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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동안 가톨릭 사제들에 의해 저질러진 아동 성학대·폭력 등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아일랜드가 들끓고 있다. 급기야 교황이 공개적으로 아일랜드 국민들에게 사과 서한을 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일 아일랜드 신자들에게 보내는 사목서한에서 “아일랜드 교회가 아동 성학대 사건들을 다루는 과정에 큰 잘못이 있었다”면서 “배신감과 당혹감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비통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 아일랜드 교회에 대해 조사할 것을 바티칸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2008년 뮌스터 교구의 존 메이지 주교가 성추문에 연루돼 아일랜드 당국의 조사를 받게 돼 파문이 커지자 지난해 3월 교황은 아일랜드 교회에 메이지 주교 조사를 지시한 바 있다. 하지만 공개 사과 편지를 보낸 것은 이례적이다.
아동 성학대 사건 은폐의혹을 받고 있는 아일랜드의 션 브래디 추기경(왼쪽)이 20일 북아일랜드 아마의 성패트릭 대성당에서 교황 베네딕토16세의 사과서한문을 사제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AFP
아일랜드 가톨릭 성학대 문제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교황의 사과서한까지 불러온 계기가 된 것은 ‘스미스 신부 사건’이었다.
브렌던 스미스라는 악명 높은 신부는 1945년부터 89년까지 44년간 벨파스트, 더블린 등 부임지에서 어린이 최소 22명을 학대·폭행했다. 영국령 북아일랜드에서 수배를 받게 되자 스미스는 아일랜드로 넘어와 수도원에 ‘망명 아닌 망명’을 했다. 94년 결국 체포돼 곡절 끝에 영국으로 넘겨졌고, 10년여 옥살이 뒤 감옥에서 사망했다.
최근 아일랜드 가톨릭 최고위 성직자인 션 브래디 추기경이 당시 스미스 신부 사건을 조사하면서 피해자들에게 ‘침묵서약’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브래디 추기경은 20일에도 “침묵서약은 강제력이 없다”고 변명했지만 여론은 몹시 악화돼 있다.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문은 아일랜드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아일랜드에서는 고위 성직자들이 많이 관련돼있고 조직적으로 은폐해왔다는 점이 다른 나라들에서 일어난 사제들의 일탈행위들과 구분되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유독 아일랜드에서 조직적 아동 성학대가 많았던 것은 전국의 아동시설 대부분이 가톨릭에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경제성장 이전까지 아일랜드는 ‘유럽의 제3세계’로 불리는 가난하고 낙후된 나라였다. 1930년대 이래로 버려진 아이들 약 3만5000명이 전국 250여개 가톨릭계 기술학교와 기숙사, 고아원 등으로 보내졌다.
지난해 5월 정부 조사위원회는 2000여명의 증언을 모아 2600쪽에 이르는 조사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성학대·강간·폭력은 아일랜드 가톨릭계 기술학교와 고아원에 70여년간 만연해 있던 현상”이라고 고발했다. 정부의 관리감독 책임 문제가 제기되자 브라이언 코원 총리는 지난해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교회는 감추기 급급했다. 2002년 펀스 교구의 브렌던 코미스키 주교가 관내 아동 성학대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가 여론 질타를 받고 사임했고, 2년 뒤에는 더블린 대교구 데스먼드 코널 추기경이 ‘조직적 은폐’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 물러났다.
교황의 편지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더블린성폭행위기센터와 아동학대구호피해자모임 등은 “교회의 진심어린 사과를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바티칸의 관리감독 책무에 대해서는 언급 않고 아일랜드 교회의 책임으로만 축소하려는 의도”, “교회법을 강화하는 등의 개혁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아이리시타임스는 “교황은 브래디 추기경의 거취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일랜드 교회는 많은 땅을 가지고 주요 경제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2002년 교단이 성학대 피해자들에게 배상금 1억2800만유로를 지급할 때에도 교회 토지를 정부에 팔아 자금 대부분을 마련했다. 아일랜드연합당(FG)은 “교회가 아일랜드 교육에서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문제”라며 교회가 가진 교육시설 부지를 정부에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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