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아프간 사람들 '목숨값'은

딸기21 2010. 8. 1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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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쿤두즈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이 ‘유조차를 납치한 것으로 보이는 탈레반 반군’들을 향해 공습을 퍼부었습니다. 나토군의 조사결과 이 공습으로 142명이 숨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179명이 숨졌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숨진이들은 탈레반이 아니라 대부분 마을 주민들이었고, 어린아이들과 여성들도 많았습니다. 이 공격은 나토군 공습으로 민간인이 사실상 대량학살된 최악의 사건들 중 하나로 기록됐으며, 아프간 정부는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당시 공습을 주도한 것은 국제안보지원군(ISAF) 북부 사령부를 책임지고 있던 독일군이었습니다.


파장은 컸습니다. 2006년 아프간의 독일군이 내전시절 숨진 이들의 유골을 발로 밟거나 ‘장난감’처럼 다루는 사진이 공개돼 독일 내에서 반전여론이 드세진 적 있었지요. 애꿎은 민간인 1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쿤두즈 공격 사실이 전해지자 다시한번 거센 비판이 일었습니다. 

독일군은 민간인 대량살상 사실을 부인했지만, 일간지 빌트는 민간인들이 숨진 것을 보여주는 동영상과 군 비밀보고서를 폭로했습니다(잠시 딴 길로 새자면, 한국군이 만일 외국에서 이런 짓을 할 경우 '낱낱이 밝혀낼 한국 언론'이 과연 얼마나 될지... 그럴 일이 있어서도 안 되지만요)

거짓말까지 한 사실이 드러나자, 국방장관을 거쳐 노동장관으로 자리를 옮겨갔던 프란츠 요제프 융은 사퇴했습니다. 볼프강 슈나이더한 당시 합참의장도 은폐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습니다(다시 또 새자면, 한국에서 저렇게 책임지고 옷 벗을 수 있는 관료들은 또 얼마나 될지... 자국 군인들이 우르르 죽었는데도 국방장관은 멀쩡히 유임만 잘 되더군요;;).


독일 의회에서 지금도 이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독일 정부가 당시 숨진 아프간 민간인들에 대한 보상을 마쳤다고 합니다. 독일 국방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당시 숨진 민간인 102명의 가족 86가구에 5000달러(600만원)씩 일괄지급, 총 43만달러(약 5억1600만원)를 줬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이들아 살아남아라. 

10일, 카불의 한 소년. |AP


10일 바자르 이 판지와이, 캐나다군 옆을 지나는 아이들 |로이터


유엔은 10일 올 상반기 아프간에서 다국적군·정부군과 탈레반 반군의 교전 혹은 탈레반의 테러공격, 표적살해 등으로 숨진 민간인 수가 최소한 1271명에 이른다는 집계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유엔아프간지원단(UNAMA)은 이날 내놓은 보고서에서 “어린이 사망자가 176명에 이른다”며 작년 같은 기간보다 올 1~6월 민간인 희생이 31%나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 중 76%는 탈레반 등 반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지만, 미군·나토군·아프간 정부군의 공격에 희생된 이들도 상당수 됩니다.


근래 민간인 사망자 수가 크게 늘고 있으나 아프간인들의 ‘목숨값’은 푼돈에 불과합니다. 사실 사람의 목숨이 얼마만한 돈으로 보상이 되겠습니까마는...


독일 국방부는 5000달러씩 지급하고 나서도 “보상금이 아니라 인도적 차원에서 준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프간의 1인당 연간 국내총생산(GDP)이 구매력 기준 800달러임을 감안해도, 가족당 5000달러는 많은 돈이 아닙니다. 

독일 국방부는 아프간 피해자측 변호인들과 몇달에 걸쳐 보상금 협상을 하면서, 돈을 주는 대신 독일 군인들의 ‘법적 책임’은 묻지 않는다는 합의안을 관철시켰다고 슈피겔이 보도했습니다. 쿤두즈 공습으로 아들을 잃은 압둘 다이안은 돈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 로이터 인터뷰에서 “영영 보상해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라도 받게 되어 다행”이라 말했습니다. 


인도적 차원이든 법적 차원이든 보상금을 주고 이를 공개한 독일은 나은 편이며, 미군은 오폭 피해자들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해왔습니다. 민간인 사망은 미국이 늘 주장하는 ‘전쟁의 부수적 손실’일 뿐이기 때문이겠죠. 

미군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보상해준 뒤 책임자들을 물러나게 한 것은 사실상 한번 뿐이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전날인 지난해 1월19일 카불 북부의 한 가난한 마을을 미군이 공습해 주민 15명이 숨졌습니다. 그러자 아흐레 뒤 그레그 줄리언 아프간 주둔 미군 대변인 등이 마을을 찾아가 보상금 4만달러(1인당 약 2666달러)를 건넸습니다. 또 마을 원로들을 만나 사과하는 등 ‘성의’를 보였습니다. 당시는 아프간 정부와 미군 간 갈등이 고조되고 전황이 극도로 악화돼, 민심을 달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일어난 민간인 대량살상은 대부분 유야무야됐습니다. 


2007년 3월 미 해병대가 파키스탄과 가까운 카불 동쪽 잘랄라바드 외곽도로에서 자폭테러 공격을 받았습니다. 성난 해병대원들은 도로를 10여㎞ 질주하면서 총기를 난사, 16세 새 신부와 75세 노인 등 1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미군은 사망자 1인당 2000달러씩을 내놓고 문제를 일으킨 부대를 철수시켰습니다. 이 사건은 최근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미군 기밀보고서를 통해 세상에 폭로됐습니다.


아프간 민간인 사망과 보상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전쟁 발발후 8개월이 지난 2002년 여름이었습니다. 그해 6월 30일 미군이 우루즈간주 마을들을 공격하면서 결혼식장에 미사일을 쏘아 50명 넘는 이들이 숨졌습니다. 아이들이 많은 시골마을이었던 탓에 사망자 대부분이 15살 미만의 아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미 국방부는 “탈레반 지도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가 그 지역에 도피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다”며 잘못을 부인하고, 사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중앙정보국(CIA)이 유족들에게 가족당 200달러(24만원)씩을 지급했습니다. 미국 측은 아프간의 경제수준으로 보아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내에서조차 “9·11 사망자 보상금의 6800분의 1”이라며 가혹하다는 비난이 일었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민간인 희생시 보상금으로 지급할 돈 200만달러를 아프간 정부에 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아프간 과도정부 대통령이던 하미드 카르자이 현대통령은 “이 돈은 보상금 자체가 아니라 보상과 관련해서 과도정부에 보내준 지원금”이라 주장했습니다. 


이 돈이 실제로 전해졌는지, 어떻게 집행됐는지는... 누가 알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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