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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로 본 오바마의 외교정책

딸기21 2009. 7. 1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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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이끌 위대한 비전(grand vision)’인가, 할말도 속시원히 못한채 돌아다니는 ‘사과 여행’인가.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연설 외교’가 화제다. 오바마는 지난 4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는 “핵 없는 세상은 나의 꿈”이라며 러시아에 핵탄두 감축 협상을 제의했고, 지난달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미-중동 관계의 새로운 시작을 선포했다. 11일 아프리카 가나의 아크라에서는 격려와 쓴소리를 동시에 던졌다. 영국 BBC방송은 오바마의 해외 연설들을 통해 전임 행정부와 차별화된 미국의 새로운 외교정책을 분석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내문제로 후퇴하지 않고 국제적인 이슈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바마 외교의 초점은 “잇단 전쟁과 경제위기로 위상이 떨어졌어도 미국의 리더십은 여전히 세계를 이끄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 맞춰져 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의 마이클 주브로 연구원은 “오바마는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와 희망·꿈을 세계와 공유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제문제에 적극 개입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라하, 카이로, 모스크바, 아크라 연설에서 오바마가 내세운 외교 어젠다는 ‘핵 없는 세상’과 ‘발전을 위한 좋은 통치(good governance)’라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주브로는 “이런 것들을 ‘오바마 세대의 최대 이슈’로 내세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이로와 모스크바에서 오바마는 대학을 연설 장소로 택해, 미래 세대를 향한 메시지임을 강조했다.

오바마는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이라크전에 대한 언급을 최소화하고, 북핵·이란핵 등의 구체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말을 아낀다. 그 대신 중동·이슬람사회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21세기 핵 없는 세상의 꿈”(프라하 연설)이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아프리카에서도 비슷했다.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를 에둘러 압박하긴 했지만, 주로 가나의 민주주의 성과들을 강조하고 아프리카의 제도적 실패를 비판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특정 국가·지역·인물·이슈가 아닌 글로벌 어젠다 차원에서 풀어가겠다는 뜻이다.

똑같이 민주주의를 강조하더라도, 부시와 오바마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달랐다. 부시는 중동민주화 구상, 제3세계 독재정권 비판에서 주로 ‘민주적 선출’ 즉 선거제도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오바마는 선거보다는 제도적·구조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아크라에서 “강한 지배자보다는 강한 제도(institution)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 단적인 예다. 
오바마는 또 미국의 개입이 ‘간섭’이 아닌 ‘주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오바마는 카이로 연설에서 이란 핵문제를 언급할 때에 “미국도 핵무기를 감축함으로써 핵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혀, 지역을 넘어선 ‘큰 틀’ 안에 핵문제를 자리매김시켰다. 러시아와의 핵무기 감축협상에서도 핵 강국들의 솔선수범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하지만 오바마의 이런 연설들에 대해 미국 공화당과 보수파는 “정책보다는 말의 상찬 뿐”이라며 냉소를 보내고 있다. 보수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프라하에서의 군축 제안은 너무 순진했고, 모스크바 연설에서는 러시아의 비민주성을 규탄하는 데에 소극적이었으며 아크라에서는 쓸데없이 관대한 척 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오바마가 부시행정부의 잘못들을 시인하는 것에 대해서도 “외교 순방이 아니라 ‘사과 여행(apology tour)’을 다니는 꼴”이라 비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오바마에 우호적인 뉴욕타임스는 연설 외교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오바마의 ‘스타파워’에 외교정책이 좌우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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