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

딸기21 2009. 11. 24.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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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후 최고의 작가로 불렸던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타케(平岡公威)다. 그의 인생 초창기는 전형적인 일본 엘리트의 경로를 밟는 듯했다. 고위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귀족학교로 유명한 도쿄의 가쿠슈인 대학을 나왔고 2차 대전 때 군수품 공장에서 근로봉사를 했다. 전쟁이 끝난 뒤 도쿄대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1948~49년에는 옛 대장성 금융국에서 일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49년 발표한 첫 소설 <가면의 고백(假面の告白)>이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동성애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묘사한 자전적인 작품으로, 문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추천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미시마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나섰다. 이후 내놓은 소설들도 대부분 신체적인 문제를 안고 있거나 심리적 갈등으로 인해 주변과 화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그린 것들이다. 50년 발표한 <사랑의 목마름(愛の渴き)>을 필두로 <금지된 색(禁色)>(54년), <파도소리(潮騷)>(54년), <향연이 끝난 후(宴の跡)>(60년)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56년작인 <금각사(金閣寺)>는 절대적인 미(美)를 추구하다가 좌절한 사미승이 금각사를 불태워버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역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풍요의 바다(豊饒の海)>에 대해서는 불후의 명작이라는 평과, 강박적 심리의 표출이라는 평이 엇갈린다. 
4편의 장편으로 이뤄진 연작 형식의 이 작품은 20세기 전반기 일본을 무대로 해서 서로 다른 시기에 환생하는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제국 시대의 젊은 귀족과 군국주의에 빠진 정치적 광신자, 2차 대전기의 태국 공주, 전후에 환생한 어린 고아가 각각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죽음, 피, 자살 등 작가의 자멸적인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미시마의 소설들은 풍부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묘사, 탄탄한 구조, 탐미적이고 비극적인 주제의 균형을 잡아주는 재치 등으로 발표될 때마다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를 역사 속의 인물로 만든 것은 화려한 작품목록이 아닌 충격적인 죽음이었다. 
그는 일본 제국 시대의 엄숙주의, 애국심과 군국주의에 매혹돼 전후 일본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서구화된 것, 현대화된 것은 진정한 일본을 잃는 것이라 여겼다. 스스로는 서구식 생활을 즐겼고 서구 문화에도 조예가 깊었지만 ‘일본적인 것’에 대한 강박적인 애착이 있었다. 전통 무술인 가라테와 검도를 연마하고, 천황제를 수호하겠다며 학생들을 모아 사병대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70년 11월 25일, 미시마는 <풍요의 바다>의 마지막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뒤 도쿄의 육상자위대 본부에 들어가 총감실을 점거했다. 발코니에 나가 자위대원들을 상대로 평화헌법 반대, 천황제로의 회귀를 촉구하는 연설을 하는 모습이 사진 등으로 남아 있다. 한물 간 군국주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안 미시마는 사무라이처럼 할복자살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