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몽골의 네오나치

딸기21 2010. 9. 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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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경향신문에 ‘몽골에 중국인 혐오바람이 불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내용인즉슨, 몽골에서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유럽식 신나치주의와 비슷한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면서 중국인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공격을 주도하는 것은 ‘다야르 몽골(Dayar Mongol·하나의 몽골)’이라는 극우파 단체라는군요. 몽골 정부에 극우 정치단체로 버젓이 등록돼 2005년부터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랍니다.

이들의 공격 대상은 1차로 중국인들이고, 중국인 아버지를 둔 몽골인이나, 중국인과 성관계를 맺는 몽골 여성도 공격 타깃이 됩니다. 중국계 미국인, 중국인으로 오인 당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공격당하는 사례가 실제로 늘었고, 미국 국무부는 지난 봄 웹사이트에 “몽골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 잦다”면서 몽골 여행 시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사실 ‘다야르 몽골’ 이야기는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작년 여름에 이미 타임지에 몽골 ‘네오나치’에 대한 기사가 실린 적 있었습니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시내 극장 벽에 ‘중국인들을 쏘아 죽이라’는 스프레이 낙서가 등장하고, 몽골족 전통 천막집인 유르트 촌 울타리에 ‘킬러 보이스(Killer Boys)’라는 그래피티가 보인다는군요. 

기사에 따르면 울란바토르에서 활동하는 극우 집단은 다야르 몽골을 포함해 크게 세 그룹 정도로 분류된답니다. 이들을 다 합하면 극우파 조직원들이 수천명이 되는데, 인구가 300만명에 불과한 이 나라에서는 수천명 정도면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이 된다는 것이죠. 


그 중 한 그룹인 ‘푸른 몽골’은 중국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여성들을 붙잡아 머리를 밀어버립니다. 2008년에는 이 단체 우두머리가 자기 딸의 남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살해 이유는 그 소년이 단지 ‘중국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었답니다.


몽골 네오나치를 대표하는 인물은 다야르 몽골의 우두머리인 자가스 에르데네빌레그(Zagas Erdenebileg)라는 51세의 남성입니다. “우리의 피가 외국인들과 섞이면 곧 우리 민족은 파괴될 것이다.” 몽골 ‘순혈주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명백히 인종주의의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에르데네빌레그는 의회 선거에 4차례나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매춘과 마약을 몽골에 퍼뜨린다”는 반 중국 구호를 내걸고 칭기즈칸을 들먹이면서 야금야금 극우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요새는 “아돌프 히틀러도 칭기즈칸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을 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극우단체 ‘몽골민족연맹(MNU)’은 샤리 뭉군-에르데네(Shari Mungun-Erdene)라는 24세 청년이 이끌고 있습니다. 이 그룹은 스바슈티카(나치 문양) 문신을 가슴에 새기고 다니는 전형적인 ‘스킨헤드 온 더 블록’이라고 합니다. 자기네들 주장으로는 중국인들처럼 “몽골 법을 어기는 외국인들”을 찾아내 벌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울란바토르 시내 전경/사진 위키피디아

네오나치가 설쳐대는 밑바탕에는 뿌리 깊은 반 중국 정서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몽골은 청나라 시절 200년간 지배를 받았지요. 냉전 시절 몽골은 옛 소련의 위성국이었는데, 중소 분쟁으로 소련과 중국이 멀어지면서 몽골도 덩달아 중국과 멀어졌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앞서 언급한 경향신문 기사에 인용된 AFP 기사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네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몽골 전문가 프랭크 빌은 AFP통신에 “몽골의 반 중국인 정서는 옛 소련이 부추긴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몽골의 충성을 얻어내기 위해 소련이 계속 몽골에 ‘중국 위협론’을 퍼뜨리고 부추겼다는 겁니다. 

하지만 소련 시절의 일이 지금까지 이어진다고만 보기는 어렵겠지요. 
청나라에서 냉전 시기로 이어지는 중국과의 악연도 그렇지만, 최근 들어서 몽골이 부쩍 중국에 의한 위협을 느끼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근래 중국인들이 몽골의 광산 등 자원 이권을 노리고 몽골에서 많이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것이 당장 눈에 띄는 반발을 가져온 요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몽골인들이 느끼는 두려움 중 가장 큰 것은 결국
인구 문제입니다. 몽골은 면적이 155만㎢인데 인구는 300만명에 불과하다. 몽골인들은 70년 동안 소련의 지배를 받았는데도 지금 러시아보다는 중국을 더 두려워합니다. 몽골 사막 땅은 현재 몽골이라는 나라에 편입돼 있는 지역과, 중국 땅인 네이멍구(내몽고)로 나뉘지요. 중국은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지역으로 자국민들을 대거 이주시킨 것처럼 내몽골 지역에도 한족을 유입시켰습니다. 

몽골은 중국인들의 쓰나미가 결국 자기네들 변경으로 밀려들어올 것이라 우려하고 있습니다. 몽골의 국가안보 수칙에는 ‘인종의 순수함’을 강조하는 문구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만주족처럼 중국의 일족으로 전락하는 운명이 될까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데요. 몇해 전 중국에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병했을 때 몽골인들은 편집증적 공포감을 드러냈다는군요. 전염병 하나면 몽골같이 인구 희박한 나라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왔습니다. 

동시에 몽골은 중국의 국경 통제력에도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중국 남서부 위구르족과 투르크족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몽골에까지 테러리즘과 마약 밀매를 확산시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인 거죠. 그래서 몽골은 1990년대 이후로 미국으로부터 공식, 비공식 군사 자문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보수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이 <제국의 최전선>이라는 책에서 몽골과 미국의 군사협력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는데, 미국 전직 장교 등 민간군사회사 직원들이 몽골에 들어가 ‘세 개의 기둥’이라 불리는 전략안을 마련하는 것을 도왔다고 합니다. 

몽골은 중국의 재래식 군사위협보다는 중국인들의 이주와, 테러리즘을 포함한 초국경적인 위협을 더욱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몽골은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고, 그것이 극우파의 준동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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