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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광부들은 어떻게 지낼까

딸기21 2010. 8. 3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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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몰된 칠레 광부 33명을 구출하기 위한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코피아포의 산호세 구리광산에서 매몰된 광부들을 구출하기 위해 갱도를 뚫는 천공작업이 30일 예정대로 시작됐다. 당국은 수직의 터널을 뚫어 광부들을 끌어올리는 계획과 함께, 만일에 대비한 ‘플랜B’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 등은 라우렌세 홀보르네 칠레 광업부 장관이 “광부들을 구출하기 위한 천공작업을 30일 시작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지난 5일 매몰된지 25일만이다. 기술진은 세계 최대의 굴착기로 알려진 호주제 유압굴착기 ‘스트라타(지층) 950’을 산호세 광산 입구에 조립하는 작업을 이미 끝냈다.

구출은 언제나?
 
문제는 언제 구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이어가는 광부들의 상황을 감안하면 구출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게 40톤의 스트라타 950을 이용하면 이론적으로는 지름 5m의 구멍을 최대 1300m까지 파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기계를 이용한 작업은 땅속에서 위로 파올라간 것 뿐 수직갱을 파들어간 적은 없다. 그나마도 가장 좋은 조건에서 20m를 팔 수 있을 뿐이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칠레 독립 200주년인 다음달 18일 이전에 구조작업이 끝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서 홀보르네 장관은 “올 크리스마스 이전”에는 광부들이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칠레는 세계 최대 구리생산국으로서 구리광 채굴에는 세계 최고 기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수직갱을 뚫는 방식으로 광부들을 구하려면 최소한 3~4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200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수직갱을 파 광부들을 구한 적이 있지만 그 때는 굴착 깊이가 74m에 불과했다.

당국은 먼저 지름 35cm의 좁은 구멍을 뚫은 뒤 지름을 66cm로 넓히는 2단계 공사를 할 예정이다. 뚫는 것도 힘들지만 광부들을 끌어올리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 될 전망이다. 굴착 과정에서 흙과 돌멩이 3000~4000톤이 광부들의 피신처에 떨어질 것이고, 광부들이 이것들을 직접 치운 뒤 드릴이 내려온 곳까지 올라가야 한다. 건강상태가 악화된 사람들이 이 작업을 수월하게 끝낼 수 있을지도 걱정거리다. 


터널을 뚫은 뒤 광부들이 동물 우리 모양의 금속제 바구니에 몸을 집어넣으면 위에서 케이블로 끌어올리게 된다. 광산 구조인부들 사이에서 ‘총알’이라 불리는 이 바구니를 끌어올리는 과정에도 위험이 있을 수 있다. 매몰된 광부들 중 9명은 과체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라우렌세 홀보르네 칠레 광업부 장관이 29일 산호세 광산의 긴급구호용 터널 속으로 광부들에게 전할 구호품 튜브를 넣고 있다. 코피아포(칠레) _ 로이터뉴시스


산호세 구리광산 위에서 인부들이 29일 구조용 수직갱을 팔 준비를 하고 있다. 코피아포(칠레) _ AP연합뉴스


당국은 이 계획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 대비, 비스듬한 터널을 뚫는 ‘플랜B’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광산 입구에서 광부들이 있는 곳까지는 약 2km의 구불구불한 갱도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지난 5일과 7일 두 차례 바위가 굴러내려와 갱도가 막혔다. 


플랜B에 따르면 지상에서 지하 350m 지점까지 굴을 파 광부들을 구해내게 되는데, 파들어가는 거리가 짧아지기 때문에 작업 기간이 30~60일로 줄어든다. 원래의 계획보다 구출 시간을 절반 이하로 단축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광부들이 스스로 바위들을 치우며 1km 가까운 거리를 걸어나와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플랜B에 쓰일 ‘슈람’이라는 장비는 멀리 떨어진 미네라 데 코야와시 광산에 있다. 당국의 지시에 따라 이 광산에서는 슈람을 이동시키기 위한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당국은 광부들이 있는 곳에서 300m 떨어진 지점으로부터 시작되는 비좁은 환풍구를 넓히는 방안 등 여러가지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광부들의 건강에는 큰 위험은 없지만,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당국은 29일 지하와 지상을 통신선으로 연결, 처음으로 광부들이 가족과 통화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전에는 식량·약품공급용 케이블을 이용해 쪽지로만 대화를 나눴었다.


광부 중 의사 지망생이었던 조니 베리오스가 동료들의 소변과 혈액을 채취해 땅 위로 올려보내면, 지상에서는 의사들이 임시 진단센터에서 건강이상을 체크한 뒤 진통제와 영양제 등을 내려보낸다.

광부들 지상과 통화

칠레 정부는 광부들의 구출에 정치적 운명을 걸고 있다. 지난 2월 취임한 피녜라 대통령은 22일 광부들이 올려보낸 메시지를 직접 들고 국영방송에 생존 사실을 발표했다. 하이메 마냘리치 보건장관은 광산 밑에 상주하면서 수시로 광부들의 상태를 브리핑한다.


마냘리치 장관은 26일 동영상이 공개된 뒤 “아직 심각한 위험은 없지만 광부들 중 5명이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5명은 동영상 촬영도 거부했고, 음식조차 잘 먹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칠레 북부 코피아포의 산호세 구리광산에 매몰된 광부들의 동영상이 지난 26일 공개됐다. _ 로이터뉴시스


건강문제 중에는 피부질환이 특히 심각하다. 기온이 30도에 이르는 덥고 습한 곳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피부에 손상이 간다는 것이다. 45분 분량의 동영상 중 국영TV방송에 5분 분량만 방송된 것도, 광부들의 피부질환이 카메라에 생생히 찍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조요원들이 케이블을 통해 가장 먼저 전달한 것도 건조가 빨리 되는 의복과 습기를 막아줄 수면용 매트였다. 광부들 중 일부는 세균에 감염돼 300 더 들어가 건조한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광부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위해서는 온갖 방법을 다 쓰고 있다. 당국은 해군 잠수함 부대의 자문을 통해 극한상황에서의 생존에 도움이 될 방법들을 찾고 있다. 구조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심리학자들은 광부 가족들에게 낙관적인 메시지를 전하도록 당부했다. 현지 온라인언론 엘페리오디코닷컴(elperiodico.com)은 “심리학자들이 광부들은 물론, 그 가족들의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의료팀도 31일 산호세에 도착한다. NASA의 의료담당 부국장 마이클 던컨은 “국제우주정거장(ISS) 우주인들의 건강·스트레스 관리방안이 광부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광부들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준비할 수 있게 해주는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칠레 당국이 그런 작업을 잘 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또 광부들 스스로 생활을 잘 조직해나가고 있는 점을 들며 “생존의지가 높다는 것은 구출에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산호세 광산에 매몰된 광부의 가족이 29일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촛불을 켜고 있다. 코피아포(칠레) _ 로이터뉴시스


광부들에게 생필품을 보급하고 환기·의사소통용으로 쓰이는 3개의 케이블에는 ‘희망’, ‘인내’, ‘신의 손’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당국은 광부들이 기분전환을 할 수 있도록 칠레,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인기가요들이 담긴 mp3 플레이어를 내려보냈다. 이른 시일 안에 영화·축구 비디오도 내려보내 광부들이 간이 ‘홈시어터’를 꾸릴 수 있게 할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희망’의 ‘비둘기’

광부 가족들이 머무는 광산 밑 임시거처는 ‘희망 캠프’라 불린다. 가족들의 염원은 가톨릭 신앙으로 표출되고 있다. 캠프에는 마리아상과 예수상, 그리고 문제해결책을 가장 빨리 찾아준다는 칠레의 성인 ‘산 엑스페디토’ 상이 여럿 세워졌다. 교황 베네딕토16세도 지난 29일 바티칸 미사에서 칠레 광부들의 “행복한 결말을 기원한다”는 기도를 올렸다. 희망 캠프를 찾는 응원객들도 많다. 어부들은 생선을, 농민들은 과일을 들고 가족들을 찾아와 위로하고 있다. 


수도 산티아고 등 대도시에서는 시민들이 자동차에 ‘푸에르사 미네로스(광부들이여 강해져라)’라는 피켓을 달고 다니며 ‘로스33(33명)’이라는 스티커가 인기를 끌고 있다. 광부들의 목숨을 지탱해주는 통로인 ‘손다(구멍)’와 식료품 공급 튜브인 ‘팔로마(비둘기)’는 신문·방송의 유행어가 됐다.

예상치 못했던 고민거리들도 나온다. 일례로 당국은 지금 땅 밑 광부들에게 담배를 넣어줘야 할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아직은 담배 대신에 금연보조제로 쓰이는 니코틴이 함유된 검을 내려보내고 있다. 마냘리치 보건장관은 “광부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담배를 공급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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