈아치울 수도 있다. 라프산자니는 의회와 성직자들 사이를 중재하는 편익위원회라는 또다른 권력기구의 위원장도 겸직하고 있다.



 
라프산자니와 하메네이는 호메이니 사후 20년 동안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견제하면서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부패청산과 부의 재분배를 내세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라프산자니 일가를 집중공격하면서 사이가 벌어졌다. 
이 싸움 밑에는 아마디네자드로 대표되는 서민계급과 성직자계급 간 자원분배 갈등이 숨어 있다. 이란의 시아파 성직자들은 ‘본야드’라는 자선기금을 통해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본야드는 성직자 그룹들의 돈줄이기도 하다.
일부 본야드들은 국영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석유 판매사업을 하겠다고 나서 아마디네자드 측과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아마디네자드는 이 본야드들이 부패의 온상이라고 비판했고, “라프산자니와 연결된 본야드들이 개혁파 미르 호세인 무사비 쪽에 검은 돈을 댔다”고 주장해 심기를 건드렸다.
 
개혁파 온라인미디어 ‘루예’는 라프산자니가 대선 뒤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면서 “아마디네자드를 끌어내리기 위해 은밀히 쿰에서 성직자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위원회 위원들은 하메네이가 임명한 사람들이어서 대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지만, 아마디네자드에 타격을 줄 수는 있다.
 
하메네이에 버금가는 그랜드 아야툴라인 호세인 몬타제리도 며칠전 대선 부정을 비난하며 선거무효화를 주장했다. 그는 “국가를 공포·억압 분위기에 빠뜨리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몬타제리는 이슬람혁명 때 “호메이니를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가겠다”며 선봉에 섰던 호메이니의 오른팔이었다. 당초 호메이니의 후계자로 유력시됐으나 하메네이에 밀린 악연이 있다. 몬타제리는 이슬람혁명이 ‘변질’된 것에 회의를 품고 90년대 이후 개혁적인 성직자들을 뒤에서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몬타제리 뿐 아니라 ‘정통’을 자처하는 성직자들 사이에선 하메네이의 권력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상당수다. 프랑스 망명에서 돌아와 정치혁명을 일으킨 호메이니의 역할은 인정하지만, 그 후계자인 하메네이까지 종교와 정치 모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관측통들은 쿰에서 아마디네자드의 당선 축하메시지가 나오지 않은 것에 주목한다. 전에는 대선 결과가 발표되면 쿰의 14명 고위 성직자단이 축하성명을 냈다.
현지 일간지 루즈는 대선 일주일전 “선거부정은 하람(죄악)”이라는 성명을 내놨던 고위 성직자들이 대선 부정 의혹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전문가 아프신 몰라비는 “왕년의 혁명전사들이 옛 동지 하메네이에 맞서고 있다”며 하메에이에게 최대 위기가 닥쳤다고 말했다.  


이란 선거부정 '300만표'

이란 대선부정을 조사해온 최고권력기구인 혁명수호위원회가 21일 선거 부정을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혁명수호위는 대선 결과를 뒤집을 만한 부정은 아니라며 개혁파의 대선 재실시 요구를 일축했다.
혁명수호위는 “선거부정 의혹을 조사해보니 50개 도시에서 전체 유권자 수보다 유효투표수가 많았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고 관영 프레스TV가 보도했다. 
혁명수호위의 압바스 알리 캇코다에이 대변인은 국영방송에 출연해 “(선거에 진) 후보들은 80~170개 도시에서 투표 부풀리기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조사 결과 그런 사례가 드러난 곳은 50곳 뿐이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캇코다에이는 “일부 지역에서 투표율 100%가 기록된 것은, 주민들이 자기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 투표할 수 있기 때문에 빚어진 일로 보인다”며 평가절하했다.
그는 유권자 수를 초과하는 투표용지 수가 300만장이었다면서 “하지만 1위와 2위의 표차가 1100만표에 이르는 점으로 미뤄볼 때 선거과정에서의 착오가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개혁파 후보 미르 호세인 무사비와 메흐디 카루비, 보수강경파 후보 모흐센 레자이 등은 지난 12일 치러진 대선에서 막대한 부정이 저질러졌다면서 혁명수호위에 이의를 제기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게 패한 세 후보는 최소한 646개 선거구에서 부정선거가 이뤄진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었다. 혁명수호위는 “법적 절차에 의거해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계속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번 발표로 신뢰성이 떨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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